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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길을 망설인다

따사한 봄이 왔는가 했는데 여름 날처럼 덥다. 계절을 가늠할 수 없는 날씨지만 친구들과 나서는 자전거 길은 언제나 상쾌해서 좋다. 봄철 들판은 푸르고 신선하며, 꽃이 핀 산천은 눈을 황홀케 한다. 자전거를 타러 가야 하는 아침인데 오늘따라 생각이 많다. 조금 서늘할까도 걱정되고, 너무 더울까도 의심된다. 물과 먹을 것을 챙겨야 할까, 안면 보호를 해야 할까 등 걱정이 많다. 하지 않던 걱정이 발길을 망설이게 하는데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그냥 나서야지. 혼잣말로 해보는 늙어감의 소리였다. 하루에 100km도 거뜬하지 않았던가? 자전거로 부산에 나타난 아빠를 보고 딸아이는 소리를 질렀다. 이토록 무모하게 자전거를 타느냐고. 아침 자전거길에 생각이 많아짐은 왜 그럴까?

갑자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떠올라서다. 포항부터 통일전망대까지 자전거길을 나섰다. 무모한듯한 도전이었지만 도전 후의 통쾌함이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자전거길에 만난 사람은 부산에서 통일전망대를 향해 걷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걸어보고 싶어 걷는 중이란다. 한 번은 도전해 봐야지 했던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갔고, 몸도 세월을 피할 수 없었다. 통일전망대를 향한 발걸음은 주춤거렸고, 이제는 생각만 하는 몸이 되었다. 부산까지 자전거길은 추억이 되었고, 도전할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계절따라 달리는 자전거 길은 언제나 새롭다. 자연이 베풀어 주는 풍요로움을 마음껏 즐기며 친구들과 함께하는 길, 언제나 새롭지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자전거 길이다.
▲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계절따라 달리는 자전거 길은 언제나 새롭다. 자연이 베풀어 주는 풍요로움을 마음껏 즐기며 친구들과 함께하는 길, 언제나 새롭지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자전거 길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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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전거길에 나섰다. 자전거 길엔 봄의 생명을 알았고, 여름의 푸름을 알게 했으며 가을의 익어감을 알게 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 간신히 몸을 가누는 어르신도 있고, 엄청난 허벅지를 자랑하는 청년도 있다. 추위를 걱정했는데 반바지로 나선 청년들이 즐비하다. 쑥스러움을 감추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나서는 하천변엔 노란 유채꽃이 하늘 거린다. 

야생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잡종인 유채가 노랗게 장식하고 있다. 유채밭 뒤 비탈에는 애기똥풀이 한창이다. 봄철이면 제방을 따라 아름답게 피는 꽃, 줄기를 꺾으면 애기 똥색과 비슷한 노랑즙이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한 녹색 잎에 노랑꽃을 얹었고, 하얀 아카시나무가 꽃을 피우면 색깔별로 잘 어울리는 제방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젊은이들이 바람을 가른다. 하루를 즐기는 젊은 친구들이 부럽다. 나의 젊음은 어떻게 보냈던가? 삶에 허덕이며 놀이란 먼 곳의 이야기였다. 언덕을 올라가자 할머니들이 앉아 계신다. 아름다운 봄날에 편안하게 쑥을 뜯던 할머니가 인사 소리에 화답을 한다. 쑥을 뜯는 할머니의 모습, 오래전 어머님이 생각나는 봄나물이다.
 
긴 제방엔 노란 애기똥풀이 가득이다. 노랑으로 단장을 하고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언제나 신비스럽다. 할머니는 쑥을 뜯고, 젊은이는 자전거를 타는 제방에서 세상을 빛내주는 아름다운 계절의 선물이다.
▲ 노란 애기똥풀 긴 제방엔 노란 애기똥풀이 가득이다. 노랑으로 단장을 하고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언제나 신비스럽다. 할머니는 쑥을 뜯고, 젊은이는 자전거를 타는 제방에서 세상을 빛내주는 아름다운 계절의 선물이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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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쑥이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제방을 따라 애기똥풀이 자리 잡았고 가을도 자리했다. 지난 가을과 겨울을 지낸 누런 갈대다. 푸름과 갈색이 공존하는 냇가로 쑥이 자라났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는 쑥, 어머님의 쑥국이 생각나고 쑥버무리가 떠오른다. 향긋한 쑥과 쌀가루를 섞어 찐 어머님표 쑥버무리, 입안에 퍼지는 쑥향과 식감은 잊을 수가 없다.

