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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재계 인사들의 '북한 송이버섯 수령'을 비판한 9일자 <동아일보> 사설.
"(대북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 중) 북한의 핵폐기가 시급한 현안으로 등장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송이가 아니라 핵폐기 약속을 선물로 달라'며 의연하게 버섯을 물리쳤어야 했다."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입수한 '북한 송이버섯 수령 남측인사 명단'을 8일자 지면에 공개한 <동아일보>가 9일에는 사설을 통해 "한가롭게 선물 주고받을 때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동아>의 이 같은 대응은 '정권 때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번 사안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다는 지적이 높다. 송이버섯을 받은 일부 인사들은 "<동아> 식으로 나가면 남북은 아무 것도 못한다", "김대중 정권이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동아>의 대응을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정권과의 갈등 구도와 연관지었다.

@ADTOP1@
8박9일동안 남한 경제를 둘러보고 지난 3일 돌아간 북한 고위급 경제시찰단은 도착 첫날(10월26일) 남측에 북한산 송이 110 상자(상자당 시중가 350만원)를 전달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다음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의 각계인사들에게 민족적 향취가 나는 묘향산 특산물인 송이를 선물로 보냈다"고 보도해 북측의 각별한 후의를 드러냈다. 북측은 송이 박스에 수령자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보냈고, 정부합동행사지원단은 이에 따라 송이버섯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또는 택배로 전달했다.

통일부의 보신주의가 문제만 키웠다
기자들 '명단' 요청에 "우린 없다" 얼버무려

'북한 송이버섯 수령 명단'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통일부가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내놓은 변명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북측이 가져온 송이버섯들이 남한 인사들에게 분배됐다"는 소식에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비판 성명을 내 "선물을 받은 인물 명단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통일부 출입기자들이 명단의 존재를 문의하자 통일부 관계자는 "명단은 김 의원에게 보냈으니 그쪽에 알아보라"고 얼버무렸다. 통일부로서는 당장에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기 위해 김 의원에게 전해주지도 않은 명단의 존재를 시인해버린 것.

기자들이 자신의 사무실로 몰려오자 김 의원은 통일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통일부는 '명단 비공개'를 전제로 자료를 보내줬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우리는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7일 명단이 오자마자 <조선> <동아> <연합뉴스> 기자가 찾아왔다. <동아>의 경우 명단을 통째로 전재해버려 문제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송이버섯 수령자 명단 공개'를 둘러싼 해프닝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쉬쉬하며 순간순간 책임을 모면하려는 행정관료들의 보신주의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 손병관 기자
통일부는 "북측이 일방적으로 송이버섯 전달대상자를 선정했다"는 이유로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통일부로부터 자료를 입수한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밀양-창녕, www.ykkim.com)에 의해 명단이 공개됐다.

명단의 면면을 보면
▲정부 관리 (김대중 대통령 등 5명)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방북 언론사 사장단 및 간부(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 64명)
▲대북 경제협력사업에 많이 관여하고 있는 경제인들(이건희 삼성 회장 등 6명)
▲경제시찰단 방문대상 단체 및 기업(현대자동차 등 26곳)
▲경제시찰 참관지역의 자치단체장(안상영 부산시장 등 7명) 등이 송이버섯을 전달받았다.

국회의원으로는 이완구 의원(한나라당, 2000년 정상회담 수행)과 박근혜 의원(미래연합 대표, 5월 방북)이 포함됐고, 자치단체장 7명중 5명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8일 <국민일보> <대한매일> <조선일보>가 이 같은 명단 내용을 2단 크기로 간략히 보도한 반면, <동아일보>는 전체 명단과 함께 3단 크기로 기사를 키웠다.

