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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 거문도에 귀향해서 살고 있는 한창훈 작가는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했다. 주말부부인 나는 삶이 허기질 때마다 공장 앞 상가 지하에 있는 백반집에 간다. 거문도에 홀로 살고 계시는 여든아홉 엄니가 생각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엄니 같은 사장님이 밑반찬으로 주는 계란말이와 무한리필 공깃밥은 인심 좋은 덤이다.

사람 많고 부산한 곳을 싫어하는 나에게 스스로 토닥이며 제공하는 위로의 한 상이지만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다. 1만1000원짜리 고등어구이는 어릴 적 늘 즐겨 먹던 국산 고등어가 아니라 노르웨이산이다. 그런데도 이 식당에서 홀로 삶의 허기를 채우면 행복하다.

삶의 허기를 채우는 곳

오늘은 특히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수의 누군가에게 사업 계획과 예산을 승인받느라 힘들었다.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승인권을 가진 다수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정당성을 설명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끝났다. 홀가분한 기분에 혼자서 고등어구이에 덤으로 제육볶음까지 시켰다. 거기에 삘간(빨간) 소주도 시켰다.

"아따 사장님, 고등어구이랑 제육볶음 주시오." 
"혼자서 뭐 하려고 두 가지를 시켜. 하나만 시키면 밥 먹는데."

"아따, 내가 묵고 싶은디 두 가지 시키믄 어쩐다요."
"알았어. 그러면 고등어구이랑 제육볶음 두 가지 시켜."


사장님과의 짧은 옥신각신. 혼자 와서 1인분만 시키고 가게 문 닫을 때까지 느그작느그작 먹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엄니 같은 사장님은.
   
이야기가 잠깐 옆길로 빠졌다. 어찌 어린 시절 엄니가 구워주신 거문도산 고등어랑 노르웨이산 고등어구이가 같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추억을 잃고 싶지 않는 나의 집착이 과도하게 몰입됐을 수도 있겠다. 근데 이 집 고등어구이는 맛있다.
 
전주식당고등어는 추억을 소환한다
▲ 추억의 고등어구이 전주식당고등어는 추억을 소환한다
ⓒ 김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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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지글 갓 나온 고등어구이. 째려보는 눈깔을 응시하며 고소한 살점을 집는다. 맛있다. 어린 시절 추억까지 꾸역꾸역 밀려온다.

고소한 고등어구이 한 점에 세월을 다시 되돌린다. 칠 형제를 낳았다는 엄니는 아픔이 많다. 병원이 없던 섬에서 4명의 자석(자식의 방언)들을 잃었다. 아마도 형들이 탈이 없었으면 막둥이인 나는 세상 빛을 볼 수 없었을 게다.

고등어구이 한 점에 추억은 방울방울.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다. 초딩 시절, 나는 이른 아침이면 부지런하게 선착장에 홀로 나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밤새 거문도 앞바다를 밝게 비추는 멸치, 갈치잡이 배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나는 밤새 새벽불을 밝히며 고기잡이 하고 돌아온 아버지를 기다렸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아버지는 밤새 고기잡이를 할 때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간식으로 먹어야 했던 보름달 빵과 멸균우유를 드시지 않고 아침에 가지고 왔다. 그리고 배고픔을 참아내며 아껴두었던 그것들을 막둥이에게 주었다. 그 귀한 걸 먹을라고 나는 이른 새벽에 선착장을 향했다. 아, 지금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니 조금은 그때 아버지지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고등어 얘기가 미뤄졌다. 어릴 적 섬에서 흔하디 흔한게 고등어였다. 아버지는 빵과 우유에 덤으로 잡어를 커다란 통에 가지고 오셨다. 그러면 엄니는 그 생선들로 아침상을 준비하셨다. 엄니는 집 옆 텃밭 한켠에서 나무로 군불을 지폈다. 엄니는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화덕에다 고등어와 갈치를 석쇠에 지글지글 맛나게 구워 주셨다.

그 어린 시절에는 아침 밥상에 김치와 갈치와 고등어만 있어도 맛나게 먹었다. 입속에서 비릿하고 고소하게 퍼지는 구이의 맛. 싱싱했던 생선들의 눈깔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지하 백반집에서 생선구이를 먹으며 엄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한다.

고등어구이 먹으러 안 올란다

되돌릴 수 없는 그리움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지금 내가 50도 넘고 두 아들의 아버지이지만 막둥이 아들로 영원히 남고 싶은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 하지만 다시는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가 없다. 그때의 어린 시절로. 다만 그때를 추억할 뿐이다. 고등어구이 하나로 되돌아갈 수 없는 추억을 간절히 그리워한다.

못난 막둥이가 내친 김에 삘간(빨간) 소주 한 잔 묵었다. 술 기운에 오래된 파킨스병으로 혼자 식사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시는 엄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니, 나 막둥이요. 저녁은 자셨쇼. 여그는 겁나 눈이 많이 왔는디 별일 없제라."
"아가, 나는 벨일 없어야. 막둥이가 느가 젤 걱정이다. 혼자 있다고 밥 굶지 말고 항상 밥 챙겨 먹어라잉. 아가, 내 천금아."


엄니와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는 울었다. "엄니 막둥이는 엄니가 참말로 보고 싶어라." 설 연휴에 거문도에서 헤어지며 두아들 앞에서 엄니를 보듬고 티나지 않게 울었는데, 지금은 하염없이 마냥 눈물이 난다. 인자 다시는 고등어구이 먹으러 안 가야 쓰겄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태그:#한국지엠, #전주식당, #거문도, #고등어구이, #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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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대외정책부장 김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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