콩가루에 묻혀 된장으로 끓여낸 쑥국은 한 숟가락 안에 봄이 가득이었다. 콩가루의 고소함에 향긋한 쑥향이 있고, 된장의 구수함은 봄을 노래했다. 봄에 빠질 수 없는 쑥개떡이 있으니 누가 '개'자를 붙였던가? 쑥과 멥쌀을 빻아 소금과 물을 넣어 둥글게 빚어 찐 떡이다. 허름한 소쿠리에 담겨 시렁에 있던 쑥개떡, 봄철 허기를 달래주던 간식이었다. 오래 전의 어머님이 그리운 아침, 푸름과 갈색이 공존하듯이 쑥을 뜯는 할머니와 자전거를 타는 늙어 가는 청춘이 인사를 하며 스쳐지난다.
 
들판은 언제나 아름답다. 봄엔 초록이 평안함을, 여름엔 녹색의 풍성함을 그리고 가을엔 익어감을, 겨울엔 텅빈 가벼움을 안겨준다. 계절따라 자연이 주는 의미를 찾아 떠나는 자전거길엔 또 다른 생각을 안겨준다.
▲ 편안함을 주는 초록의 봄 들판은 언제나 아름답다. 봄엔 초록이 평안함을, 여름엔 녹색의 풍성함을 그리고 가을엔 익어감을, 겨울엔 텅빈 가벼움을 안겨준다. 계절따라 자연이 주는 의미를 찾아 떠나는 자전거길엔 또 다른 생각을 안겨준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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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이란 무엇일까?

봄바람을 가르며 시냇물을 따라 자전거 길은 항상 정겹다. 파란 쇠뜨기가 무성하고, 연한 초록이 가득이다. 강가엔 오늘도 많은 태공들이 앉아 있다. 텐트도 자리했고 더러는 편안한 의자가 놓여있다. 자전거 길에 늘 만나는 강태공들, 무엇을 낚고 있는 것일까? 오래토록 만난 태공중엔 고기를 낚는 풍경은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한가한 세월을 낚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더러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다. 서둘러 달려가는 제방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오늘도 여지없이 맞바람이 길손을 맞이한다. 

어디에서 쉼이 필요할까 고민하는 사이 동네정자를 만났다. 잠깐의 쉼을 하고 가는 어르신들의 놀이터에 젊은이들이 있다. 근처에 선수용 자전거가 놓여있고 근육이 예사롭지 않다. 인사를 하자 '어르신들'이라며 인사를 하는 '어르신'소리가 낯설다. 아직도 청춘 같은데, 얼굴은 어르신인가 보다. 예사롭지 않은 허벅지에 고희의 허벅지가 이 정도면 됐지라며 위안을 한다. 

자전거 전문가들, 안전한 자세를 설명하며 안장의 위치를 바꿔준다. 언제나 어르신들 안전이 최고란다. 젊음은 어르신을 보살피며, 섣부른 어르신은 고개를 끄떡인다. 새봄 아침, 쑥을 뜯으시는 할머니와 자전거를 타는 어설픈 어르신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허벅지의 젊은이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새 어르신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고? 늙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침나절 자전거길을 머뭇거리게 한 생각이다. 

하프마라톤을 포기하고 5km에 감사해한다. 친구들과 동행하는 길은 30~50km 정도다. 100km를 포기하고 이 거리를 버티고 있다. 견딜 수 있는 거리까지만 페달을 밟는 것이었다. 젊어선 억척스러웠을 할머니는 쑥을 뜯으며 지난 젊음은 추억해야 한다. 세월 따라 버틸 수 없음을 흔쾌히 인정하고, 나름의 무게와 거리 그리고 삶을 택하는 것이었다. 늙음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은 포기하고,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오늘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자전거길에 만난 생각이다. 

태그:#자전거, #삶, #할머니, #세월, #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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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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