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당신들은 포유류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모든 포유류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아. 인간은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연 자원을 소모해버리지. 인간의 유일한 생존 방식은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거야. 이 같은 방식을 따르는 다른 유기체가 있는데 바로 바이러스야. 인간은 질병이고 지구의 암이지."
 
영화 <매트릭스> 1편에서 나오는, 스미스 요원이 주인공 모피어스에게 한 대사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과연 지구 생태 환경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일까?

산업화 이후 인류는 지구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지구의 지층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인간은 땅 위에서 살아가지만 해저의 산호가 사라지듯 인간의 흔적은 대기, 바다, 해저, 지층에까지 심각한 상처를 남기고 있다. 다름 아닌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지질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생태 감수성과 생태 책임감을 지닌 생태시민으로서 보다 면밀하게 환경 문제를 살펴봐야 할 이유다. 영화 속 스미스 요원에게 인간은 생태 환경을 파괴하는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려면 말이다.

2022년 '세계시민을 위한 없는 나라 지리 이야기'를 출간했던 여섯 명의 지리교사가 이번엔 동물을 매개체, 접근로 삼아 환경문제에 대해 보다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설 수 있는 동물지리 책, '생태시민을 위한 동물지리와 환경이야기'를 내놓았다.
 
문명 발달 과정의 도구적 존재, 지리 이야기의 보조적 소재였던 동물을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 놓은 게 읽는 재미를 더한다.
▲ 생태시민을 위한 동물지리와 환경이야기 문명 발달 과정의 도구적 존재, 지리 이야기의 보조적 소재였던 동물을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 놓은 게 읽는 재미를 더한다.
ⓒ 롤러코스터

관련사진보기

 
 지리와 생태계의 중심에 '동물'을 놓다
 
"인간은 많은 동물이 필요할 때는 온전한 자리in place에 있게 노력하지만, 더 이상 필요 없으면 함께할 수 없는 존재out of place로 간주합니다." -328쪽
 
지리책이 이렇게 재미있고 순식간에 읽히는 것은 풍부한 사진 자료 덕분이기도 하지만 문명 발달 과정의 도구적 존재, 지리 이야기의 보조적 소재였던 동물을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 놓은 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동물과 즐겁게 뛰놀다보니 어느새 지리와 가까워지고 생태시민이 된 느낌이다.

홍학의 분포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안데스 고산 지대의 리튬트라이앵글 지리 정보가 묻어나오고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리튬 생산을 위해 지하수 추출 과정에서 염호의 수량이 감소해 안데스홍학의 생태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는 환경문제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두아 라파의 <뉴 룰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홍학이야기나 무리생활을 좋아하는 홍학을 위해 사육장에 거울을 설치해준다는 점도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되는 흥미로운 정보다.

또 돌고래는 반향 정위 능력이 있어 수조에서 키울 경우 유리벽에 반사되는 음파 스트레스 때문에 평균수명이 40년인데 4년 정도밖에 못산다는 정보도 어떤 정보보다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태 감수성을 갖게 한다.

바다의 부드러운 금인 해달의 모피를 구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영토가 넓어졌다는 역사, 지리 정보도 신선하다. 또 해달의 개체 수 감소로 성게 증가→켈프 감소→어류 변화→생태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도 생태계의 균형에서 해달의 역할이 얼마나 핵심적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자신을 '지구의 수호자'나 '관리자'로 여기는 '성경적 신화'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야생화 관점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간섭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131쪽
 
유럽들소는 만빙기에 살아남은 스텝들소와 오록스(현대 가축화된 소의 조상)와의 이종교배에서 태어난 잡종 들소인데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모피 생산으로 야생에서 멸종했지만 동물원에 있던 유럽들소 12마리를 복원해 현재까지 성공적인 개체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들소가 이동한 곳은 빽빽한 숲에 공간이 생겨 다양한 식생환경이 조성되고 배설물을 통해 식물이 씨를 퍼트려 역동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또 산불의 원인이 되는 덤불이 제거되기도 한다. 유럽들소처럼 본능적인 생태 특성상 자연 환경을 재생하고 다른 동식물 종의 서식에도 도움을 주는 동물을 '생태계 공학자'라고 한다.
인간이 한 발짝 물러나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자연은 서서히 생태계 공학자를 만들고, 재야생화의 길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회복탄력성을 보여준다.

자연을 도구로 바라보는, 생태계의 파괴와 생물종의 멸종을 초래하는 인간 중심주의적 자연관에서 벗어나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토대 위에 보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세밀한 생태 중심주의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 가능성
 
"최근에는 도시와 같은 인위적인 공간에서도 야생 동물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개념이 바로 재야생화입니다." -305쪽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여름철새인 백로가 텃새로 변화했단다. 열섬현상으로 기온이 높아진 도시에서 겨울을 날 수 있으니 굳이 남쪽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전 카이스트 인근에 총 1092개 최대 규모 번식지가 있고 울산에도 백로 서식지가 있다. 귀찮은 존재로 내쫓을 것인가, 현명한 공존의 방안을 모색할 것인가? 동물복지, 동물권에 대한 생태 감수성을 지닌 생태시민이 공존의 묘안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캐나다 토론토도 라쿤의 개체 수 증가로 각종 사고, 오염, 전염병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나름의 공생을 시도한다. 도시가 확장하면서 라쿤의 서식지를 빼앗은 것은, 따지고 보면 다름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보듯 인간도 한때 원숭이였다. 지구에서 스텔러바다소가 사라지고, 오키나와 듀공이 사라지고, 북극곰이 사라진다면 다음은 누구 차례가 될까? <장자·소요유>에 나오는 뱁새는 깊은 숲에 살아도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는 강물을 마셔도 배부르면 그만이다.

한때 원숭이였던 인간도 진정 지구를 파괴하는 바이러스가 아니라면 뱁새와 두더지처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스스로 동물임을 자각하고 최대한 몸을 낮춰 다른 동물과의 공존에 힘써야 할 것이다.

태그:#생태시민, #동물지리, #환경이야기, #최지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