<동아>는 9일자 사설(북한 송이 먹고 있을 때인가)에서도 "김대중 대통령 등 지도자급 인사 110명이 조용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보낸 송이를 나눠 먹었다는 소식에 놀랐다. 각 분야에서 나라를 이끌고 있는 인사들이 이토록 둔감하다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동아>는 "송이를 받은 인사들은 개인별로 처지가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김 대통령, 임동원 대통령특보, 정세현 통일부장관 등 대북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은 다르게 처신했어야 옳다. 선물을 선뜻 받아들인 그들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에게 결연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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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 명단'에 <동아> <조선> 사주는 포함안돼

<동아>는 "남북은 지금 한가롭게 선물을 주고받을 때가 아니다. 북한의 선물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기 어렵다"며 "생각 없이 받아먹은 송이 때문에 북한이 '핵 개발은 남북관계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오판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동아>의 대응과 관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은 '송이버섯 명단'에 <동아>와 <조선>의 사주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0년 8월 방북 당시 언론사 사장단을 중심으로 송이버섯을 보냈는데, 오명 당시 <동아> 사장과 방상훈 <조선> 사장은 방북단에 참가하지 않았다. <동아>의 불참 결정 막후에는 김병관 당시 회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같은 해 9월 북한이 언론사 사장들에게 송이버섯을 보냈을 때도 "정부가 선물받을 사람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김위원장의 심부름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자신에게 온 송이버섯을 곧바로 통일부로 돌려보냈다. 당시에도 <동아>는 기사와 사설, 4컷 만화를 통해서 북측의 선물을 비판했다.

▲ 강만길 상지대 총장(왼쪽)과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동아>의 '송이버섯 비판'에 대해 남측 수령 인사들은 9일 "웃는 낯에 침을 뱉으라는 졸렬한 주문"이라고 반박했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2000년 정상회담 수행)은 "송이버섯은 가족들과 나눠먹었다. <동아> 사설을 읽지 못했지만, 호의로 보내준 선물을 어떻게 거절하란 말인가? 택배로 받은 걸 돌려주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강 총장은 "핵 문제는 핵 문제이고, 남북 화해는 남북 화해 아닌가? 그런 식으로 나가면 경의선 연결, 도로 건설도 어렵고 남북 화해를 열기 위한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모든 문제를 핵 문제와 연결지어 사고한다면 지난 세기 남북대결 구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전화 통화를 끊으며 "허, 참! 이거야..."라는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역시 "북한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선물을 준 것도 아닌데, 이를 받지 않는다면 참으로 치기 어린 행동으로 비칠 것이다"며 "북한 핵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난 상황도 아니고, 초기단계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혹만 제기되면 '일전불사'를 외치는 '냄비 대응'이 문제를 더 어렵게 한다"고 <동아>를 비판했다.

<오마이뉴스>는 어경택 <동아> 편집국장의 반론을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동아>사주, '보천보전투' 호외 순금판을 북에 선물
98년 북측 '민족지' 추앙에 김병관 전 회장 '상호교류' 강조

▲ 김병관 <동아> 전 회장이 98년10월 방북 중 북한에 선물한 1937년도 <동아> 호외.

작년 김병관 <동아> 전 명예회장이 탈세 혐의로 구속돼 곤욕을 당한 이후 <동아>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대북 '햇볕 정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북한 핵 문제가 한반도 안보의 핵심 현안으로 부상한 이후 <동아>는 더더욱 햇볕정책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김 전 명예회장이 98년 10월 7박8일동안의 방북기간 동안 보여준 모습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김 전 회장은 북측 인사들에게 "이번 방북을 계기로 '민족의 표현기관'이란 창간정신을 살려 남북간의 거리를 좁히는 가교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고 방북 취지를 설명했다.

북측 인사들도 "<동아>는 일제시대부터 민족의 넋을 지켜온 신문"(강연학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동아>는 일제시대이래 민족을 위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민족지" (송호경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라고 추켜세웠다.

이에 고무된 김 전 회장 역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통일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설령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원활한 국가 운영이 이뤄질 수 없다"며 "통일을 최종 목표로 두되 교류를 넓혀가면서 상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1937년 김일성의 보천보전투를 보도한 <동아> 호외를 새긴 순금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로 제공했고, 지금도 이 순금판은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다. 김 위원장은 남한의 보수일간지 사주로부터 순금판을 헌정받아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는 '아버지의 항일투쟁'을 공인받은 셈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자사 사장의 방북 길에 발목을 잡고, 다시 2년 후 김 위원장에게 "송이버섯 같은 것은 보내지도 말라"고 일갈하는 김 전 회장의 변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스럽다. / 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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