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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 2024'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2024년 자신의 새해의 목표, 하고 싶은 도전과 소망 등을 네 글자로 만들어 다른 독자들과 나눕니다. [편집자말]
2024년이 시작되고 벌써 1월의 절반 이상이 지나가버렸다. 2023년 12월, '범사에 감사하며 살자'라는 글귀를 적은 다이어리를 자녀들에게 선물했었다. 많은 것이 풍족한 세상에서 태어나 가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적어준 것인데, 알고보니 정작 내 다이어리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2023년의 사회적 재난과 슬픔을 지켜보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선택받은 귀한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 종로구에 살다 보면 사람들의 아픔을 목도하는 일이 많다. 밤낮없이 울려대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는 일상이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일어나는 대규모 집회는 대부분 '같이 좀 잘 살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절규하는 각종 사건사고 피해자들 곁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칠 때마다 남아있는 양심이 아파왔다. 

올해 나의 목표는 각각 스스로 살기를 꾀하는 각자도생이 아닌 서로를 알아주고 같이 살아가는 '함께도생'으로 정했다. 소시민에 불과한 내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현실적으로 정리해 보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조금 불편해도, 번거로워도... 가성비보다 환경 

물건을 구입할 땐 가성비를 잘 따져야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고들 하지만, 올해는 돈을 중심으로 한 가성비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지만 환경은, 지구는 한번 망가지고 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뭘 바꿀 수 있겠어'가 아닌 '나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할 것이다. 
 
인간은 환경 없이 살아갈 수 없지만 인간만큼 환경을 괴롭히는 존재도 없다.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환경을 돈보다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할 것이다.
▲ 우리가 사랑하는 자연 인간은 환경 없이 살아갈 수 없지만 인간만큼 환경을 괴롭히는 존재도 없다.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환경을 돈보다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할 것이다.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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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지는데 일개 소비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인다. 국가가 정책으로 밀어붙이고 기업이 제품생산 방향을 친환경으로 전환하면 따라가면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이해관계가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다. 소비자로서 나는 소비할 상품을 선택할 때 마음을 굳게 먹고, 돈보다 환경의 가성비를 먼저 생각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탄소발자국이 적은 국산, 친환경 재배한 식자재를 제값 주고 사 먹으려는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저렴하게 파는 상품보다는 유리나 종이에 담아 판매하거나 무포장으로 판매하는 제품을 구입하고, 친환경 인증 제품, 식물성원료를 사용하여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만든 비건제품, 화학물질의 양을 줄인 유기농 제품의 비중을 점점 늘리기로 결심했다.
 
탄소발자국을 줄인 친환경, 유기농, 비건제품을 더 많이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아직은 플라스틱 제품과 리필해서 사용할 수 없는 제품들이 섞여있지만 차츰차츰 줄여나가려 한다. 12월의 화장품 사진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길 기대해 본다.
▲ 덜 예뻐도 괜찮아 탄소발자국을 줄인 친환경, 유기농, 비건제품을 더 많이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아직은 플라스틱 제품과 리필해서 사용할 수 없는 제품들이 섞여있지만 차츰차츰 줄여나가려 한다. 12월의 화장품 사진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길 기대해 본다.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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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유리빨대를 쓰고, 외출 시에는 실리콘 빨대를 챙겨 다니기,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종이컵을 쓰는 식당에서 물 마시기 등을 통해 작은 환경운동을 실천해보려 한다. 

한국은 환경이 중요하다면서 도로의 대부분은 여전히 자동차 위주로 돌아가고, 보행자들을 위한 인도에 자전거 정류장을 배치해 보행자들의 영역을 좁히는 나라다. 소나무가 즐비했던 땅의 우람한 나무들을 베어내고 풀밭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나무를 심고 가짜나무로 장식한 공원을 만드는 기괴한 가성비의 도시에서 환경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보려 한다.
  
저상버스가 왜 필요한지 이야기 나눠보기 

한편 우리 집 큰아이는 중학교 3학년,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9시간을 제외하면 15시간이 남는다. 방학 때는 아침, 점심, 저녁, 간식 시간으로 3시간 정도, 집안일, 심부름, 자유롭게 노는 시간으로 4시간 정도를 쓰고 나면 8시간이 남는다. 이중 4시간은 하고 싶은 활동이나 공부를 하는 데 쓰고, 나머지 4시간은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을 포함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써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계단을 좋아한다.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에 사람이 많으면 그냥 계단으로 걸어 올라간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동수단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사람들,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저상버스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이동수단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보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은 저상버스가 익숙하지만 저상버스가 어떤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잘 생각하지 못한다. 유아차나 휠체어가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 탓이다. 2013년에 태어난 작은아이는 단 한 번도 시내버스에 탄 휠체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저상버스가 아니면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 아이들은 저상버스가 익숙하지만 저상버스가 어떤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잘 생각하지 못한다. 유아차나 휠체어가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 탓이다. 2013년에 태어난 작은아이는 단 한 번도 시내버스에 탄 휠체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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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학습 시간으로 아이들이 다른 경쟁적인 학생들의 선행학습과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 믿진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한 반복학습으로 시험을 연습한 학생들을 이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대학을 살짝 내려놓았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대학은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도 괜찮아. 공부 못해도 괜찮으니, 공부에 올인하지 말고 우리 그냥 사람들이랑 다 같이 사는 법을 선행학습 해보자."

하루 4시간씩 365일이면 1460시간이다. 배려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익히고 실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460시간을 고민하면서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잘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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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나만 생각하고 위만 바라보며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서 놓치고 살아온 당연함을 찾아 하나하나 감사를 전하기로 했다. 

글을 쓰며 돌아보니, 2024년 1월에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흔한 인사지만, 올해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만리재길에서 간 어느 식당 사장님께서는 인사를 듣고 깜짝 놀라시더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내게 90도로 정중하게 인사하시기도 했다. 
 
사회적 재난을 잊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고 마지막까지 해결하려는 모습을 봐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다음 재난에서 사람들이 덜 다칠 수 있기에, 아이들에게 재난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올해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 세월호참사를 추모하며 아이들이 그린 그림 사회적 재난을 잊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고 마지막까지 해결하려는 모습을 봐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다음 재난에서 사람들이 덜 다칠 수 있기에, 아이들에게 재난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올해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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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사를 들은 택시기사는 '손님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아이들 예쁘게 키워요'라는 덕담을 하셨고, 시장 떡가게 사장님은 비싼 가래떡을 덤으로 얹어주셨다. 폐지를 주우시던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어주셨다. 이 모든 과정을 내 아이들과 지인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우리는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돌려받을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가야지.

각자도사의 시대라지만... 함께도생이 필요한 이유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흔한 사회가 됐다. 개인이 시스템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으니 혼자서 버티는 일은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 타인을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질병, 가난, 죽음조차 외롭게 맞서야 하는 '각자도사'의 시대라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이제 나부터 함께도생을 위한 작은 실천들을 하려 한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를 증명하지 않아도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뛰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불안 속에서 버티기보다는 달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좀 느리게 걷고,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는 환경을 위해 내 지갑을 더 열어보면 어떨까. 

올해는 같이 걸어가던 사람들이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며 오손도손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런 2024년, 365일, 8,760시간이 되길 희망한다.

태그:#2024, #새해소망, #신년계획, #함께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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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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