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 전통음식 된장처럼 구수한 맛이 나는 오랜 친구와 둘이서 여행길에 나섰다. 국내 관광지로 그리 유명하지 않으면서 그렇지만 실속 있는 볼거리를 찾아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 작은 태산, 정읍의 두승산
ⓒ 이승철
친구도 지난해 말 같이 정년퇴직을 하여 백수 동기가 된 후 매주 목요일은 등산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행 첫날인 4월 21일이 목요일이어서 여행의 첫 코스이자 등산하기 좋은 전북 정읍의 두승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두승산(斗升山). 이름이 참 특이하다. 옛날 곡식을 사고 팔 때 많이 사용되었던 양(量)의 측정 단위인 말(斗)과 되(升)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말이다. 말이나 되는 작은 양의 측정단위다. 곡식의 양을 나타내는 측정단위로는 제일 작은 것에서부터 홉, 되, 말, 가마니, 섬, 등이 쓰였는데 되나 말은 작은 단위에 해당된다.

산 이름이 그래서 두승산 하면 작은 산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호남선 열차나 고속도로로 정읍지역을 지나면서 서쪽방향에 우뚝 솟아있는 두승산을 바라보니 엄청나게 높고 큰 태산이었다.

▲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와 모정
ⓒ 이승철
등산은 정읍에서 부안이나 줄포방향으로 가다가 동학혁명의 발상지로 유명한 고부에 이르기 전 입석리라는 마을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 입석리라는 마을은 고려왕조 때 영주라는 큰 고을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그러나 마을에는 그 시절의 유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길가에 서 있는 한 그루 커다란 느티나무와 마을사람들의 쉼터인 모정만이 한가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어서 두승산 쪽 마을 안에 있는 흑두부집에 찾아들어갔다. 그런데 한적한 시골마을의 음식점치고는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차림표를 살펴보니 특별메뉴로 “사슴보양탕”이라는 것이 있었다. 값도 오천원으로 저렴하여 주문을 하였는데 사슴고기도 넉넉하게 들어 있고 맛도 괜찮은 편인데 남쪽지방이어서인지 우리 입맛에는 음식이 조금 짠 것이 흠이었다.

▲ 그림처럼 아름다운 저수지
ⓒ 이승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산행 길에 나섰다. 길옆 밭에는 밀과 목초가 진초록 색으로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노라니 골짜기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은 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여름이었다면 풍덩 뛰어들어 멱 감고 싶은, 그런 깨끗한 저수지였다. 파란물이 주변 산과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등산로 주변에는 이름 모를 작은 토종 꽃들이 피어나 예쁜 웃음으로 우리들을 반겨주는 듯 했다. 늦게 꽃피운 산 벚꽃들이 만개하여 이제 잎을 피우기 시작한 나무들과 어울려 드넓은 산과 봉우리들이 온통 꽃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길에서 고사리를 꺾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고 묻자 “남정네들잉께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라”한다. 멀리서 바라볼 때 태산처럼 높아보였던 산인데 한 시간에 올랐다가 내려올 수 있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느긋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 두승산성터 안내판
ⓒ 이승철
조금 더 올라가니 “두승산성지”라는 안내판과 “두승산성 서문지“ 안내판이 나타났다. 두승산성은 백제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출토유물이 백제시대의 것과 함께 고려시대의 유물이 많아 고려시대에도 개축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두승산은 도순산, 또는 영주산이라 불렸으며 산성의 둘레가 1만m로 아홉 개의 봉우리와 절벽을 이용하여 5km의 성벽을 쌓았는데 지금은 남쪽 봉우리인 선인봉에 약간의 원형과 함께 흔적만 남아있다고 한다.

▲ 두승산 유선사 대웅전
ⓒ 이승철
주봉인 말봉으로 오르는 길은 약간 가파르기는 하지만 험한 길은 아니다. 주변 경치와 야생초의 작은 꽃들을 감상하며 쉬엄쉬엄 오르니 어느새 정상인 말봉이다. 해발 444m, 역시 이름처럼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런데도 정상에 오르니 확 트인 시야가 장관을 연출한다.

남동쪽으로 정읍 시내를 넘어 내장산, 남쪽으로는 고창의 방장산이 바라보이고 서쪽으로는 변산이 서해바다를 막아 병풍처럼 둘러서있다. 북쪽으로는 정읍, 부안 평야와 멀리 김제 만경평야가 아스라이 눈길이 미치지 못하게 멀리 펼쳐져 있고 곰소만으로는 서해바다가 봄철의 불청객 황사바람을 뚫고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 유선사 대웅전 뒤 호랑이 상
ⓒ 이승철
옛날에 돌을 깎아 만든 말과 되가 있어서 두승산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고창의 방장산,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삼신산이라 불리는 산이다. 해발444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넓은 평야지대 한 복판에 홀로 우뚝 솟은 태산처럼 웅장한 산이어서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는 친근한 명산이라고 한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다 받고 있어서 정상부근의 등산로에는 때늦은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능선을 따라 서쪽 길로 잠깐 내려오니 유선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고찰을 근래에 개축하여 건물들이 모두 산뜻한 모습이다.

▲ 두승산 정상 길의 흐드러진 진달래
ⓒ 이승철
대웅전 뒤편에 있는 산에서 내려오며 포효하는 호랑이 상이 이채롭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보고 하산 길에 나섰다. 고부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포장까지 되어 있는 넓은 길이어서 산행의 멋과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었다. 절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설하였으리라.

고부가 가까워지면서 길 주변은 여기저기 호화로운 묘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두승산이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명당자리라고 하여 너도나도 조상들의 묘지로 욕심을 내기 때문이겠지만 아름다운 명산이 묘지로 훼손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 고부 쪽 작은 암자 앞마당의 동백과 벚꽃
ⓒ 이승철
산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대나무 숲이 울창하여 동학혁명의 발상지로서 옛 사람들의 기개를 보는 듯 하고, 작은 암자 앞마당에는 활짝 핀 벚꽃과 동백꽃이 어우러져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함빡 웃음으로 인사하고 있었다. 산행시간은 두 시간 삼십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