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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후 5시에 먹방을 시작했다. 그런데 스테이크 폭식이나 파스타 만드는 레시피 등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슴슴한 된장, 간장, 발효장인들의 이야기... 기후미식회... <오늘의 기후>가 준비한 맛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토록 슴슴하고 딱히 보여줄 것 없는 라디오 이야기에 청취자 반응이 신기했다.

"듣고 있는데 울컥했어요."
"음식으로 사람을 치료해 주시는 일이군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나도 그리웁네요~"


사실은 나도 듣고 있는데 울컥했다. 어머님 얼굴이 떠오르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날 출연자는 음식전문가도 종갓집 며느리도 아니었지만, 오로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 하나만으로 찾아가며 배워가며 장을 담그기 시작한 '상담사' 출신의 발효장인 이경자님이었다.

상담 선생님이 장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 
 
사라져가는 팥장, 상실장 등 전통장을 복원하며 학생들 미각교육에도 전통장을 활용하고 있다.
▲ 참발효어워즈 3년 연속 수상 이경자 홍주발효식품 대표 사라져가는 팥장, 상실장 등 전통장을 복원하며 학생들 미각교육에도 전통장을 활용하고 있다.
ⓒ 내일의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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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충남 홍성에 있는 '홍주 발효식품'이라는 조그마한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입니다. 이경자입니다."

"저는 원래 상담을 공부했고 상담하는 상담 선생님이었어요. 임상을 할 때 호스피스를 했어요. 호스피스를 하다 보니 말기암 환자 6개월 미만의 여생이 남겨진, 그런 환자들을 보게 되었는데 제가 그분들에게 질문해서 '식사를 잘 못하시잖아요.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슴슴한 된장국 아욱국 그리고 장아찌가 좀 먹고 싶다고, '물 말아서 꿀떡 삼키면 난 벌떡 일어날 것 같아' 이런 추억이 담긴 음식을 찾으셨어요.

저는 내담자한테 굉장한 애정이 있거든요. 집에 있는 된장에 장아찌 그런 것들, 슴슴한 된장국 이런 걸 만들어 싸가지고 가서 그분들하고 소통하면서 상담을 시작하고 이어갔어요. 드리니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나 살 것 같아' '목으로 뭔가 넘어가고 정말 소화도 잘 되고 너무 좋아' 그러니까 주변 분들이 '나도 좀 주실 수 있겠어요' '저도 좀 주세요' '저도 그런 게 먹고 싶어요' 하시더라고요.

어머니 손맛이 그립고 할머니 손맛이 그립다 그래서 나누다 보니까 '선생님 거는 더 이상 공짜로 못 먹겠어요. 조금 돈을 드릴 테니까 이걸 저한테 주세요' 이래서 생각지도 않게 일이 커졌습니다." (이경자, 홍주발효식품 대표)


그렇게 말기 암 환자들에 대한 애정으로 장을 본격적으로 담그기 시작한 그녀는, 현재 국내 최초의 전통 발효 식품 맛 콘테스트인 '참발효어워즈'에서 3년 연속 수상을 한 발효장인으로 성장했다. 비결을 물어봤더니, 또 울컥해졌다.

"고서에나 있고 현재 사람들은 모르는 장들을 연구하게 됐어요. (그게 팥장인가요?) 그렇죠. 그래서 팥장이 맨 처음에 나왔고 그다음에는 더덕 도라지장, 또 하나는 상실장이라고 도토리로 만드는 된장이 있었어요."

"그걸 만들어서 연구해서 어르신들을 찾아다닌 거예요. 노인들이 많이 계시는 경로당 있잖아요. 거기 가서 어르신들한테 '여기 1번 2번 3번이 있는데 어떤 것이 어머니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맛하고 비슷한가요' 묻고 대화를 나눴어요.

'이거 만드는 거 들어보신 적이 있을까요?' 여쭤보면 '들어봤지? 우리 외할머니가 그거 만들었어' 대답하시고. 그렇게 연세 많으신 분들이 그러세요. 그러면 1번 2번 3번 중에 어떤 게 유사한가요? 물으면 '3번이 유사하다' '어떻게 젊은 사람이 내 외할머니의 손맛을 흉내냈지? 야 신기하다' 이렇기도 하고. 어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어요. '어떡해, 내 어머니 손맛이 나왔어' 하시면서..."


