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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서른. <굿모닝인천>이 1994년 1월 <내고장인천>으로 시작해 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17년 전, <굿모닝인천>을 처음 만나 책의 반평생이 넘도록 함께했습니다. 긴 시간 인천의 섬, 바다 그리고 골목골목을 누볐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부단히도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발걸음이 남긴 흔적을 밟았습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쌓아 올리는 인천의 역사와 마주했습니다. 인생(仁生)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仁緣)들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인연(仁緣)
 
<굿모닝인천> 2017년 10월 호의 표지. '젊은 강화로(路)'의 주인공 김재민. 그는 훗날 카메라를 놓았고, 뒤로 보이는 동문 안길 현대 사진관은 이제 없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년 전 가을, 강화도에서 만난 한 청년 사진가. 이름은 김재민, '기억,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아드리고 싶은데, 어머니들이 '주름을 펴달라, 얼굴형을 깎아달라'라면서 '성형'을 원해 난감하다며 순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자란 그는 훗날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을 찍어드리는 것이 소원인 속 깊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그달 <굿모닝인천>의 표지를 밝혔습니다. 봄날의 들판처럼 환히 빛나는 얼굴이었습니다. 

짧은 만남으로 긴 인생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강화풍물시장엔 지금도 오일장이 열립니다.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푸는 자리엔 싱그러운 초록빛 들판이 펼쳐집니다. 뭐라도 사 먹어라, 장사하시던 한 어르신이 가는 발길을 불러 세워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손에 꼭 쥐여 줍니다. 아무리 마다해도 소용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해서 다 주고만 싶다고. 여린 것, 흔한 것, 못난 것 할 것 없이 자연의 산물도 다 소중하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살면서 잊어버리는 인생의 가치를 길 위에서 배웁니다. "내가 오늘 갈지 내일 갈지 어찌 아나. 꼭, 한번 다시 와라." 장이 열리는 봄날, 더 늦지 않게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습니다.

때로 사랑하던 공간이 사라지며 가슴에 아프게 박히는 순간도 있습니다. 중구 관동의 제일사우나. 창업자인 아버지가 '손님과의 약속이다. 적자가 나도, 절대 문 닫지 말라'던 목욕탕이 오십팔생을 일기로 수증기처럼 사라지던 날. 사장님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자책하고, 일흔하나의 세신사는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으며, 단골 '뽀야 아주머니'는 문 닫는 날까지 목욕탕을 찾으며 미련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함께 나이 들어가던 공간이 추억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일입니다. 누구라도 안녕을 고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기록으로나마 기억을 붙잡아야 했습니다.

30년, 긴 시간입니다. 가슴으로부터 떠오르는 이 모든 사람과 기억이 오늘 <굿모닝인천>을 있게 했습니다. 인천이 가슴에 와락 다가오도록, 사진 한 장 글 한 줄에 사명감을 다져 넣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인천 시민의 한결같은 사랑이 있기에, <굿모닝인천>이 세상에 362번째 발자국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仁生)은 인연(仁緣)들로 아름답습니다. 이제 30년, 씨실과 날실로 빛나는 시간을 엮어가며 우리의 인연은 계속됩니다.
 
강화 장날에 만난, 송순임 할머니. "다 주고만 싶어" 어렵게 살았어도 베풀 줄 아는 그에게서 인생의 가치를 배운다. 오글쪼글 주름지고 검버섯이 꽃처럼 핀 얼굴. 어여쁜 그 얼굴 위로 봄 햇살이 살금살금 비춘다. ⓒ 전재천 포토디렉터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온 아들. ‘관동 2가 8번지’, 아버지의 자리다. 제일사우나 김근동(사진) 대표의 아버지가 1965년 문 연 제일사우나. ⓒ 전재천 포토디렉터
 
965년 문 연 제일사우나. 58년간 이 동네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다 지난해 초 문을 닫았다. ⓒ 전재천 포토디렉터

책연(冊緣)

'책연冊緣', 책으로 이어지는 인연을 말한다지요. <굿모닝인천>과 오랜 시간 눈빛을 맞추며 온기를 나눠온 소중한 인연들을 만납니다. 사람과 마음, 희망을 잇고 시민과 시정을 잇는 인천시의 책연은 계속됩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매 순간, 인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로컬 아키비스트 곽은비
 
배다리 스페이스빔에서 곽은비씨. ⓒ 임학현 포토디렉터
 
배다리 스페이스빔에서 곽은비씨가 그러모은 학익동의 시간 ⓒ 임학현 포토디렉터
 
까만 눈동자가 반짝인다. 이제 막 서른 살이 되었다. <굿모닝인천>과 같은 나이다. 인천에서 눈뜨는 아침, 그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매일이 새롭고 설렌다.

