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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나들이 준비를 마치신 아버지, 지팡이 없이도 다니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올해 일흔아홉 되십니다.
ⓒ 이승숙

"야야, 기차표 여게서도 예매할 수 있나? 예매되마 좀 해뿌라."
"아부지, 와요? 가실라꼬요? 여름방학 때까지 계시소오. 그 때 우리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이다. 이만해도 오래 있었다. 초여드렛날이 할부지 제사인데 그 때 가봐야 안 되겠나."

우리 집에 오신 지 열흘 정도가 지나자 아버지는 돌아갈 생각을 하십니다.

"아부지요, 제사는 동생이랑 작은 아부지가 지내시면 되잖아요. 요번에 한 번 좀 빠지면 뭐 어떨라고요. 제가 작은 아부지한테 전화하겠심니더. 그러이 이번 제사는 빠지시고 몸이 좀 살아나면 그 때 집에 가시이소."
"그래 우에 하겠노. 영 몬 움직이면 모르까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제사에 빠지면 되나. 이부제(이웃) 사람 보기에도 그래하마 안 된다."

삼월 초팔일은 제 친정 증조할아버지 기일입니다. 아버지의 할아버지 제사인 거지요. 지난 설에는 허리가 아파서 제사에 참여만 했지 절도 못했다 하시며 이번에는 몸도 괜찮으니 제사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그러십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아버지는 청도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오니 마음 한 편으론 홀가분하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삼시세끼 챙겨 드리느라 은근히 고생 아닌 고생을 했거든요. 그런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거였습니다. 화장실에 가도 아버지 생각이 났고 거실에 가도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떠난 사람 자리가 크다더니 정말 아버지 떠난 자리가 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 떠난 자리가 휑해 보였습니다

▲ 딸자식은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효도를 다하는 거라지요. 장인을 바라보는 사위의 눈길이 따뜻합니다.
ⓒ 이승숙

우리 아버지는 엄마 떠나신 뒤 홀로 계십니다. 벌써 십 년도 더 넘게 혼자 계십니다. 그래도 재작년까지는 아버지가 지내시기에 심심치 않고 좋았습니다. 고향 마을엔 아버지 친구 분들이 많이 계셨거든요.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유롭게 황혼을 즐기시던 그 분들은 그러나 한 분 한 분 차례로 다 떠나시고 이제 아버지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아 있는 친구 분 이래봤자 서너 분밖에 안 되는데 병중에 계신 분이 많아서 문 밖 출입을 잘 못하신다고 합니다. 가끔씩 다니시던 나들이도 이제는 같이 다닐 분이 안 계십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외롭게 혼자서 집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외로움이 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더니 정말 아버지는 외로우셨나 봅니다. 아버지는 지난 두 해 사이에 부쩍 늙어버렸습니다. 상노인 중에 상노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에 제가 클 때 우리 동네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습니다. 자식들이 도시에서 살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혼자서 시골집에서 살았습니다. 여름엔 괜찮지만 날이 춥기라도 하면 할머니는 불 때기가 귀찮아서 그랬는지 차가운 방에 전기담요 하나 깔고 잠자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를 모시지 않는 자식들을 흉보곤 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아파트에서는 못 살겠더라 그러시며 나중에 진짜로 육신을 못 움직이게 되면 그 때 아들네 갈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자 아들이 모시고 갔습니다. 아무리 같이 살자고 해도 할머니가 아파트에서는 못 살겠다 하시며 혼자 지내시겠다고 했다 합니다. 못 움직이게 되면 아들 힘 빌릴까 그 전에는 아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모정이었겠지요.

지금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 밥 끓여 잡수시며 지내십니다. 내 몸 내가 건사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혼자 지내시겠다고 합니다. 영 못 움직이게 되면 그 때 자식들 힘을 빌리겠다 하십니다.

노인들만 있는 시골, 친구는 텔레비전뿐입니다

▲ 햇살이 따스한 어느 날 오후에 아버지는 짚을 추려서 닭둥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토종닭 키우기를 좋아하는 사위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 이승숙

지금 시골 동네에는 대부분 노인들만 계십니다. 칠순을 넘기고 팔순을 넘긴 분들이 시골집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바깥어른만 계신 집도 있고 안어른만 계신 집도 있습니다.

예전에 혼자 계시던 할머니를 불쌍히 여기며 그 아들네를 흉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처지가 되었습니다. 누구네 집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 집이고 저 집이고 다 똑같습니다. 시골엔 노인들만 계십니다. 영 못 움직이게 되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자식 힘을 빌리겠지만 그 전에는 외로워도 힘들어도 혼자 지내십니다.

가끔씩 자식들이 안부 전화를 합니다. 자식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갑니다.

"오야, 나는 잘 있다. 걱정하지 마라. 우야든동 너거나 잘 살아라."
매번 똑같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자식들이 잘 살기만을 빕니다.

벽을 짚고 살아도 배우자가 있어야

▲ 소리소문없이 아버지가 우리집 안팎을 다 치우셨습니다. 겨우내 쌓여있던 낙엽이며 생활 쓰레기들을 다 치우셨네요.
ⓒ 이승숙

혼자 보내는 밤은 깁니다. 그리고 새벽은 일찍 찾아옵니다. 창 밖은 아직 깜깜한데 한 번 깬 잠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사람 기척 하나 없는 집엔 텔레비전만이 저 혼자 왕왕댑니다. 어젯밤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냥 잠들었던 모양입니다. 뿌옇게 흐린 눈으로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봅니다. 아직도 해가 뜨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은 남은 사람의 행복을 80%나 가지고 가버립니다. 홀로 남은 사람은 빈껍데기로 살아갑니다. 쓸쓸하고 외롭게 노년을 보내게 되는 겁니다.

벽에다 등을 대고 살아도 배우자가 살아 있는 게 좋다고 합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홀로 살기보다는 벽에 기대고 사는 환자일지라도 사람 훈기를 풍겨주는 배우자가 있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홀로 남게 됩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빠르지 않기만을 빌어야겠지요.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지 않기를 빌어야겠지요.

오늘 새벽에도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신 건 아니신지, 아침밥은 드셨는지 아버지 안부가 새삼 궁금해집니다.

아버지, 오래 오래 사시라고는 말하지 않으렵니다. 그저 사시는 동안 건강하시기만을 빕니다. 아버지, 정신 놓치지 마시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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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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