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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 꽁초를 버리는 흡연자의 모습.
ⓒ 김귀현
'그래, 가끔 땅을 보자.'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답답한 가슴을 활짝 여는 것도 좋지만, 땅도 한 번쯤은 봐줄 필요가 있다. 당신이 고개를 숙였을 때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은 하얀 담배꽁초다.

'그 하이얀 자태'가 아름답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맘대로 구겨지고 짓밟혀진 그 모습은 더럽고 추하기 그지없다. 밤 시간에 유흥가를 걸을 때면, 뿌려진 담배꽁초들로 하얀 싸리눈이 내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니까.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나 거리에 뿌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보고자, 나는 거리로 뛰어 들었다.

마침 1월 2일부터 서울시 강남구는 '담배꽁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꽁초 투기자를 집중 단속, 5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었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 동안 모두 583건이 적발되어 무려 2915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고 한다.

'과연 단속의 성과가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꽁초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집게와 봉지 하나 들고 담배꽁초의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단속 지역인 강남구와 함께 서울 시내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흥가인 신촌과 대학로를 비교 대상지로 정했다.

[신촌, 대학로] 처음에는 "어머 부끄러워", 나중엔 "아이고 허리야"

▲ 혜화역에서 꽁초를 줍고 있는 나의 모습.
ⓒ 김귀현
15일과 16일, 신촌와 대학로(혜화역 주변)을 찾았다. 그리고 지하철역 출구 주변과 유흥가를 중심으로 담배꽁초를 주웠다. 시간은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조사에 객관성과 정확성을 두기 위해, 동일한 시각에 한 시간씩 주웠다.

역시 예상대로 꽁초가 많았다. 특히 지하철 역 출구 주변에 많이 버려져 있었다. 출구 쪽에 휴지통이 설치된 곳도 있었지만, 없는 곳도 많았다. 특히 혜화역 4번 출구 주변에는 휴지통이 없어 정말 지저분했다.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주운 꽁초는 모두 몇 개나 될까? 신촌역 주변의 경우, 78개의 꽁초를 대학로에서는 93개의 꽁초를 주워 대학로가 약간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로의 '대표적 만남의 장소'인 혜화역 4번 출구 주변은 특히 담배 꽁초가 많았다.

추운 겨울밤, 사람 많은 번화가에서 꽁초를 줍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낯뜨겁고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아무렇게나 짓이겨진 담배와 누런 가래들을 계속 보는 것. 비록 꽁초를 버리더라도 가래만은 뱉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끈적끈적해서 주울 수도 없다!

기자 노트: 처음에는 사람들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꽁초를 주우려니 좀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계속 허리를 굽히고 줍다보니 허리랑 목이 너무 아파 부끄러움 정도는 잊게 됐다.

[강남역] 무수히 많은 사람들, 그보다 많은 버려진 꽁초들

▲ 대학로(왼쪽)과 강남역 주변의 유흥가 모습. 사람만큼이나 많은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다.
ⓒ 김귀현
다음날인 17일, '꽁초와의 전쟁'을 선포한 강남구 전선(戰線)으로 집게와 봉지를 들고 향했다. '단속을 하고 있어 주울 꽁초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강남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성급했음이 곧 드러났다. 강남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6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담배꽁초들. 특히 강남역의 대표적 만남의 장소인 'G 의류매장' 앞에서는 30개가 넘는 꽁초를 볼 수 있었다. 일행을 기다리며 담배 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꽁초를 그냥 버렸다. 이곳도 혜화역 4번 출구와 마찬가지로 근처 가까운 곳에 휴지통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강남역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 틈사이에서 그만큼이나 많은 꽁초를 주웠다. 그날 강남역에서 주운 꽁초만 133개. 물론 주운 것보다 줍지 못한 것이 더 많았지만...

기자 노트: 신촌, 대학로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꽁초가 떨어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진정한 '꽁초의 천국'이다. 10분을 주워도 거의 몇 발자국 가지 못할 정도였다. '정말 단속을 하는 곳이 맞나'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또 다른 강남역] 강남역에서 꽁초 버리려면 6번 출구로 가라?

▲ 강남역의 6번 출구로 나오면 서초구, 7번 출구로 나오면 강남구다.
ⓒ 김귀현
잠시 후 나는 예상외의 반전을 경험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서초구'라고 써 있는 쓰레기통을 발견한 것. 표지판을 보니 강남역 6번 출구 쪽은 행정구역상으로 '서초구 서초동'이었다. 꽁초와의 전쟁을 선포한 강남구가 아니었던 것. 순간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머리가 '띵' 했다.

강남역을 중심으로 서쪽은 서초구, 동쪽은 강남구다. 자칭 '수원 촌놈'인 나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결국 그날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날 다시 시도했다. 다음 날 18일 같은 시각(저녁 8시)에 강남역의 '강남구 역삼동' 주변의 꽁초를 줍기 시작했다.

