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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100명의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 기사입니다. [기자말]
추운 날씨에 지지 않기 위해 두꺼운 외투를 입고 첫 국가인 일본으로 떠난 지도 한 달, 대만과 싱가포르를 거쳐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나라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지난해 3월 말, 싱가포르 페리 선착장인 하버프론트에서 한 시간 정도 페리를 타고 인도네시아의 조그만 섬, 바탐에 도착했다.
  
오토바이가 많은 동남아시아 답게, 인도네시아 바탐도 오토바이로 도로가 채워진다.
▲ 인도네시아, 바탐 오토바이가 많은 동남아시아 답게, 인도네시아 바탐도 오토바이로 도로가 채워진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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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은 수도인 자카르타와 달리 많은 편의 시설이 조성되어 있지도 않고, 휴양지인 발리와 달리 다양한 관광 상품이나 섬이 가진 고유문화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에게는 골프로 나름 알려진 섬이지만, 여행자에게 바탐은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수많은 섬 중 그저 한 섬일 뿐이다. 그러나, 바탐에 일주일 동안 머무르게 된 이유는 잠시 여행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다. 

여행자 커뮤니티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Nabillia(아래 나빌라)는 내게 일주일 동안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우리는 함께 나시고랭을 먹고, 산책을 즐기며 서로의 우주를 공유했다. 나빌라의 얘길 들을수록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내 문고리에 간식을 걸어두는 기척 소리를 듣고, 그를 붙잡아 살며시 물었다.
 
데이지 꽃과 함께 나빌라는 미소를 짓고 있다.
▲ 미소짓는 나빌라 데이지 꽃과 함께 나빌라는 미소를 짓고 있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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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른인 나빌라는 인도네시아 바탐에서 태어나 자라왔다. 그는 6살 때는 자카르타 옆 도시 Bogor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도 졸업해 더 큰 도시에 나갈 수 있었지만, 편찮은 엄마를 돌보고자 2015년에 바탐으로 돌아왔다. 

나빌라의 어머니가 19살의 풋풋한 소녀였을 당시, 그는 34살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20살이 되던 해, 그들은 나빌라를 낳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10개월을 나빌라 곁에 있다 세상을 떠났단다. 고작 스무 살에 10개월 아기를 홀로 책임지게 된 어머니는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투쟁의 고됨은 나빌라에게 돌아갔다. 조금씩 자기 딸에게 정신적, 물리적으로 학대를 하기 시작했다. 단순 수학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아이를 벽에 밀치고 때리는 식이었단다. 

나빌라를 감싼 흰색 히잡은 옅은 분홍색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지만, 나빌라가 견뎌온 지난 세월의 아픔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나빌라에게 행한 폭력을 들으며 조금씩 주먹이 쥐어지는 내 모습을 보고 나빌라는 말을 잇는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가 내게 했던 짓들을 미워하지는 않아. 나는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야. 모두에는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대처하는 법이니까."

나빌라가 7살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계부와 새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아우렐리아라는 예쁜 동생도 생겼다. 이야기하며 나빌라는 옆 아우렐리아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새 가족을 만나 그동안 나빌라가 동생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었는지 짐작이 간다. 

 "상황은 변하지 않아, 변할 수 있는 건 우리의 태도야"
 
동생 아우렐리아는 방학을 맞아 나빌라집에 찾아왔다.
▲ 나빌라와 그의 동생 아우렐리아 동생 아우렐리아는 방학을 맞아 나빌라집에 찾아왔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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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나아진 것 같았지만, 어머니에게서 받은 학대는 그에게 보이지 않는 자국을 남겼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툴렀다. 다른 이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언제나 자신이 모든 부담을 지곤했다.

그는 전 남자친구의 강압적인 태도와 폭행을 그저 이해하려고만 했다. 당시 술에 취한 전 남자친구는 나빌라가 원치 않음에도 강제로 나빌라를 거칠게 다루었다. 지금에서야 성폭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 19살이던 그는 단추가 완전히 나간 셔츠의 매무새를 잡고 울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랜 동안 모든 일이 자기 탓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스스로에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 순간, 모든 게 변했단다. 실제로 그가 받은 상처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너에게 행하는 행동, 상황은 변하지 않아. 네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너의 감정, 너의 태도야. 너는 그걸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해." 

나빌라는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남에게 표현하기 시작했고, 타인의 감정에 경청했다. 누군가의 숨겨진 감정도 무시하고 싶지 않은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나빌라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신의 삶의 이유, 당신만의 '데이지'는 무엇인가요?"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데이지. 이걸 질문하자 그는 줄곧 깊은 본인의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연습을 많이 해왔다는 듯 잠시 숨을 고른다. 짧은 정적을 깨고 나빌라는 말문을 연다. 

"모두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야.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짙은 상처가 아문 것은 나빌라 본인의 깊은 이해심이라는 처방 덕분인 걸까. 이해라는 무기를 가진 나빌라는, 삶에 있어 누구보다도 강한 전사와 같았다. 

"언제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 너는 단지 그 일에 대해 우울해할지, 아니면 괜찮아져서 삶을 계속 나아갈지 선택하면 돼. 삶은 역동적이야. 우리는 역동성 안에서 그저 선택하는 거지."

우리가 빛을 잘 발견하는 순간은 정작 어둠 속에서다. 마찬가지로 슬픔이 있기에 행복이 있고, 사무치게 슬픈 감정을 느끼기에 행복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트라우마에서 스스로를 마주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승화시킨 나빌라는 행복의 원리를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한 것이 아닐까. 

오늘도 자신을 감정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려는 나빌라의 삶을 응원한다. 인도네시아, 바탐에 데이지가 핀다. 다음 목적지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원본 대화는 기사 발행 일주일 후 기자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블로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태그:#데이지, #인도네시아, #바탐, #NABILLIA, #삶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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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1년간 떠난 21살의 45개국 여행, 그 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 <너의 데이지>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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