로컬 아키비스트(Archivist), 곽은비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지역의 기록을 수집하고 보관, 관리하는 기록 활동가다. 인천을 가슴에 품고 책을 쓰고, 아카이빙 채널인 인스타그램 @hagik_archive을 운영하고 전시도 한다.

살아가는 동네를 그는 사랑한다. 중구 동인천동에서 태어나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유년 시절부터 지금껏 머물러왔다. 그 시대부터 오늘을 사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아파트가 그의 집이다.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이 숲을 이루지만 삭막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웃, 친구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떠오르는 기억은 따스하고 정겹다. 시멘트 바닥에서 땅따먹기하고 구슬치기를 하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학교를 오가던 길은 어느덧 출퇴근길이 됐다. 가파른 세상의 속도에 휩쓸려 동네도 점점 변해갔다. 사람이 하나둘 떠나고 풍경은 빛바래져 갔다. 재개발 소식이 들려오더니 철거 표식이 나뒹굴고 펜스가 높다랗게 쳐졌다. 그 길을 걷는 발걸음이 자꾸 더디고 무거워진다. 그렇게 빛나던 시간을 기록으로 붙잡겠노라, 다짐했다.

돌아보면 <굿모닝인천>이 그 시작이었다. 책상에 묶여 있던 고등학생 시절, 책만 펼치면 인천의 역사적 장소와 숨은 공간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노트에 꼼꼼히 적어놓고 훗날 찾아가기도 했다.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장소를 두 눈에 담으며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도 커져갔다.

"30년 동안 <굿모닝인천>이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건 인천의 역사와 삶을 기록해 왔기 때문이에요. 지금처럼 깊이 있고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로, 40년, 50년 후에도 시민의 가슴에 남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사랑하는 인천이, 서른 살 동갑내기 <굿모닝인천>과 그를 하나로 이었다.

애독자 홍혁기
 
가족 앨범을 실은 8년 전 <굿모닝인천>을 보는 홍혁기씨 ⓒ 임학현 포토디렉터
 
손때 묻은 책을 서가에 꽂을 때의 충만함. 책을 읽는다는 건, 촉감으로, 향기로, 추억을 두고두고 간직하는 일이다. ⓒ 임학현 포토디렉터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반갑게 알은체를 한다. 내 이름 세 글자가 새겨진 글도 꼬박 챙겨 본다고 했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기사를 찾고서야 생각이 났다. 8년 전, <굿모닝인천>을 통해 시민의 가족 앨범을 공모한 적이 있다. 사적인 공간에 숨겨진 인천을 본다는 취지였지만, 한 가족의 순간순간이 담긴 보물 상자를 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단 서너 번 만에 연재는 끝났다. 홍혁기(50)씨는 가족 앨범을 공개한 첫 번째 독자였다. 

오늘, 다시 만난 그의 품에는 <굿모닝인천>이 안겨 있었다. 2009년 인천세계도시축전과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특별판, 편집진도 챙기지 못하고 지나친 특집호 아닌 200호, 300호 특집호, 지난달 발간한 창간 30주년 호까지. 그리고 책 12권에 선명히 새겨진 '올웨이즈 인천(all_ways_ Incheon)'. 2018년에 책자를 매달 모아 차곡차곡 쌓으면, 책등으로 인천시 도시 브랜드 이미지가 완성되는 이벤트를 했었다. 이마저도 정성스레 모아 자랑스레 보여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책장을 손으로 만지며 넘길 때의 정서적 교감, 가지런한 서체와 디자인을 볼 때의 즐거움, 손때 묻은 책을 서가에 꽂을 때의 충만함, 아름다운 장정의 책을 선물할 때의 기쁨을... 책을 읽는다는 건 또 만든다는 건, 촉감으로 향기로 기억을 두고두고 간직하는 일이다. 