기자 노트: 정말 깨끗했다. '같은 강남역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거리가 '반짝반짝', 주울 꽁초가 거의 없어 일부러 담배 들고 있는 사람을 추격(?)까지 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쩜 이렇게 다른 세상일까? 정말 두 얼굴의 강남역이다.

▲ 강남역 서초구(왼쪽) 지역과 강남구 지역. 육안으로도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 김귀현
강남구 지역인 강남역 7번 출구 주변에서는 '단속'의 여파를 체감할 수 있었다. 담배를 들고 있던 사람들은 재를 털고 쓰레기통을 찾을 때까지 꽁초를 계속 들고 있었다. 바람직하게(?) 주머니에 꽁초를 넣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곳에서 한 시간 동안 주운 꽁초는 모두 38개. 6번 출구 쪽에서 꽁초를 퍼담았다면, 7번 출구 쪽에서는 꽁초를 어렵게 수집(?)한 셈이다. 꽁초의 수는 무려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기자 노트: 강남역 주변에서 흡연을 계획 중인 애연가를 위한 조언 한 마디. "강남역 거리에서 담배꽁초를 그냥 버리려면 강남구인 7번 출구말고 서초구인 6번 출구 쪽으로 가세요!"

꽁초 과태료로 환산하면? 서초구 665만원!

ⓒ 김귀현
이렇게 대학로, 신촌, 강남역(서초구 지역, 강남구 지역)에서 주운 담배꽁초를 과태료로 환산한다면 얼마가 될까?

서울특별시 강남구 폐기물 관리 조례 제36조 제1항 규정에 의해 5만 원씩 부과를 한다면, 신촌 390만 원(78개), 대학로 465만 원(93개), 강남역 서초구 665만 원(133개), 강남역 강남구 190만 원(38개) 이다.

경찰이 부과하는, 경범죄 제1조 제16항의 오물방치 규정에 의해 3만 원씩을 부과해도, 신촌 234만 원, 대학로 279만 원, 강남역 서초구 399만 원, 강남역 강남구 114만 원이다. 총 4시간뿐인 꽁초 수거 치고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경찰과 공무원이 부지런하게 단속한다면, 엄청난 과태료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꽁초를 거리에 버릴까? 강남역에서 꽁초를 바닥에 버리던 한 시민은 "주변에 휴지통이 있으면 바닥에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휴지통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흡연자는 "습관적으로 바닥에 버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속하는 것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뉴스에서 봐서 알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버리길래 나도 버린다. 설마 밤에도 단속하겠냐"고 반문했다.

비흡연자들은 흡연자들의 이런 행태에 많은 불만을 제기했다. 비흡연자 박현준(30)씨는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의 대부분이 담배꽁초"라며 "단속을 상당히 환영하며, 더 강력한 단속으로 깨끗한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비흡연자 박문수(26)씨는 "꽁초를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길거리에서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더 문제"라며 꼬집고, "무단투기 단속보다, 길거리에서 흡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자 노트: 거리에서 4일간 꽁초를 주웠다. 물론 기껏 몇 개 주워서 모든 거리가 깨끗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꽁초를 줍고 있으니, 적어도 내 앞에서는 꽁초를 버리지 않았다. 단속을 해서 과태료를 물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감시'로, 시민의식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치 않을까?

▲ 수거한 꽁초들. 강남역 강남구에서 수거한 38개(왼쪽)와 서초구에서 수거한 133개다.
ⓒ 김귀현
싱가포르 35만 원 · 홍콩은 60만 원
담배꽁초 투기 과태료 나라별 비교

▲ 도쿄 신주쿠거리의 노상흡연금지 표시. 한국어 안내도 보인다.
ⓒ김귀현
거리가 깨끗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는 거리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릴 시, 싱가포르 돈으로 500달러 (한화 약 35만원)의 벌금이 부과 된다.

홍콩의 경우 담배꽁초를 투기할 경우, 6개월의 금고형이나 벌금 홍콩 돈으로 5천 달러(약 60만원)를 물어야 한다.

일본도 깨끗한 거리로 치면 빠지지 않는 곳이다. 일본의 경우, 행정구역에 따라 부과되는 벌금이 천차만별이다. 실효성을 생각해 2천엔(약 1만 6천원)을 부과하는 곳도 있고, 최고 2만엔(약 16만원)을 부과하는 곳도 있다.

특히 일본은 ‘길거리 흡연’을 강력히 규제 하고 있다. 도쿄 치요다구의 경우 노상흡연을 할 경우 최고 5만엔(약 40만원)까지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태그:#담배, #담배꽁초, #꽁초, #양심, #담배 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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