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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민들이 잡아온 활어 위판이 이루어지는 격포항.
ⓒ 김준
몇 척의 고깃배들이 포구로 들어온다. 10여㎏은 돼 보이는 갑오징어와 붕장어를 저울에 올리자 서너 명의 중매인들이 손가락을 뺀다. 곧바로 수족관이 달린 대형 트럭에 옮겨진다. 물때가 맞지 않아서인지 위판장이 한산하다. 비릿한 바다 냄새에 고깃배들이 을씨년스럽다.

위도로 들어가는 배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손님을 기다린다. 낚시가방을 멘 5~6명의 남자들이 배에 올라타고, 몇 쌍의 연인들이 손을 잡고 오른다. 머지않아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여객터미널이 북적일 것이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항으로부터 14㎞ 떨어진 위도는 여섯 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고슴도치형 섬으로 16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100㎏씩 잡혔다던 청돔은 어디로 갔을까

고기가 잡히지 않아 어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육지로 나가고, 낚시꾼들은 고기를 잡기 위해 섬으로 들어온다. 위도 인근 섬들 중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섬이 왕등도다.

낚시꾼들이 최고의 손맛으로 꼽는 고기는 단연 감성돔이다. 오죽했으며 '바다의 귀족'이라 했겠는가. 왕등도의 인근 섬과 바다를 태공들이 많이 찾는 이유도 이놈 때문이다. 1990년대 많은 낚시꾼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대미문의 해난사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위도의 최고 낚시꾼 김영석(66)씨는 "해마다 왕등도 인근에서 여름철에 강성돔을 100㎏ 이상 잡았는데 올해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위도 주민들은 감성돔을 청돔이라고 부른다.

'색깔이 검고 약간 작다.' <자산어보>에 정약전이 적어놓은 청돔의 생김새다. 감성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가성도미·감생이·감성돔·맹이·남정바리·뻥성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데 위도에서는 청돔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수십 가지라는 것은 그만큼 사랑을 받는 어종이라는 뜻이리라.

감성어는 수심 10m 내외의 해조류가 무성한 모래밭이나 암초지대를 좋아한다. 이들이 좋아하는 먹이는 새우·게·홍합·거북손 등 동물성부터 김·파래 등 해조류까지 다양하다. 태어날 때는 모두 수컷이지만 5년 정도 자라 몸길이가 30cm에 이르면 대부분 암컷으로 변한다고 한다.

새만금이 막히니 갯골도 묻히고

▲ 위도 서남쪽에 위치한 상왕등도와 하왕등도.
ⓒ 김준
위도 인근 왕등도에서 많이 잡히던 감성돔이 왜 잡히지 않는 걸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서식환경이 파괴되고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위도 인근 바다는 새만금 방조제 이후 물길이 막히고 물발이 약해져 펄이 바닥에 쌓여 청돔이 좋아하는 모래밭이나 암초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바위와 모래에 기대어 살던 게·새우·홍합·거북손이 줄어들고 있다.

청돔이 이런 곳을 좋아할 리 없다. 낚시꾼들의 희망, 청돔을 낚는 손맛을 찾아 이곳 위도를 찾던 태공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위도주민들이 화를 내는 까닭이 이해가 된다.

요즘 왕등도 일대에는 멀줄(잘피) 아래에 우럭새끼가 바글바글하다. 작은 고기는 있는데 큰 고기가 없다는 것이 김씨의 지적이다.

큰 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수온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큰 고기들은 수심이 깊은 곳으로 서식지를 옮긴다. 위도를 비롯해 칠산어장은 사니질 갯벌이 발달해 어류의 산란장이기도 하지만 돌이나 작은 바위들이 많은 걸밭은 수심이 깊어 큰 고기들도 서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갯골이 펄에 묻히고 있다는 것이다. 갯골이 묻히는 이유는 조류가 약해지고 물길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어민들의 지적이다. 그 이유는 물론 새만금 방조제 때문이다.

위도는 칠산바다 한가운데 있어 조기파시로 유명했던 곳이다. 입하에 들어온 조기는 곡우 무렵에 알을 낳고 한식에 물길을 따라 칠산어장으로 나갔다. 칠산어장의 적절한 수온과 15~30m의 수심이 조기를 불러왔던 것이다.

1960년대까지 이곳 파장금에는 고깃배들로 가득했다. 이후 전갱이파시·고등어파시·병치파시·갈치와 삼치파시로 이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고기잡이가 성했던 어장이었다.

조기 잡던 어부들, 이젠 멸치·새우도 잡아보지만

▲ 낭장망으로 잡아온 고기를 추리는 대리 어민들.
ⓒ 김준
큰 고기들이 안 들어오는 것은 물발이 약해진 탓이다. 이놈들은 운이 좋아야 신시도와 가력도의 배수갑문을 지나 만경강과 동진강 상류까지 올라갈 수 있다.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하면 영영 방조제 안에 갇혀 바다의 시간을 잃고 칠산바다의 기억도 잊어야 한다.