추억의 손맛이 담긴 '팥장'에 얽힌 사연 

참, 음식의 맛이라는게 신기하다. 어머니가 떠오르고 할머니가 떠오른다. 뭉클하게. 그렇게 이경자 대표는 사라져가는, 아니 잊혀져가는 엄마와 할머니의 맛을 찾아내고 되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게 '팥장'이다. 즉, 팥으로 메주를 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가? 그녀는 고서에 나온 임금님과 실학자 박세당의 이야기를 전했다. 팥으로 메주를 쑤게 된 계기는 지금의 기후위기가 연상되는 대 가뭄 시기로 거슬러오른다.

"어느 한 해에 너무 가물어서 콩이 생산이 안 됐어요. 집에서는 그 콩을 소금물에 침지해서 간장 만들고 된장 만들어서 장을 만들어서 먹거리를 장만을 해야 되는데 메주가 없으니까 간장도 없고 된장도 없고 먹을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면역력이 약해져서 많이 아프기도 하고 민심도 흉흉하고 그러니까 임금님이 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안 되겠다, 콩이 아니라도 무엇으로라도 메주를 써서 장을 만들어서 내 백성을 먹게 하라는 어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콩이 안 되면 반대로 잘 되는 게 팥이 잘 된대요. (원래 그런가요?) 네, 가뭄이어도 잘 되는 게 팥이에요. 팥이 좀 있는데 그럼 그걸 갖고 좀 만들어보라 그래서 점성이 있는 것을 찾다 보니 밀가루가 있던 거예요. 밀가루하고 콩 조금 있는 거하고 팥하고 뭉쳐서 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 메주를 조그맣게 하고, 구멍을 뻥 뚫어서 사통팔달 바람을 불게 하니까 메주가 부드럽고 맛있게, 빨리 띄워진 거예요. 팥이 주는 단맛 그리고 전분질이 주는 단맛, 아미노산 감칠맛 이렇게 팥으로 메주가 만들어져서 맛있는 팥장이 탄생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찾은 팥장을 들고 그녀는 요즘 아이들 다니는 학교를 자주 찾는다. 미각교육을 하고, 아이들이 패스트푸드가 아닌 진짜 음식 맛을 찾도록 도와주는 교육에 소명감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콩으로 만든 음식을 다양하게 앞에다 놓고 찾아보게 했어요. 아이들한테 계란을 하나 까서 손에 쥐여주고, '이제부터 선생님이 간장을 맛보여줄 건데 이름이 간장 툭이야. 선생님이 한 방울씩만 줄 건데 원하는 친구들만 먹어도 돼' 그렇게 말했지요. 계란이 싱겁잖아요. 조선간장을 딱 떨어뜨려 주니까 아기들이 먹어보더니 '달다 '그런 거예요. 저는 짜다고 할 줄 알았거든요. 입에 딱 들어갔을 때 짠듯하다가 단맛과 감칠맛이 훅 올라오잖아요. '선생님 한 방울만 더 주세요' 하면서 그 달걀을 다 먹을 동안 세 방울, 네 방울을 달라고 했어요. 그다음부터 아이들이 콩나물국 속에 들어간 조선간장을 느끼고, 간장이 이런 거구나 하고..."

전통과 미래가 음식으로 연결되는 감동이었다. 이처럼 뭉클한 발효장인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비영리기관의 시상행사가 바로 '참발효어워즈'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식생활교육기관인 내일의식탁(이사장 김원일)은 국내산 재료를 사용한 우수한 발효식품을 알리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기 위한 취지로 매년 '참발효어워즈' 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수상작 23점이 선정돼 오는 24일(토)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스퀘어홀에서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다.

"맛도 좋고 환경이나 지역경제에 좋은 발효식품을 발굴해서 알려주려고 시작한 프로젝트이기에 시민들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김원일 내일의 식탁 이사장)

발효장인 이경자님의 이야기는 <오늘의 기후>에서 몇 달에 한 번 간격으로 계속될 예정이며 유튜브 'OBS 라디오' 채널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이 내용은 지난 2024년 2월19일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방송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 매일 편성되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매일 방송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OBS 라디오 채널)와 팟캐스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이경자, #홍주발효식품, #전통장, #참발효어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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