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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중들에 둘러싸인 노암 촘스키.
ⓒ 하승창


미국에서 지내면서 영어를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듣고 배우려 하는 사람에게 큰 차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어를 하는 만큼 듣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있어도 전달하는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니까요. 6개월가량을 살면서 이런 저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영어를 못한다는 점 때문에 아쉬운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노암 촘스키. 미국의 살아있는 지성 혹은 양심 등으로 불리는 사람이란건 웬만한 분들은 아실겁니다. 또 그가 유명한 언어학자라는 것도 아실터이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그의 비판에 여러 사회운동가들이 귀기울여 듣고 있다는 것도 익히 들었을 겁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새삼 다른 소개는 필요없을 듯 합니다.

@BRI@1시간전에 꽉찬 강연장

그 노암 촘스키의 강연이 지난 월요일(2월5일) 오후 콜럼비아대학에서 열렸습니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사람이라 한번 가보자 하는 생각에 섭씨로 영하 10도, 소위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가까이 된다는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요즘 이곳 날씨가 엄청 춥기 때문에 웬만하면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 있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지요.

오후 4시부터 강연이 시작되지만, 대개 1시간 전에 좌석이 다 차니 미리 가는 것이 좋다는 지인들의 충고를 듣고 1시간 반 전에 도착했습니다. 그 날 촘스키의 강연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4시에 자신의 강연이고 저녁 6시 반에는 2005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Harold Pinter와의 대담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4시 강연은 무료고, 6시 반 대담은 유료입장입니다. 참가비가 있는 대담인 셈입니다.

2시 반 경에 강연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좌석 반이 찼습니다. 200석 가까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지인의 말대로 1시간 전에 다 차버리더군요. 그러면 늦게 온 사람들은 어찌 되느냐 하면 대기자 명단에 올립니다. 왜냐하면 미리 와 있던 친구들이 다른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리를 '찜'해 두는 데, 이 친구들이 못 오거나 늦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주최 측에서는 4시가 되면 출입구를 닫아 버리고 그 때 까지 못 온 사람들의 빈자리를 확인한 후 대기자들을 자리로 안내합니다. 그리고도 못 들어 온 사람들은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서 있는 사람이나 바닥에 앉는 사람은 없더군요. 전원 좌석에 앉아서 들었습니다.

젊은 학생들, 나이 든 어른들, 교수들, 유학생들…. 정말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청중들이었습니다. 한국인은 저 말고 몇 명 눈에 띄더군요.

짧은 영어...더럭 겁부터 나

강연 제목은 'The Mysteries of Nature, How Deeply Hidden?'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강연은 아니었던겁니다. 주제는 언어학, 언어철학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내용으로 보면, 과학적 지식 혹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성, 혹은 인식에 관한 이야기, 철학적으로 보면 인식론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짧은 영어로 고생하고 있는 제가 알아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강연 시작부터 데이비드 흄이 거론되길래, 더럭 겁부터 나더라고요. 역시 데카르트, 뉴튼, 아인슈타인, 갈릴레오, 버트란드 러셀을 넘나들면서 이야기하는 데 정말 알아듣기 힘들더군요. 그래도 주변시선을 의식해 눈에 힘주며 듣고 있었지만 뭐 도통 앞 뒤 문맥이 연결되지 않아서 그저 열심히 쳐다만 보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다만 러셀이 말했다는 'certainty of third grade'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에 앞서의 이야기들도 그야말로 추론으로 약간 이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왜 버트란드 러셀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절대적이라고 확신하지 말라’고 했던 그 유명한 이야기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음에 기계론적 인식론에 관한 이야기를 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뉴톤의 중력이론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과학적 성취와 연결된 인식론의 이야기를 하려 한 모양이다, 이런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워낙 주제가 언어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과학적 성취와 인식의 확장이 언어의 창의적 사용과 관계있다는 점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이야기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여간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언어의 창의적 사용과 지식, 인식을 넓혀갈 인간지성에 대한 믿음. 뭐, 그런 것이 주 내용이라고 ‘제 맘대로’ 이해했습니다. 아마 신자유주의에 관한 이야기거나 미국의 패권 정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조금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국처럼 사전이나 사후에 원고가 배포된다거나 자료집이 있다거나 했으면 좀 더 이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쉽게도 현장에는 아무런 원고가 없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 응답이 이어졌는데, 강의는 준비한 원고를 읽는 것이라 그나마 단어들이 몇 개씩이라도 귀에 들어오던데, 질의응답은 구어체로 이어지니까 정말 귀에 안 들어오더군요. 그저 모든 질의에 격의없이 답해주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지요. 질의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처럼 여기저기서 계속 손을 드니까 결국 주최 측에서 중단시키고서야 강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 강단에 선 노암 촘스키
ⓒ 하승창
이 노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의 행렬은 6시 반 대담에도 이어졌습니다. 혹시나 해서 가 본 장소에는 유료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방청객들로 꽉차 있고, 건물 입구에서부터 대기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결국 이 대담까지 듣는 것을 불가능하겠구나 싶어 발길을 돌렸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이 대담의 질의응답 시간에 촘스키는 미국의 행위에 대한 저항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조직된 운동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정작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아마도 이 유료입장 대담에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왜냐면 해롤트 핀터가 야만적이고 무례하고 버릇없는 미국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촘스키가 이 연설에 코멘트를 하는 형식의 대담이었기 때문입니다.

촘스키는 국제적으로 미국이 기대하는 것은 선택적 예방전쟁과 무력으로 제국주의적 지배원칙을 제도화하려고 하는 것이며, 미국의 경제가 어떻게 되더라도 군사력을 키워서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또 그같은 미국의 꿈이 세계를 위협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미국에 대한 테러의 증가, 무기확산, 미국 시민에 대한 위협의 증가와 같은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해왔지요. 하지만 촘스키를 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앞서의 강연에서도 촘스키는 버트란드 러셀의 이야기를 길게 인용했는데, 어디서 보았던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촘스키가 버트란드 러셀이 말했다는 '내 삶에는 세 가지 열정이 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열정이며, 지식에 대한 추구이며,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다'는 문구를 즐겨 사용했다는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가 새기고 있는 러셀의 문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계화란 결국 인간이 만든 질서입니다. 이를 인간이 바꿀 수 있다는 낙관적인 신뢰를 가진 그의 말은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에서부터 작금의 한국 사회운동이 성장 뒤에 찾아 온 침체의 그늘에서 허덕이고 있는 모습까지, 현재 우리들이 부딪히고 있는 난관이나 어려움 속에서 다시 자신을 추스르는 데 좋은 경구가 되겠다 싶은 생각으로 끄적여 봅니다.

태그:#촘스키, #노암, #짦은 영어,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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