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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기동력이다. "대리 운전 부르셨죠? 10분 안에 가겠습니다." 요즘 내가 거의 달고 사는 말이다.

10분은 콜이 뜬 곳까지 도착해내야 하는 맥시멈의 시간이다. 10분으로 내가 걸어서 여유 있게 갈 수 있는 거리란 반경 500m, 조금 뛰면 1km가 한계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전략적 요충지인 것은 사람보다 전동 킥보드가 많은 곳이기에 이것을 잘 사용하면 반경 2km까지 10분 안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우리 동네'에만 적용되는 규칙 같은 것이라서 조금만 동네를 벗어나도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특별히 천호동 같은 곳은 번화가에 술집도 많아서 콜이 제법 뜨는데 문제는 전동 킥보드가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으로 있다는 것이다.

기분 좋았던 출발, 하지만...

하루는 기분 좋게 집 앞에서 콜을 잡고 천호동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반경 2km 안에 괜찮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콜이 떠서, 일단 잡아놓고 먼저 지도를 켜서 거리 확인 그리고 전동 킥보드 위치 확인 후에 10분 안에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손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한 1분 30초 정도면 이 작업을 할 수 있는데 일단 콜을 잡아놓고 이렇게 체크를 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취소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천호동에서 바로 앞에 킥보드가 있다니 운수 좋은 날이군, 속으로 중얼거리며 코드를 찍고 달렸다. 주행을 한 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삐비빅 소리가 나더니 전동 킥보드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줄 알고 플랜B로 그 바로 앞에 있는 킥보드 위치까지 확인했지 하며 빠르게 갈아탔는데 그 기기는 점검중이었다.

시간이 오분이 흘러버렸다. 이미 손님에게 연락이 간 상태이고 취소를 하면 한 시간 동안 콜을 잡지 못하는 패널티를 받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목적지, 약 2km 거리를 미친 듯이 전력 질주 했다.

그날은 조금 추위가 존재감을 발휘할 즈음이라 위아래로 꽤 단단하게 싸매고 나갔다. 그 상태로 전력질주를 하니 온몸에서 땀이 비가 오듯 흘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아프고, 지도상 갈 길은 여전히 멀다는 걸 보니 끔찍했다.

뛰고 또 뛰고 뛰어서 1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말 온몸이 땀으로 흘러넘쳐서 겉에 입은 패딩에까지 범벅될 정도였다. 가쁜 숨을 몰아붙이는 나를 향해서 콜을 부른 손님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사는 건 좋은 데 계획이 있어야지 그렇게 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야."

왜 반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출발하겠습니다" 하고 액셀을 밟았다. 트럭은 운전면허 딸 때 이후로 처음 몰아봤는데 방지턱을 넘을 때의 승차감이 어마어마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손님은 옆에서 숏츠를 통해 온갖 연예계 소식을 실시간으로 흡수 중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꽤나 협소한 언덕에서 우회전을 해서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건 내 차로 돌았어도 아찔했을 것 같은 각이었다. 센서도 전혀 없고, 앞에 봐주는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들어갈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저 크게 돌면 된다고 말하는 손님의 말에만 의지해보려고 했던 걸까. 그야말로 나름 크으게 돌았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야 야!!! 옆에 단다고!!! 똑바로 하라고!!!"
미러를 보니 닿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닿지 않았습니다."

알코올에 한껏 쩔어서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는 손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침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도와주셔서 가이드에 따라 코너링을 해서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갑자기 손님은 손놈으로 변모했다.

아까 자기 차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며, 욕을 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겁이 났다. 나도 못 참게 될까 봐.

손놈을 만나다

"이런 X발, 어디서 뭐 이런 새끼를 보내가지고 기분을 X같이 만들어, X발 한 대 쳐버릴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애플워치로는 녹음 기능을 켜고, 핸드폰으로는 영상을 찍으며 말했다. 지금 다 기록하고 있으니 다시 말해보시라고. 여기까지만 하시고 대리비만 주시면 그냥 가겠다고 하니, 손놈이 손을 번쩍 들었다. 너 같은 새끼 줄 돈 없다고 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봤다. '어차피 다 기록되고 있으니 맞으면 나야 좋은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대로 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컴플레인을 시전했다. 비겁하게 느껴져서 나도 바로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지금 손놈이 나에게 욕설을 했고, 폭행을 하려고 해서 음성과 영상으로 기록해놨다고 말했다.

계속 그곳에 머물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대로 차를 세워놓고 돈도 받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미친 듯이 달렸던 시간, 운전한 시간, 실랑이한 시간을 합쳐서 한 시간이 조금 넘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몸에서는 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왼손과 오른손이 울림과 떨림을 통해서 형님 저희가 나설까요 라고 외치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상황실에 연락처를 물어봐서 내일 전화해서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볼까, 조금의 생각들을 해봤다. 어차피 고객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지는 않으니 소용없겠지만. 하늘도 그런 나를 조금은 위로해주고 싶었는지 그 이후로 잡은 모든 콜들에서 어느 정도의 팁을 받았고, 못 받은 대리비는 얼추 채울 수 있었다.

엄청 험한 꼴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서러웠는지 자기 전에 마음을 토닥거릴 필요는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직 그 여운이 남아있을 무렵에 문자가 왔다. 조금은 마음이 나아졌다. 이렇게 사과할 수 있는 분이셨는데, 그날은 술을 마신 게 아니라, 술이 이 분을 마셨던 날인가 싶기도 하고. 저도 어제 너무 흥분했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답을 보내려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계좌 번호만 보냈다.

그리고 문득 섬뜩했다. 내 전화번호는 도대체 어떻게 안거지? 고객 전화번호는 그렇게 철저하게 개인정보라고 보호해주면서, 내 전화번호는 이렇게 쉽게 알려준다고? 만약에 저 사람이 어떤 악감정이라도 품고 무엇을 하려고 했으면? 
 
다음날 아침 그 손님이 보낸 문자 메세지
 다음날 아침 그 손님이 보낸 문자 메세지
ⓒ 김정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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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대리, #대리운전, #대리기사, #김대리,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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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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