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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편집자말]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69세> 중
  영화 <69세> 중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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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나이에 대한 구분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뚜렷한 사회다. 특히나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는 누가 윗사람인지 서열정리부터 해야 상대를 부르는 호칭이 정리되고 그 다음 관계로 진척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나이에 대한 구분이 '구별'에서 머물지 않고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나이에 따른 차별의 문제는 윗사람이 행사하는 아랫사람에 대한 멸시와 무시가 대부분이었다. 아랫사람을 '버릇없고 철없는 젊은이'로 규정하고 무조건 윗사람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겨야 한다며 '라떼는'을 입에 달고 사는, 이른바 '꼰대짓'이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은 이러한 풍조에 더해서 나이가 많은 윗세대에 대한 조롱과 멸시 또한 더해졌다. 아마 조금만 최신어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틀딱'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으리라. '틀니를 딱딱거린다'는 뜻으로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다. 최근에는 '노슬아치'라는 단어도 생겼는데 노인과 벼슬아치의 합성어로 '나이 드는 것을 벼슬로 생각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언어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니 이런 신조어의 탄생만으로도 노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가늠해볼 수 있다.

'에이지즘(agizm-연령차별)'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인식을 정의한다. 미국의 노인의학 전문의 버틀러(Robert N. Butler)가 노년이 되면서 겪는 차별을 지칭한 단어인데 노인을 상대로 공공연한 비난과 편견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태도를 개념화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무시하는 것 외에도 나이가 들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질 일반적인 감정이나 능력도 없을 것이라 여기는 생각, '노인이 그럴 리가'라며 믿지 않는 관습도 차별이 될 수 있음을, 영화 <69세>는 보여준다.

여성과 노년이라는 이중적 차별의 굴레

영화의 소재는 파격적이다. 69세의 여성 효정(예수정 분)이 치료를 받다가 29세의 남자 간호조무사 중호(김준경 분)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효정은 며칠 망설이다가 함께 동거 중인 동인(기주봉 분)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중호를 경찰서에 고소한다.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형사들은 피해를 입었다는 효정의 말보다 합의 하에 성관계를 나눈 것이라 진술하는 중호를 더 믿는 기색이다. 한술 더 떠 형사들은 동인을 몰래 불러 효정에게 치매 검사를 받게 하도록 권한다. 동인은 처음에는 그 말에 흔들려 효정의 상태를 의심하는 듯 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오히려 효정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애를 쓴다.

그러나 중호의 구속 영장은 매번 기각된다.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거짓이 나왔는데도. 우리가 흔히 성폭행 사건 관련 뉴스에서 자주 듣는 이유 때문이다. 피해자가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 저항의 흔적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이것이 범죄가 맞는지 의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해진다. 효정의 나이로 봤을 때 기억력이 의심되고 젊은 남성이 나이 많은 여성에게 성폭행을 자행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법원의 설명이 여성이자 노인이라는 신분을 가진 효정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그 자체를 대변한다.

이런 편견과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효정은 잠시 현실을 도피한다. 동인에게서 떠나와 이전에 간병을 하던 중증환자의 집에 다시 들어가 돌봄 일을 하며 숨어지내는 것. 사실 효정의 원래 직업은 간병인이고 동인도 간병을 하다가 만났었다. 그런데 효정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이런 일 안 하게 생기셨어요.' '나이 들었는데도 몸매가 참 예뻐요.' 무심코 던지는 그런 말 자체가 직업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희롱이 될 수 있다는 감수성은 전혀 무시된 채. 비슷한 의도로 '옷을 참 잘 입으시네요'라고 말을 하는 형사에게 효정이 대꾸한다.

"옷 잘 입는다고요? 나이 들어서 옷 잘못 입고 다니면 무시하고 만만하게 봐서 치근대요. 형사님 보시기에 이 정도 입고 다니면 제가 안전해 보입니까?"

효정의 이 대사가 여성 노인이 겪는 일상적인 편견에 대한 피로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영화는 여성과 노인의 신분이 겹치게 되면 그 편견과 차별의 정도가 더 심해지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밤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잠시 정신이 혼미해 길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효정이 지나가는 운전자에게 '나이들었으면 죽으라'는 심한 욕설을 듣는 장면, 나이 든 여성이 많이 택하는 직업인 돌봄노동자로 일하며 환자에게 추행을 당하는 장면 등이 이 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이끌어 다다르게 하고자 하는 세상의 단면이다.
 
  영화 <69세> 중
  영화 <69세> 중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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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차별의 과녁은 나 자신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를 쓴 저자 애슈턴 애플화이트(Ashton Applewhite)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애쓰지 않으면, 우리는 변해가는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중략) 편견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다. 늘 무지하고 대개가 적대적이다. (인종이나 성에 대한 편견과 달리) 연령에 대한 편견은 처음에는 자기와 다른 타인에 대한 혐오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로 바뀐다."

에이지즘은 결국 내가 쏜 뒤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화살과도 같다. 젊은 시절 내가 혐오하던 노인의 모습이 바로 나에게서 나타남을 발견하는 순간 자기혐오가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나이 들면서 생기는 신체적, 정신적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이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젊은이뿐 아니라 노인들 스스로도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늙으면 죽어야지' 같은 자조적인 발언이야말로 본인도 연령 차별자임을 인정하는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특정 성이나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세상의 차별 또한 타파해야 하지만 노년이라는 나이에 대한 편견과 혐오부터 걷어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은 언젠가는 늙어 노인이 될 테니까.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와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노인, #여성, #69세, #영화,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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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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