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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충훈부 벚꽃길에서 산책중인 어린이집 아이들 4일 오전 10시 경,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야외 활동을 나와 아이들이 벚꽃터널을 거닐고 있다. ⓒ 김은진

4일, 충훈부 벚꽃길에 드디어 꽃이 피었다. 이 길은 안양시 충훈동(이전 석수3동)에 위치한 충훈1교에서부터 시작되어 안양천 하류쪽으로 둑마루 양쪽 끝에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 약 1.3km 구간을 말한다.

오래된 벚나무 양쪽 가지가 서로 마주 보며 얽혀있어 꽃이 피면 벚꽃 터널이 된다.

충훈부는 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받아보던 관청의 이름으로 충훈동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옛 충훈부 터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 후 더 기다려진 개화
  
4일, 충훈부 벚꽃길에서 유치원 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안양천 변을 걷고 있다. ⓒ 김은진
 
지난 주말 이곳에는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열렸다. 긴 꽃샘추위에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날씨를 예측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인가 보다.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도 많이 난감했을 것이다. 주인공 없는 잔치집이지만, 가수도 오고 먹거리도 팔고 나름 즐길거리가 있었던 이틀간의 축제였다.

마음속에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축제가 끝나고 나서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충훈부 벚꽃이 하루 늦게 피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화창하고 따뜻했던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 지나도 꽃이 피지 않자 새로운 기후변화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수요일에는 비가 내렸는데 이 비에도 꽃이 피지 않으면 이게 뉴스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있을 자리에 없는 것처럼 계속 꺼림칙했다.

다행히 목요일에 벚꽃이 피었고,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세상이 다시 제대로 돌아가고 드디어 봄다운 봄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4일, 충훈부 벚꽃길에서 추억 사진 찰칵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벚꽃을 배경으로 아이들에게 추억 사진으로 남겨 주고 싶어 애쓰고 있다. "얘들아 여기를 봐. 만세, 선생님처럼 펄쩍 뛰어볼까? “ ⓒ 김은진
   
충훈부에 벚꽃이 피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특히 4일 오전 10시경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야외활동을 나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벚꽃을 배경으로 아이들에게 사진으로 남겨 주고 싶어 애쓰고 있었다.
 
"얘들아 여기를 봐. 만세, 선생님처럼 펄쩍 뛰어볼까? "
 
꽃보다 예쁜 아이들

선생님이 앞에서 먼저 펄쩍 뛰며 두 팔을 들어 보였다. 꼬마들도 즐거운지 엉덩이를 뒤로 빼며 뛰는 시늉을 했다. 봄날 충훈부 벚꽃길에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봄꽃보다 예쁜 아이들이다.
 
안양천 정화 봉사를 하는 석수초 학생들 석수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로 교과 봉사 시간에 학교 주변 벚꽃길에 나온다고 했다. ⓒ 김은진
   
한참 꼬마들을 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집게와 봉지를 들고 안양천 정화작업을 마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로 교과 봉사 시간에 학교 주변인 벚꽃길에 나온다고 했다.

잠시 뒤에 한 손에 그림이 오려진 종이를 들고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이 보여 지도교사에게 무슨 수업이냐고 물어보았다. 인근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로 미술수업을 충훈부에서 했다고.
 
인근 고등학교에선 반 전체가 담당 교사와 함께 나와 벚꽃길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많이 힘들 테니 이곳에서 힐링하며 재충전하라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벚꽃길이 모두에게 봄을 선물하고 있는 듯했다.
 
잠꾸러기 벚꽃이 피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벚꽃맞이를 하고서야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사람들에게도 일 년 동안 나이테를 만드는 과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벚꽃길에서 봄마중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며칠 동안 벚꽃앓이를 한 덕일까. 사람들도 이 즐거움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안양천 충훈부 고수부지 이곳엔 금잔화, 팬지, 수선화, 히야신스 등이 심어져 있었다. 4일 오전, 지도를 보고 있는 방문객. ⓒ 김은진
 
안양천 고수부지에는 금잔화, 팬지, 수선화, 히야신스 등이 심어져 있었다. 강렬한 히야신스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수국처럼 색상도 다양하여 이런 꽃도 있었나 싶어 열심히 바라보는데 머리가 희끗한 여성이 핸드폰을 건내며 말을 걸어오셨다.
 
"저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흔쾌히 찍어드린다고 말하고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병원 다녀오는 길이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활짝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검사 결과가 좋아서, 혹은 이제 치료를 시작해야 하니 마음 단단히 먹고 건강을 되찾자는 결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멋진 꽃을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며, 저 분이 매년 환한 웃음으로 꽃과 함께할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4일, 나무기둥에 핀 충훈부 벚 나무기둥을 뚫고 피어나는 벚꽃 ⓒ 김은진
 
벚꽃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남기려는데 지나가던 여성이 갑자기 내게 묻는다.
 
"찍을 때 어떤 느낌이 들어요?"
"이 꽃이 그대로 마음속에 들어와 꽉 채워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여성이 만족한 듯 감탄사를 연발한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자 꼬마들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이 안양천 징검다리를 건너며 왜가리도 바라보고 잉어도 바라본다. 한걸음 한걸음 작은 발걸음들이 봄을 더 따뜻하게 채우는 것 같다.
 
충훈부 벚꽃길 주차장에 세워진 배달트럭 4일, 충훈부 벚꽃 길 주차장에 택배 트럭이 세워져 있다. 배달 물품 안에 벚꽃 그림자가 행운처럼 스며드는 듯하다. ⓒ 김은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배달 차량 앞 유리 위에 벚꽃 그림자가 가득하다. 배달 물품 안에 벚꽃 그림자가 행운처럼 스며드는 듯했다.
   
충훈부 벚꽃은 이번 주말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뿌리내린 곳에서는 언젠가 꽃이 피기 마련이니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안양천 주변 여기저기에 기다렸던 벚꽃이 만발하고 있다. 모두에게 솜사탕처럼 달콤한 봄이 시작되었다.
 
충훈부 벚꽃길에서 솜사탕 색 방호벽에 앉아있는 아이들 4일, 충훈부 벚꽃길을 방문하여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알록달록 솜사탕색으로 색칠되어 있는 방호벽에 앉아있다. ⓒ 김은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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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충훈부벚꽃, #안양천, #봄꽃, #석수초, #안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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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꽃화분처럼 바라보는 작가이자 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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