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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엔 많은 문학상이 있지만 개중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노벨문학상이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 평화, 경제학 등 인류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의 한 가지로 문학부문이 있는 탓일 테다. 특히 첫 수상이 시작된 1901년부터 문학상이 한 갈래를 차지했다는 점은 주최 측인 스웨덴 아카데미가 문학과 인류의 진보 사이에 특별한 관련성이 있음을 인정한 때문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언어적으로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에 크게 치우쳐 있고,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 우호적이며, 성별과 국제정치 등 작품 외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비판을 받기도 한다. 레프 톨스토이, 마르셀 프루스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작가 여럿이 이 상을 받지 못했단 점도 글 쓰는 이들 사이에서 노벨문학상과 관련해 자주 나오는 이야깃거리다.

그럼에도 노벨문학상은 대단한 파괴력을 지녔다. 매년 역대 최저를 갱신하며 연 평균독서량이 3.9권까지 떨어진 한국의 현실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군은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도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만큼은 아직 읽힌다는 소식이 약간이나마 희망을 안긴다.
 
책 표지
▲ 아침 그리고 저녁 책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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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욘 포세의 대표적 소설

지난해엔 아니 에르노가, 올해엔 욘 포세의 책이 그렇게 주목을 받았다. 2011년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이후 12년 만에 북유럽 수상자가 된 욘 포세는 이전까진 한국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였다. 1959년생으로 60대 중반의 나이, 희곡과 소설 모두에서 굵직한 업적을 쌓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희곡 부문에선 근대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크 입센과 비교될 만큼 걸출한 작품을 여럿 써내 노르웨이 제일이라 해도 틀리지가 않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아마도 욘 포세의 수상 이후 가장 많이 읽힌 책일 테다. 이유는 간단하다. 희곡보다는 소설이 읽기 쉽다는 점, 번역된 그의 소설 중에서 비교적 대중적이며 그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분량이 150p가 채 되지 않아 금세 읽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을 테다.

작품은 어부 올라이와 그 아내 마르타가 둘째를 얻는 것으로 시작한다. 늙은 산파 안나의 도움을 받으며 마르타가 출산을 하는 동안 올라이는 집 바깥에서 마음을 졸인다. 겨우 아들이 태어나고 올라이는 둘째에게 요한네스란 이름을 붙인다. 올라이의 아버지 요한네스, 그러니까 갓 태어난 요한네스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소설은 금세 두 번째 장으로 옮겨간다. 화자는 요한네스다. 잠에서 깼지만 어딘지 찌뿌둥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그다. 어서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피곤하여 몸을 일으키기 쉽지 않다.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그는 마침내 담배 생각이 간절하여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로 전 장에서 갓 태어났던 요한네스는 어느덧 나이든 노인이다. 젊음은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결혼하여 근처에 사는 딸 싱네가 이따금 찾아오는 것이 그나마의 낙이라 할까. 

그로부터 소설은 요한네스의 하루를 뒤따른다. 친구인 페테르를 만나고 함께 대화하고 작은 어선에 올라 낚시를 하고 친구를 따라갔다가는, 오래 전 마음 담긴 편지를 건넸었던 여자와 마주친다.

또 늘 제가 머리를 잘라주었던 친구의 머리가 어느새 많이 자라 있는 모습을 보고 그걸 잘라주기로 약속하고, 돌아서는 길에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에르나까지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이야기를 펼쳐낸다. 소설은 요한네스의 하루를 뒤따른다(자료사진).
 <아침 그리고 저녁>은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이야기를 펼쳐낸다. 소설은 요한네스의 하루를 뒤따른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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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은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이야기를 펼쳐낸다. 한 어부가 자식을 얻는 장면으로부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고된 삶을 건너 마침내 죽은 뒤의 이야기로 단숨에 넘어가는 것이다.

요한네스와 그 친구 페테르, 그들이 삶 가운데서 만났던 이들, 마음을 품었고 위로가 되었고 동행했고 고마워했던 그런 이들을 하나씩 마주한다. 그 과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삶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라곤 전혀 없는, 차라리 일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어느 순간 제가 말을 거는 이가 몇 년 전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지만 너는 죽지 않았느냐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괜히 민망하여 굳이 말하지 않는 노인의 모습이 외로 자연스레 그려진다. 어느 순간 제가 만나는 이들이 만져지지 않고 그들 사이로 제 육체 또한 통과하는 모습을 받아들여가는 모습이 잔잔하고 평온하다.

어느 늙은 어부의 평온한 죽음

요한네스의 마지막 하루 가운데 특별한 사건이랄 건 벌어지지 않는다. 죽음 뒤 저 너머의 세계에 이르기 전의 하루, 통상 이런 류의 이야기를 다룬 다른 소설에서 마주할 법한 회한 가득하고 눈물 흐르는 이야기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죽음과 삶의 미묘한 경계에서 거닐고 있는 요한네스의 모습을 통하여 과연 죽음은, 삶은,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이며 관계들은 대체 무엇인지를 물어올 뿐이다.

실험적인 산문이라거나 음악적인 문장이라고 부르는 특색들이 한 차례 독일어를 거친 중역에도 얼마쯤 살아난 듯하다. 노벨문학상 스웨덴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은 작가, 이 시대 문학의 중심에서 첨단으로 나아가는 거장의 소설이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노르웨이와 한국은 살아가며 한 번도 겹치지 않을 두 곳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전자제품이 그곳에 있고 노르웨이에서 잡힌 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듯, 두 땅 위의 모든 인간이 태어나 죽고 끊임없이 질문하듯 닮아 있는 구석이 많음을 느끼게 된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삶이 녹녹지 않았던 어부가 다음 세계로 건너가고, 그가 떠난 뒤 제 아버지를 선한 이였다고 기억하는 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은 가지만 바다는 제 자리에 잔잔하고 푸르게 남아 있다. 평온한 죽음이다. 마땅한 이별이다. 아침 뒤에 저녁이 오듯이.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은이), 박경희 (옮긴이), 문학동네(2019)


태그:#아침그리고저녁, #욘포세, #문학동네, #박경희, #김성호의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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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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