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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때 이해가 안 되는 어른들의 세상이 있었다. 학교나 책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아이였다. 그중에 하나가 동네 어른들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삼촌'은 아버지의 형제들, 혹은 어머니의 형제들이다. 이모나 고모도 모두 삼촌이지만 부모님의 남자형제들을 삼촌이라고 부른다. 삼촌은 친가이고 외삼촌은 외가다. 나는 할머니도 성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구분해서 불렀다.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는지 꼭 외자를 붙인다"며 섭섭해하셨다. 하지만 그건 나름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삼촌"이라고 했다. 심부름을 시킬 때는 "춘희삼촌한테 갔다 오라", "이거 권희삼촌한테 갖다 주라"라고 말했다. 이해가 안 됐다. 부모님과 성이 다른데 어떻게 삼촌이 되지? 용납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나이가 든 어른들은 다 삼촌이라고 불렀다. 아는 사람이던 모르는 사람이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모두 삼촌이었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도 동네 어른들을 "삼촌"이라고 소개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럼 진짜 삼촌에게는 어떡하지?

친척이 아니라도 삼촌이라고 부르는 동네에서 나는 '진짜 친적'을 가려내야 했다. 아빠의 여동생은 고모, 아빠의 남동생은 작은 아빠라고 불렀다. 엄마의 남동생 2명은  큰외삼촌과 꼬마삼촌이라고 했다.

나름대로 이름 뒤에 삼촌을 붙인 건 동네 삼촌들이고,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면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거였다. 그렇게 정리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제주도만의 특색이라는 것을 알았다.

식당에서, 과일가게 주인을, 버스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삼촌"이라고 부른다. 진짜 삼촌도 삼촌이고, 모르는 사람도 삼촌이다. 여자삼촌도 삼촌이고, 남자어른도 삼촌이다. 

제주도 남자와 결혼 뒤 마주친 또 다른 낯선 단어 

그런데 결혼 뒤 만난 상황.

느닷없이 '형님'들이 나타난 것이다. 각 잡고 인사하며 "형님"을 외치는 검은 양복사람들 밖에 몰랐던 나는 결혼과 동시에 많은 형님들을 모시게 됐다. 그중에 제일은 큰 아주버님의 부인. 즉 남편의 큰형수이자 나의 큰 형님이었다.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형님, 형님, 하고 부르고 있지만 결혼 초반에는 그 소리를 못해서 힘들었다. 
 
남편의 집안에서는 해마다 봄, 가을에 묘제를 지낸다. 묘제를 바라보는 아들, 제례복을 입은 아빠가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하는 아들의 뒷모습.
 남편의 집안에서는 해마다 봄, 가을에 묘제를 지낸다. 묘제를 바라보는 아들, 제례복을 입은 아빠가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하는 아들의 뒷모습.
ⓒ 문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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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집안에서는 해마다 봄, 가을에 묘제를 지낸다. 며칠 전엔 종친회에 속한 부녀회원들이 제사음식을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는 시어머니와 큰 형님이 대표로 갔다. 큰 형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하루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가지 못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묘제에서는 눈에 띄게 열심히 일을 했다. 서열이 낮은 사람이 하는 일이란 간단하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치우면 된다. 누군가 뭘 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다가가 대신해 준다. 쓰레기를 줍고, 그릇을 치운다. 천막을 걷고 과일상자를 차에 실었다.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간 고무대야 두 개에 물을 받았다. 나와 다른 집의 막내며느리가 자연스럽게 힘든 초벌설거지를 맡았다. 세제를 풀고, 제사 지낸 그릇들을 씻기 시작했다. 손목이 부러져라 박박 씻었다. 씻은 그릇을 옆에 있는 통에 넣으면,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분이 헹궈서 소쿠리에 엎어 놓았다. 

"삼촌, 제가 할게요." 

한참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일어나 빨간 고무다라를 손으로 잡는 게 보였다. 헹굼물이 가득해서 무거울 것 같았다. 서둘러 일어서며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분은 말없이 혼자 고무다라의 물을 비웠다. 나는 뻘쭘하게 서 있다가 다시 앉아 초벌설거지를 했다. 무거운 고무다라를 옆으로 기울이며,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삼촌이 아니구나. 

그 후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가 맡은 일을 묵묵히 했다. 설거지가 끝나고, 호수로 물청소를 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서려는데 누군가 씻어야 할 소쿠리를 들고 왔다. 그분이었다. 

"저, 아까 죄송했어요. 삼촌이 아니라 형님인데. 제가 뭘 모르고 삼촌이라고 했네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삼촌이라고 하는 게 맞아. 그런데 요즘은 나이 70도 젊어서 웬만하면 형님이라고 하는 게 좋아. 물론 나도 나이가 들만큼 들었지만... 사실 아까 삼촌이라는 말을 살면서 처음 들었어. 가슴이 철렁하더라." 

"어머.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절대 삼촌이 아니세요. 저는 그냥,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삼촌이라고 하는 줄 알고." 

"그래, 그런데 웬만하면 형님이라고 해. 그게 서로 좋아." 

"네. 형님. 그리고 다시 한번 죄송해요." 

"아니야. 됐어."


느낌이 맞았다. 그분은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얼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땡'을 해주기 전까지 한두 시간 동안 속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마치 내가 결혼은 했지만 아줌마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듯이, 그분도 나의 삼촌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섰을지도 모른다. 

삼촌이라고 부르면 기분 나빠하는 형님들이 있다. 아무나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친근감이 형성되는 것도 아닐 테다(형님은 충성심을 요구한다). 

삼촌과 형님 사이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불러주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상대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은 어떨까? 나이가 들어도 삼촌보다는 형님이 되고 싶은 그 마음이 이해됐다.  

태그:#묘제, #호칭문제, #삼촌과형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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