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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사람 곁의 사람'이란 말이 사무친다.

사람이 가진 힘, 취약한 개인을 돕고 지원하려는 주변 사람들의 네트워크,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와 함께 살면서 느꼈던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누구보다 앞서서 공동체적 윤리에 대해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개개인이 가진 선의든, 강제할 시스템이든, 일상의 어려움을 나누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 깨달아가는 중이기에.

그러나 때로는 바로 그 '사람'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실은 꽤 빈번히 그렇다. 생의 사소한 순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내가 죽고 나서 자녀가 마주할 세상을 그릴 때에 불안감은 엄습해온다.

개인의 취약성을 근거로 무한한 착취와 학대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 집단들을 마주할 때, 내 자녀가 갖고 있는 지적장애라는 특성을 악용하여 착취와 학대를 일삼는 집단을 목격할 때는 더더욱.
  
염전 노예장애인 사건 가해자 엄중처벌 촉구 및 법적 대책마련을 위한 기자회견, 2014년 2월 25일, 경찰청 정문 앞
 염전 노예장애인 사건 가해자 엄중처벌 촉구 및 법적 대책마련을 위한 기자회견, 2014년 2월 25일, 경찰청 정문 앞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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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노예노동'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에게는 공포와도 같았다. '노예'로 납치돼 새벽 3시부터 18시간을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통틀어 받은 돈은 70만 원, 경제적 이득 앞에선 법과 윤리 따위는 안중에 없다. 지적장애인을 가두고 착취하고 학대하며 인간에게 꼭 필요한 소금을 얻는 것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적장애인 염전 노예'는 수식어는 바뀌지 않은 채 공간만 옮겨왔다. 이번에는 '사찰 노예'다.

32년간 사찰에서 주지 승려로부터 노동착취와 폭행, 폭언을 당한 지적장애인이 가까스로 탈출해 수년 법정 싸움을 벌였다. 1심(2022년 6월)과 2심(2023년 2월)에서 모두 승소했으나 지난 1월 대법원이 결과를 뒤집었다.

이 사건을 마주하며 처음 든 감정은 당혹감과 분노였다. 개요는 더욱 놀라웠다. 소위 말하는 염전 노예 사건과 착취 양상이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하루 18시간 무임금 중노동을 매일같이 하며 살았다고 한다. 자는 시간 외엔 계속 노동을 해야 했다. 피고는 2008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지적장애인 피해자에게 예불, 마당 쓸기, 잔디 깎기부터 농사, 제설작업, 경내 공사 등 노동을 시키고 급여 총 1억2929만5200원을 미지급한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는 피고인 주지 승려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을 듣고 폭행당해야 했다. 머리도 맞고 엉덩이도 걷어차이고 멱살잡이를 당하며 질질 끌려 나가기도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느리다는 것,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일을 잘 못 한다고 맞고 걷어차이고 멱살잡이 당하는 폭력, 이게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 학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와 함께 거주했던 비장애인 스님에게도 별도의 급여를 지급한 적이 없다"면서 무죄라 판결하고, 피해자가 겪은 폭력 역시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폭력"이라고 단정지었다.

한편, 피고는 2016년 4월 피해자 명의로 서울 노원구 상계동 소재 아파트를 구입하고 2018년 1월 피해자 명의의 계좌에 대한 출금전표 2매를 작성해 은행 직원에 제출한 혐의도 있었으나 법원은 이를 묵살했다. 피해자의 명의를 도용해 아파트도 구입하고, 통장 개설도 하며 금융 행위를 한 행위들이 그저 피해자에게 부동산 가액도 보유됐던 셈이니 없어질 수 있는 불법행위인가? 대법원이 이같은 불법행위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지적장애인은 그런 대우를 당해도 되는 존재인가.
  
사찰 내 장애인 노동착취 및 경찰의 부실수사 규탄 기자회견, 2019.7.10(수) 개최, 참가자들이 모여 경찰의 부실수사를 규탄하고 있다
 사찰 내 장애인 노동착취 및 경찰의 부실수사 규탄 기자회견, 2019.7.10(수) 개최, 참가자들이 모여 경찰의 부실수사를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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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의 판단을 뒷받침해주는 논리는 더욱 고약하다. '오갈 데 없는 장애인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줬다'는 것. 누구도 돌보지 않는 장애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는 것이 감금과 강제노동 그리고 착취를 합리화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매일같이 때리면서 일 시키고 명의까지 도용한 자에게 지적장애인 피해자는 그저 착취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실제 차별받는 삶들에 대한 이해라고는 1도 없는 가해자 편의, 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 판결인 이번 판결은 사법의 수치다. 최소한 차별이나 착취에 대한 사회적·사전적 정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리들이 얼마나 가볍고 허술한지 이번 판결을 통해 뼈져리게 느꼈다.

'비장애인 승려들을 착취하는 것과 동일하게 착취했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고 되레 피고는 '사회 통합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남긴 대법원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정의하는 차별은 무엇인가?'
'당신이 정의하는 착취는 무엇인가?'
'당신이 정의하는 장애인의 사회 통합은 무엇인가?'
'당신은 대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왜 제정되었다고 보는가?'


장애를 이용한 학대와 착취를 당연시하며, 오히려 장애인을 먹여주고 보살펴주었다는 어불성설의 논리가 사회에 통용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인식을 가진 사법기관과 권력의 존재 탓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해 '차별 없는 세상, 완전한 통합사회'를 촉구하며 전국의 땅바닥을 기어가며 간절한 염원을 알려내는 오체투지 투쟁을 벌였다. 그만큼 엄중한 투쟁으로 쌓아 올린 차별과 통합이란 개념을 오용하고 왜곡하며, 차별받아온 당사자들을 모욕하는 사람들과의 공존을 지속해야 한다는 게 참담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백선영씨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입니다.


태그:#지적장애인, #사찰노예, #대법판결무죄규탄, #차별과학대, #장애인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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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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