"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마음 다해 노력하겠어요. 그 생각을 하면 책을 쉽게 버릴 수가 없어요. 언젠가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 '우리 시에도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런 월간지가 나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제가 다 기분이 으쓱했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에겐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이 가장 큰 힘이다. 시민이 있기에 <굿모닝인천>이 있다. 

"앞으로, 400호 발간 때도 모셔야겠어요."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한다. "그럼요. 다음 호가 362호니까, 400호가 되려면 딱 3년 2개월 후네요." 책연(冊緣)으로 맺어진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을 약속했다. 

포토저널리스트 김성환
 
김성환 작가 ⓒ 임학현 포토디렉터
 
<굿모닝인천>과 함께 인천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역사를 기록한 김성환 작가 ⓒ 임학현 포토디렉터
 
김성환 작가의 첫 인천 작품, 1997년 4월 호 <내고장인천> ⓒ 임학현 포토디렉터
 
그 긴장과 떨림, 다소 상기됐지만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시립무용단 오디션을 앞둔 무용수의 옆모습, 1997년 4월 호 <내고장인천>의 표지다. 당시로서는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할 만큼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처음 인천과 만났다. 

포토저널리스트 김성환(57), 27년 인천의 긴 시간과 공간 속에 그가 있었다. 처음엔 그저 먹고사는 일이었다. 당시 표지 사진을 찍고 받은 돈은 단 2만 5천 원. 좋고 싫을 것도 없이 한 달 한 달 그저 주어진 대로 묵묵히 일했다. 타고나길 책임감이 강하고 최선을 다할 줄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곳이 산이든 바다든 섬이든 도시의 아래든, 하늘 위든 그 어디라도 갔다. 그리고 몰입했다. 시각뿐이 아니다. 뷰파인더 너머 세상에 온 감각을 집중해 외면받고 숨겨진 곳까지 기어이 찾아내어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를 든 순간만큼은 피사체 외에 세상 모든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지금까지 30만 컷 이상의 사진으로 인천을 담았다. 도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명감이 그 무게를 더해 갔다.

"2000년대 초 허허벌판이던 송도국제도시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갯벌을 메워 새 땅을 만들고 도시를 세우는 과정을 사진으로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작가로서 가치 있는 기록을 남겼다는 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에요."

처음 인천을 만났을 땐 가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지금은 답을 찾았다. "인천의 가장 큰 매력은 역동성이에요.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 조감도로 본 미래가 짧은 시간 안에 현실이 됐지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도시, 더 밝은 내일을 확신합니다." 오늘 상상하는 인천의 미래가 그의 사진 속에 현실로 펼쳐질 그날을 기다린다.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시간 속에 그가 있었다. 인천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리라. "어쩌면 태어난 고향보다 인천을 더 아끼고 사랑해요. 작가로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법은 사진으로 각인해 세상에 오래도록 남기는 일입니다." 

서른에 인천을 만나 어느덧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보냈다. 긴 세월 온 힘을 쏟아내며 움직인 몸은 이제 카메라를 들기도 버거울 만큼 닳고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자신의 자리에서 인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묵묵히 써 내려오지 않았던가.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같은 뜻을 품은 누군가가 이어가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고 '이 사람, 오랜 시간 참 열심히 인천을 담아왔네. 기억할 만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어요. 사진작가로서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요."

긴 시간 그와 함께 인천을 파고들었던 내가, <굿모닝인천>을 한 컷 사진으로 마음에 두고 간직하는 독자들이 안다. 그는 인천이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2001년과 그가 항공촬영으로 기록한 송도국제도시.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2021년 그가 항공촬영으로 기록한 송도국제도시. 상상을 현실로 일궈낸 20년 시간이 있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27년 긴 인천의 시간과 공간 속에 임성환 작가가 있다. 그곳이 산이든 바다든 섬이든 도시의 아래든, 하늘 위든 그 어디라도 사진으로 붙잡아 기록했다. ⓒ 임학현 포토디렉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굿모닝인천>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굿모닝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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