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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의 구본주 작가
ⓒ 네오룩닷컴
삼성화재가 보험금 산정을 놓고 유가족과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메이저급 전시회를 진행한 조각가 고 구본주씨를 무직자로 간주해 물의를 빚고 있다.

2003년 9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조각가 고 구본주(사고 당시 37세)씨 유가족이 가해자측 보험사인 삼성화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중이다. 고 구본주 작가는 2003년 9월 29일 새벽 5시께 경기도 포천에서 길을 가다 가해자가 몰던 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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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사고의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측 자동차 보험회사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보상금을 지급받도록 돼있다. 구본주 작가의 유가족은 지난 2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통해 ▲피해자 과실 25% 미만▲2003년 노동부가 발간한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 보고 상의 예술전문가 5~9년 경력 인정 ▲정년 65세 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피해자 과실 범위 70%, 정년 60세, 수입 불인정, 무직자에 준한 배상을 주장하며 항소를 진행했다.

삼성화재 쪽은 "구본주 작가의 경우 경력을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수입이 증명되지 않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해야 하며 정년도 60세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삼성화재 "구 작가 경력 인정 못해"... 미술계 "어이없다"

▲ 구본주_혁명은 단호한 것이다_철, 나무_600x350x450cm_1990
ⓒ 네오룩닷컴
법원이 통상 무직자 사고에 대해서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삼성화재는 조각가 구본주씨에게 무직자라는 기준을 적용한 셈이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구본주 작가는 메이저급 미술관의 초대기획 등 3번의 개인전(1995, 1999, 2002)을 포함해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20여곳 이상의 작품 소장처를 가지고 있는 검증된 예술가"라며 삼성화재가 제시한 기준을 두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잇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예술계에서는 '조각가 고 구본주 소송(삼성화재)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http://cafe.naver.com/gubonjuartright.cafe)를 구성하고, 7월 4일부터 서울 을지로 삼성화재 본사 건물 앞에서 1인 시위(오후12시~1시)를 벌이고 있다.

이번 사건은 예술가의 죽음과 그 배상을 둘러싼 소송이라는 점에서 예술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예술가들의 경우 개인 소득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재해를 입었을 경우 손해배상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인 시위를 벌인 김준기 사바나 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사건은 예술인의 노동을 생산 가치 없는 노동으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사회적 노동으로 존중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면서, "문화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이 마땅히 항소를 취하하고 유족에게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구본주 작가의 아내 전미영씨는 "삼성이 항소하는 것을 보면서 예술가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다시 생각하게 됐다"면서, "문화 중심의 마케팅을 하는 초일류기업 삼성의 오만함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관계자는 "예술가에 대한 가동연한(정년)의 선례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법원의 1심 판결 65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측면에서 항소를 진행한 것"이라면서, "보험의 경우 판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항소를 한 것이지, 삼성화재가 예술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고 구본주 작가는 홍익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3년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과 1995년 모란미술대상전에서 '모란 미술작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갑오농민전쟁-저항>,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노동>, <미스터 리> 등의 작품을 남긴 그는 민족미술인협회 이사로 활동했으며 사실성 있는 작품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예술가를 두번 죽이지 마라"
[현장] 조각가 이원석씨 삼성화재 본관 앞서 1인 시위

▲ 11일 낮12시 을지로 삼성화재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조각가 이원석씨. 왼쪽 작품은 이원석씨가 2004년 제작한 '티'
ⓒ오마이뉴스 박수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7월 11일 낮 12시. 고 구본주 작가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각가인 이원석(38)씨가 서울 을지로 삼성화재 본관 앞에 섰다. 이원석씨는 구본주 작가의 홍대 조소과 같은 학번 동기이기도 하다.

'조각가 고 구본주 소송(삼성화재)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소속 예술가들은 7월 4일부터 삼성화재 본사 건물 앞에서 1인 시위(오후12시~1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386 남성의 고뇌를 그린 자신의 작품 '티'를 1인 시위 현장 옆에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그 작품에 '예술가를 두번 죽이지 마라'는 표지를 걸었다. 이원석씨는 "절친한 친구이자 함께 작업을 했던 친구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면서, "예술가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화재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문화기업인양 생색을 내고 있지만, 실제 예술가의 사회적 노동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번 소송으로 드러났다"면서 "삼성화재는 소송을 취하하고 유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원석씨의 1인 시위를 언론사들이 취재하자, 삼성화재 직원들은 현장에 나와 참가자들 사진을 찍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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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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