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러시아 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크리비리흐(Kryvyi Rih).
 러시아 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크리비리흐(Kryvyi Rih).
ⓒ 올하 빌라쉬(Olha Bilash) 제공

관련사진보기

 
4개월에서 7개월가량의 시간을 지하에서 생활해야 한다면 어떨까? 게다가 전쟁 중인 상황이라면? 불시에 공습경보가 울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대피해야 한다면? 분명 힘든 일이다. 이 힘든 일을 '해야만 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전쟁 3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어린이 얘기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열악한 상황은 이미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의해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23일 유니세프의 발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최전선 지역 어린이들은 전쟁 발발 후 2년여 간 최소 4개월에서 7개월(3000~5000시간)가량을 공습을 피해 지하 공간에서 지낸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또한 장기간 대피시설에서 지내는 어린이들의 정신건강은 매우 악화돼 "우크라이나 13~15세 청소년 중 절반이 수면 장애가 있고 5명 중 1명꼴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있다"라고 알렸다. 장기화 된 전쟁은 교육의 공백도 낳았다. 유니세프는 코로나 팬더믹 시기(2020~2021)와 전쟁 시기(2022년 2월부터)를 합한 4년간 최전방 지역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닌 기간은 일주일에 불과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교육 현장 상황에 대한 보다 정확한 파악을 위해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생, 올하 빌라쉬(Olha Bilash, 21)를 지난 4월 23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녀는 전쟁 한복판에 남겨진 어린이들을 위해 크리비리흐(Kryvyi Rih)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크리비리흐는 전쟁의 최전방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전쟁의 영향을 상당히 받고 있다. 그녀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체득했다"라고 했다. 또한 전쟁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눈빛이 다르다"라고도 덧붙였다. 아래는 그녀와 나눈 대화다.

수업하다가 공습경보 울리면 대피... 지하대피소에서 수업하기도
 
지하대피소에서 수업을 듣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모습.
 지하대피소에서 수업을 듣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모습.
ⓒ 올하 빌라쉬(Olha Bilash) 제공

관련사진보기

 
-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현재 저는 크리비리흐 주립 교육대학(Kryvyi Rih State Pedagogical University) 2학년생입니다. 저는 대학 공부와 함께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교육 현장 분위기를 전해주세요.

"학교에는 공습경보가 울리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소가 있습니다. 대피소에는 6개의 교실이 있어요. (공습경보가 울려서 대피하게 되면) 저는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아이들을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이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 어른들도 두렵긴 마찬가지일텐데... 아이들을 어떻게 안정시키나요?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웃긴 이야기를 하고,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겁니다. 학생들 옆에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학생들이 공포에 빠지지 않게 주위를 환기시켜요."

볕이 드는 교실에서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교육받는 것. 대한민국 땅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은 우크라이나에서 옛 이야기가 됐다. 러시아의 공습 이후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전쟁 발발 이후엔 교실 유리창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들이 책상에 떨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 전쟁 발발 후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는 언론보도도 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부모도 많습니다. 전쟁 전엔 한 반에 3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지만, 현재는 20명도 채 안 됩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제게 아이가 생긴다면 저도 그럴 것 같아요."

- 완전히 바뀐 환경에서 교육이 이뤄진다고 들었습니다. 또 바뀐 것들이 있나요? 

"전쟁 발발 직후에는 교육과정을 정리하는 게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이 대피소 같은 곳에서 공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습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놀고, 소통하고, 공부도 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공습경보가 나면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줄을 서서 선생님의 지시를 듣고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버린 것입니다."

"한 반에 평균 3~5명의 부모가 참전, 사망 혹은 실종"
 
러시아 공습으로 인해 학교 책상에 유리 파편들이 튄 모습(왼쪽), 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학교 밖 풍경(오른쪽).
 러시아 공습으로 인해 학교 책상에 유리 파편들이 튄 모습(왼쪽), 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학교 밖 풍경(오른쪽).
ⓒ 올하 빌라쉬(Olha Bilash) 제공

관련사진보기

 
올하 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
 올하 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
ⓒ 올하 빌라쉬(Olha Bilash) 제공

관련사진보기

 
- 가르치는 학생 중 부모가 군대에 동원된 학생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각 반에 군 복무를 하거나 전장에서 실종되거나 사망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눈빛이 다릅니다... 학급당 평균 3~5명의 부모가 참전했거나, 사망하거나, 실종된 상태입니다."

- 학생들의 심리상태가 걱정입니다. 이를 보듬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나요?

"선생님들은 학생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해 더욱 섬세하게 학생을 대합니다. 전쟁 중이긴 합니다만, 우리는 아이의 일생에 어린 시절이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어린이와 심리상담 전문가와의 만남을 도입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부모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엔 그 필요성이 더 커집니다. 또한 아이들이 공부를 지속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재정 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도 있습니까?

"대학의 경우,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온라인으로라도 교육을 받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초중등학교로 온라인 교육의 대상을 확장해 생각해보면 교육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에 아예 올 수 없는 학생들도 있어요.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가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교육 콘텐츠들을 제공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요. 하지만, 그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가 없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런 아이들은 아무런 사회적 교류 없이 집에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 전쟁 때문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습니까?

"현재 우크라이나의 공교육은 '무료'입니다. 학생에겐 수업료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사는 교육에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구입해야 합니다."

-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전쟁'에 대해서 가르치기도 하지요? 

"항상 전쟁의 위험성과 전쟁이 낳을 결과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존중하고, 서로 지지하고 돕도록 가르칩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수많은 주거시설들이 파괴되고,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곳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현재 전국에 '러시아에 대한 증오'가 퍼져 있습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어느 누구도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앞섭니다."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 교단에 선 올하 씨(가운데)와 그의 제자들.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 교단에 선 올하 씨(가운데)와 그의 제자들.
ⓒ 올하 빌라쉬(Olha Bilash) 제공

관련사진보기


태그:#우크라이나전쟁, #우크라이나아이들, #우크라이나, #어린이, #어린이날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깊은 시선이 닿을 수 있도록, 꾸준히 바라보고 꺼내어 보듬겠습니다.

92년생 대한민국 청년의 시선을 담다. 시민 기자 박수아입니다.

본 것을 담담히 전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