조기가 사라지자 진리의 가공공장도 파장금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작부집들도 문을 닫았다. 조기가 떠난 자리에 전갱이가 자리했고 건착망을 실은 기계배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시작된 삼치잡이도 1970년대를 넘기지 못했다.

조기가 많이 나던 시절에 전갱이나 삼치가 없었을까. 단언할 수 없지만, 조기가 돈이 되기 때문에 전갱이나 삼치에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멸치나 새우잡이에 어민들이 나서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큰 고기들의 대표적인 먹잇감인 새우와 멸치에 관심을 두는 것은 돈 되는 다른 큰 고기들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우잡이도 신통치 않다. 여름철 멸치잡이는 수심이 낮아져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같은 개량안강망 그물을 이용한 실치잡이도 50% 이상 감소했다는 것이 어민들의 하소연이다.

위도 인근 바다에 요강바위가 있다. 위도에서 고기가 가장 잘 잡히는 포인트다. 바위가 마치 요강처럼 움푹 파여 있어 산란을 앞둔 고기들이 이곳에 산란을 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최근에 바다목장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인공어초들을 넣고 있는데 요강바위는 자연이 만들어낸 어초인 셈이다. 한 번에 10여 마리가 따라 올라오던 곳이었다. 이곳도 갯벌에 묻혔는지 예전 같지 않다.

위도에서 40여 년을 외줄낚시 하나로 4남매를 키워낸 김씨는 요즘 걱정이 생겼다. 자식들은 이미 장성을 했고, 먹고 살만 하지만 위도에서 고기가 자꾸 사라지는 것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 원인이 새만금방조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큰 고기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갯골이 사라지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위도 주변을 오갈 때나 기름을 넣기 위해 파장금을 오가는 선외기(배)들이 다녔던 뱃길도 바뀌었다. 갯벌이 쌓여 갯골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멀리 우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물길이 바뀌었다.
ⓒ 김준
얼른 강쳐야 하는 어민들

안강망도 그렇고 자망그물에 고기가 박히는 것도 다 이놈의 물발(조류의 세기) 때문이다. 육지 것들에게는 물발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고기잡이를 해야 살 수 있는 섬사람들에게 물발은 생명수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나오는 것이 싹쓸이 그물이 아니겠는가.

정부에서는 바다를 살려야 한다며 지도선으로 쫓아다니며 불법어로작업을 단속하지만 정작 바다를 죽이고 어민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위도에 70~80척의 고기잡이 배들이 있었다. 이 배들은 대부분 개량안강망을 이용해 새우와 멸치를 잡는다. 50여 척의 고기잡이 배들이 있던 대리마을은 10여 척으로 감척을 했다. 어획량이 눈에 띄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갯골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위도 어민들에게 '바다의 시간'도 고장났다.

옛날에는 그물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어민들은 3마에서 12마까지 15일 한 사리에 8~10일 어장 일을 했다. 이때가 물발이 살아 있는 사리였기 때문이다. 물발이 살아야 낭장그물에 고기도 들고, 자망에도 걸려든다. 그렇지만 지금은 6마에서 10마를 넘기기도 어렵다. 고작 4~5일 일한다. 물발이 얼른 죽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얼른 강친다(고기잡이를 빨리 끝낸다)'고 한다. 삼치잡이처럼 배로 끌고 다니는 어업인 경우 물발과 관계없이 고기를 잡을 뿐이다. 위도바다는 잔잔한 호수로 변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위도와 격포는 흙으로 메워져 걸어 다닐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고기바탕도 사라진 바다

▲ 그물을 손질하는 위도 어민.
ⓒ 김준
▲ 그물코를 메꿀정도로 부유물들이 붙어 있는 낭장망그물, 떼꼽이라고 부르는데 볕에 말리고 두들겨 털어내야 한다.
ⓒ 김준
그물어업을 하는 어민들과 달리 낚시업을 하는 어민들은 사리보다 조금 물때를 찾는다. 사리는 물발이 세서 낚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과 사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리에 나가야 그나마 손맛이라도 볼 수 있다고 하소연한다.

칠산바다의 물발이 반으로 줄었다. 위도 인근의 갯골은 1m 이상 묻혔다고 한다. 과거에 넣어 두었던 어초들이나 고기가 많이 잡히던 바다 속 바위들이 묻혔기 때문에 가늠할 수 있다. 만경강과 동진강으로 향하던 물길도 방조제에 막혀 북쪽으로 올라간다.

바다에도 고기가 잘 잡히는 '고기바탕'이 사라졌다. 멸치를 잡기 위해 갯골에 넣어둔 뺑뺑이 그물(개량안강망)이 낮아진 수심 때문에 제대로 조류에 따라 돌지 못하고 엉키는 그물사고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물에 붙는 떼꼽(부유물) 때문에 자주 그물을 교체해야 하는 것도 새로 생긴 일거리다. 위도의 관문 파장금도 준설이 잦아지고 있다. 모두 수심이 낮아지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7월 9~10일 위도에 머물며 조사한 내용입니다.


태그:#왕등도, #청돔, #전북 부안, #위도, #새만금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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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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