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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아들이 결혼한 날, 사돈댁과 마주한 피로연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 사돈지간이지만 서로 어려워하지 말고 자주 만나자"며 "먼저 사돈댁을 조만간 방문하고 싶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내 딴에는 이러한 뜻이 결혼한 아이들에게는 물론 양가에도 선한 추억으로 남아 보다 친밀한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막상 제안은 했지만, 그렇다고 서로 왕래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관련 기사: 아들 결혼식 치르고 보니 많이 달라졌네요 https://omn.kr/26s4d ).

아들 결혼 뒤 처음 찾은 논산 사돈댁       

그런데 이후 방문일정이 아이들을 통해 곧바로 잡혔다. 그리고 사돈댁에서 내년 봄, 4월에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전갈이 왔다.
     
드디어 지난주 일요일, 사돈댁이 있는 논산을 찾았다. 투병생활에 얽매어 바깥나들이는 언감생심이었는데 이번 외출은 출발부터 '카타르시스'가 기대됐다.
 
종학당 2층 누각 정수루에서 멀리 트인 앞을 바라보았다.
 종학당 2층 누각 정수루에서 멀리 트인 앞을 바라보았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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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학당 2층 누각 정수루
 종학당 2층 누각 정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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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학당
 종학당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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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 도착하자 사돈은 우리를 종학당(宗學堂)으로 안내했다. 파평 윤씨 가문과 유림들이 공부하던 사설교육기관이다. 2층 누각인 정수루에 올라 멀리 전방을 바라보니 이곳이 배산임수의 명당임을 직감할 수 있다. 

정수루에서 조금 내려오면 전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008년 이곳을 예방했다는 기록과 금석문이 있다. 고르바초프와 유림도장의 연결이 신기했다. 

이어 우리는 인접한 '명재고택'으로 이동했다.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이 살던 집이다. 

완만한 경사지에 지은 집 앞의 너른 마당과 왼쪽의 정사각형 인공연못은 한옥의 고매함을 더했다. 연못가 '배롱나무'는 여름에 꽃이 피면 더 장관이라고 귀띔해 준다. 

그리고 이날 평소 볼 수 없는 후손들이 사는 '안채'도 들렀다. 마침 파평윤씨 문중의 방문이 있어 안채를 함께 볼 수 있었다. 

소론의 명수였던 윤증은 당시로선 '장수'를 누렸단다. 85세까지 살았다. 추측컨대 고즈넉한 가옥구조가 그의 장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 고택에 들어서니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과거로 '타임슬립'한 듯 명상하는 기분을 차분히 느낄 수 있었다.
 
명재고택의 사랑채가 보인다
 명재고택의 사랑채가 보인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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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 연못
 명재고택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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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돈관계가 자식들에게도 전수됐으면
    
사돈관계는 흔히들 어렵다고 한다. 자라면서 이 말을 부모한테 수도 없이 들었다. 부모님 세대에선 사돈끼리 실제 왕래도 거의 없었고 만나면 서먹서먹했던 추억뿐이다. 

특별히 멀리할 이유가 없는 한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결혼하면 집안끼리 서로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은 재산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베이비부머는 이전세대와 가치관이 여러모로 다르다. 사돈지간을 '불가원 불가근'의 관계로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도 바뀌고 있다. 

사돈지간에 가까이 살면서, 자녀들 없이도 별도로 만나 정기적으로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즐기는 동창들이 부러웠다. 

사실 이러한 내 생각의 롤모델은 증조할아버지다. 개풍 증조할아버지는 집수리를 장단의 소문난 대목수에게 맡겼는데, 이를 통해 두 분은 친해졌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는 대목수가 하는 일과 매무새가 퍽이나 맘에 들어 약주를 자주 대접했다. 두 분은 서로 존경하면서 집안 혼사까지 이야기하다 사돈관계로 발전했다고. 

이런 연유로 당시 30세 노총각 할아버지는 10살 아래 장단 할머니를 중매로 만나 혼인했다. 두 집안이 이후에도 서로 빈번하게 왕래하고 돈독한 사이가 됐음은 물론이다. 

아버지가 틈만 나면 들려주는 어릴 적 외가의 추억이 있다. 해마다 고향에서 딴 감 두 접을 외가 장단까지 심부름을 했는데, 당시 수십 리 길을 걸어도 힘든지 몰랐다고 한다. 

외가에 당도하면 외가 전체가 아버지를 개선한 장군 대하듯 환영했다고 한다. 집에서 먹지 못한 음식도 외가에서 먹을 수 있었다. 외가도 평상시 먹지 못하는 음식을 이때 내놓는 것이다. 

이처럼 증조할아버지는 장단의 사돈댁을 가까이하면서 자식과 손주도 이러한 유대관계가 깊어지기를 소망했다.
 
백마강 황포돛배
 백마강 황포돛배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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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탑정호 출렁다리, 국가기록원이 국내 가장 긴 출렁다리로 인증했다.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 국가기록원이 국내 가장 긴 출렁다리로 인증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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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돈댁은 이번 우리의 방문에 대비해 부여, 공주의 관광지도 두루 사전에 답사했다고 한다. 덕분에 '백제역사유적지'를 관람하고 백마강 '황포돛배'도 탔다. 우리는 탑정호 출렁다리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남기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 논산여행은 사돈지간에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됐을 것이다. 서울로 오는 시간 내내 기분이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카카오톡으로 정중한 답례 문자를 보냈다. 

"사돈관계를 떠나 오랜만에 감동했습니다. 여러모로 배려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논산 사돈댁과 다음 만남은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

태그:#사돈댁, #논산, #명재고택, #고르바초프, #종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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