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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와 그의 신간.
ⓒ 문학과지성사
한·일 협정 반대시위를 주도하던 청년운동가에서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으로, 반독재·반유신 투사에서 수인(囚人)으로, 서예가이자 생명사상가에서 미래학자로. 64년 인생 내내 단 한순간도 멈춤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김지하.

그가 새해 벽두 스스로 "생명사상의 최종본"이라 명명한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을 내고 동시대 후학들에게 간곡한 충고의 말을 던졌다. 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다. 그는 21세기 한국을 끌어갈 힘으로 '붉은악마'와 '촛불세대'를 지목했다.

"지지난해 광화문으로 쏟아져나온 수백만의 청년들, 붉은 물결과 일렁이는 촛불 파도를 보며 감동했다. 그들이 자기만의 방에 갇혀 인터넷을 통해서만 소통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밀실에서 형성된 네트워크가 새로운 세기의 도도한 흐름을 형성했다. 바로 이 '밀실네트워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자아와 개인을 말하는 것이 죄스럽던 4.19세대(4.19혁명 참여 세대)와 6.3세대(굴욕적 한·일 협정 반대시위 세대). 계급, 혁명, 이념 등이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강팍한 시대를 살아온 노사상가가 '개인의 위대성'을 새삼 발견하고, 이를 칭송한 것이다. 이에 관해 김지하의 부연이 이어졌다.

"이들의 개인주의에서는 각각의 개체성을 존중하는 자세와 권위적인 지도자를 배척하고 모두가 지도자가 되는 자율성이 읽힌다.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자유와 분권의 모습이 아닌가. 집단을 위한 희생만큼이나 개인주의도 존중받아야한다. 왜냐, 한 사람 한 사람 속에는 '우주의 전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어 김지하는 붉은악마와 촛불세대가 '밀실네트워크'의 힘을 통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주요한 당면과제로 ▲남아시아 지진과 같은 전인류적 재앙 ▲인간내면의 황폐 ▲전쟁과 테러 ▲신자유주의로의 세계질서 재편 ▲생태계 오염 등을 꼽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의 핵심기조는 생명과 평화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지하'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에 인류학과 철학, 역사와 예술전반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지식에 기반한 달변으로 간담회는 다소 경직됐었다. 이를 의식한 듯 김지하가 "책이 어려우니 말도 어려워진다, 이게 내 한계인 모양이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우스개를 던졌고, 순간 좌중에선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붉은악마와 촛불세대는 자신들의 힘을 스스로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게 안타깝다"는 아쉬움을 전한 김지하. 그의 아쉬움은 앞서 언급한 '어렵고 심각한 것 앞에서 경직되는 요즘 세태'와도 관련이 없지 않다.

쉽고 편하게만 세상 모든 진리를 찾을 수 있다면이야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다소 어렵고 두렵다해서 미래를 밝힐 길 찾기를 포기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김지하의 <생명과 평화의 길>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길 찾기'의 교과서가 아닐지.

"이제 생명사상에 살을 보태고, 이를 비판하며 발전시켜야할 책임을 후배들이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김지하. 그는 이날 "동화도 쓰고, 읽기 편한 시도 짓고, 세계도 두루 여행하고 싶다"는 소박한 올해 계획을 들려주기도 했다.

생명과 평화의 길

김지하 지음, 문학과지성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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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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