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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슈퍼마켓에 기네스 맥주가 산처럼 쌓였다. 성 패트릭의 날이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어느새 성 패트릭의 날은 맥주 쌓아놓고 마시는 주말 축제가 돼버렸지만 성 패트릭이 이런 사실을 아시면 뭐라 할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토속신앙을 따르던 아일랜드에 목숨을 걸고 기독교를 전파한 분이 성 패트릭인데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사순절 기간에 자신의 기일을 빌미삼아 벌이는 술 파티라니. 

패트릭은 어린 시절, 아일랜드의 켈트족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살았다고 한다. 탈출한 그는 가톨릭 사제가 되자 자원하여 아일랜드 선교사로 떠났다. 다른 선교사들이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원주민들 속에서 고전할 때, 아일랜드를 잘 알고 있던 패트릭은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기독교를 토착화시켰다.

어쩌면 노예로 살던 곳을 쳐다도 안 보고 그들을 평생 미워할 수도 있었는데, 영국인이었던 그는 오히려 평생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일대를 다니며 켈트인들을 품었다. 로마 가톨릭 문화를 억지로 심기보다 아일랜드의 문화와 자연 속에서 진리를 깨우쳐줄 방법을 찾았고, 대표적인 도구가 바로 들녘에 퍼져있던 클로버(Shamrock)이다.
  
맨해튼 한가운데서 시작된 퍼레이드 
 
여러 지역과 그룹에서 참여한 백파이프 연주단이 퍼레이드에 합류했다. 맨해튼은 오후내내 백파이프 소리로 가득했다. 성패트릭은 5세기경, 자신을 노예로 삼았던 켈트족에게로 다시 돌아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일대에 기독교 신앙을 전파 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 성 패트릭의 날 퍼레이드 여러 지역과 그룹에서 참여한 백파이프 연주단이 퍼레이드에 합류했다. 맨해튼은 오후내내 백파이프 소리로 가득했다. 성패트릭은 5세기경, 자신을 노예로 삼았던 켈트족에게로 다시 돌아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일대에 기독교 신앙을 전파 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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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성 패트릭의 날에 축제가 크게 열리는 도시 중의 하나가 내가 사는 뉴욕이다. 성 패트릭의 기일인 3월 17일에는 온종일 백파이프 소리가 도시를 울린다. 올해는 17일이 일요일이라 전날인 16일(현지 시각)에 행사를 치렀다. 맨해튼 한가운데 자리한 중앙역(Grand Central Station)에서 출발하는 대형 퍼레이드로 도심 곳곳에 차량 통제가 이뤄진다. 단일 민족의 축제로 도심이 마비될 지경이니 대단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들의 미국 이민 역사를 생각할 때 선조들의 고달픔이 오늘의 자부심으로 피어날 만하다. 

퍼레이드 행사가 전부가 아니다. 3월에 들어서면 미국 전체가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아이들 학교에서는 금화를 모으는 아일랜드의 요정 레프러콘(Leprechaun)이 미술 시간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초록색 의상을 입고 오렌지 수염을 기른 작은 요정은 아일랜드 국기 색을 연상시킨다. 레프러콘을 잡는 전통적인 덫 모형을 만들기도하고, 초록색 의상을 입고 등교하는 날도 있다. 아일랜드 국기 가운데에 세 잎 클로버를 그려 넣기도 하고 교실 파티가 있는 날엔 온갖 초록색 간식들이 차려진다. 학교에서 먼저 아이리시 문화에 친숙해지는 것이다. 
 
3월 17일은 성패트릭의 날이다. 뉴욕 일대에서 맨해튼에 모인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 성패트릭의 날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백파이프 연주자들 3월 17일은 성패트릭의 날이다. 뉴욕 일대에서 맨해튼에 모인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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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민 역사에서 아일랜드계는 두 번째 민족 대이동(1820~1860년)으로 기록된다. 독립전쟁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민족 이민이다. 40년 간의 혹독한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 대서양을 건넜던 아일랜드계 선조들은 먼저 정착했던 앵글로-색슨 이민자들로부터 외국인 혐오와 종교 혐오를 받았고 고된 노동을 도맡아 했다.

개신교인이던 엥글로-색슨계 백인과 다르게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자녀도 많이 낳았다. 아일랜드 인구의 1/6이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은 본토 아일랜드 인구의 6배가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법정기념일이 된 김치의 날... 내 상상도 실현이 될까?
 
전통복장을 한 아동이 초록색 북을 두드리고 있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에 기독교 복음을 전하며 아일랜드의 자연을 사용하고 묵상하게 했다고 한다.
▲ 초록색 북을 두드려보는 아동 전통복장을 한 아동이 초록색 북을 두드리고 있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에 기독교 복음을 전하며 아일랜드의 자연을 사용하고 묵상하게 했다고 한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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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미국에서 뉴저지주가 '김치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시-주 단위로는 13번째이다. 미국에서 한국인은 아직 소수인종이지만 세계화된 K 문화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십대인 우리집 아이와 학교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한국 하면 어떤 색깔이 떠오르냐고. 다들 선뜻 말하진 못했지만, 김치, 붉은 악마, 떡볶이, 뉴욕 타임스에서도 베스트 라면으로 꼽은 매운맛 라면 등을 들며 '빨강'을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빨강은 중국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한국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내게는 한복하면 노랑이나 색동저고리에 다홍치마인데 한국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량 한복, 퓨전 한복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다수가 한국 전통 노래로 '아리랑'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 노래하면 '강남 스타일'을 비롯해 K-POP에 훨씬 익숙한 세대라 각자가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가 먼저 나왔다. 

눈으로는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성 패트릭의 날 퍼레이드를 구경하면서, 머리는 다른 상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의 요정(?) 도깨비, 미국 전역에 퍼진 태권도가 요가 대신 미국의 체육 시간에 들어오고, 동네마다 솔솔히 볼 수 있는 무궁화가 벚꽃 대신 뉴욕 전역에 가득 피어나고, 사물놀이 소리가 김치의 날에 하루 종일 맨해튼에 울리는 기분 좋은 상상 말이다. '김치의 날'은 첫걸음일 뿐 상상 속의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태그:#성패트릭의날, #맨해튼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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