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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임의 < FM 영화음악 >.
ⓒ 정은임추모사업회
사람은 참 묘한 동물입니다. 감정이 있기 때문이겠죠. 이런 기분, 혹시 느껴보신 적 있나 모르겠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이, 생전 그 존재를 느껴보지 못한 이를 추억하며 가슴이 울렁거릴 때 말이죠.

모르고 지나칠 뻔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은 분들에게는, 늘 듣던 그 이름 정은임. 오늘(4일)이 3주기라고 합니다.

저는 정은임을 잘 아는 세대가 아닙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이 방송되던 1990년대 초중반, 저는 이문세의 <별밤>을 더 애청했던 어린 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느껴본 그녀의 흔적이래 봤자 주변에서 듣던 그 이야기들과, 훗날 '정은임추모사업회' 홈페이지(http://www.worldost.com)에 들어가 들었던 이미 과거가 돼버린 방송 흔적들, 그게 다예요.

라디오 방송이라는 게 그렇죠. TV와 인터넷이 맹위를 떨치는 시대라지만, 라디오에는 라디오만의 정서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더욱 느끼려고 하는, 그리고 그 느낌을 위해 오감을 집중했을 때 라디오에서만 느껴지던 생생한 감동. 어쩌면 라디오에서 멀어져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정은임, 그녀는 어느 별에서 왔던 것일까

대한민국이란 사회, 그 암울했던 회색빛 하늘의 마지막 끝에 정은임이 걸쳐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나마 신뢰를 보내는 얼마 되지 않는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나누던 영화 이야기가 세상에 지친 애청자들에게 한순간의 휴식과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줬다고 하는군요.

아주 먼 훗날, 전 '정은임추모사업회'에서 그 방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은임은 리버 피닉스를 특히나 좋아했다죠? 리버 피닉스를 통해 정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은임을 통해 리버 피닉스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지 만 3년이 지난 후에야 듣게 된 '리버 피닉스 특집', 왜 그런 걸까요? 그 말은 분명 리버 피닉스를 이야기한 것일 테지만, 왜 정은임이 떠오르는 것일까요?

정은임의 이야기대로, 더 이상 실수나 과오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고 배신과 변절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은임의 이야기대로, 너무 변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이기에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훗날 이야기로 느낀 정은임은 살아 숨 쉬는 그 순간에도 변하지 않았고, 배신과 변절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봅니다. 정은임은 어느 별에서 와서 애청자들에게 아련한 추억과 아픔만 남기고 갔던 것일까? 그리고 그게 왜 아픔일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정은임은 살아 숨 쉬던 그때도 변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았기에, 용기를 잃지 않고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울려 퍼진 인터내셔널가

'인터내셔널'? 시쳇말로 그건 '빨갱이 노래'입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빨갱이 노래'가 아닙니다. 1980년대의 열정이 스멀스멀 기어들어가던 1990년대 초, 그 시절에 울려 퍼졌던 '인터내셔널'은 도대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대한민국 역사에 사상 최고의 시민혁명으로 남을 수 있었던 1987년이 좌절된 상실감이 여전했던 그 시절에 들었을 '인터내셔널'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그 느낌을 정은임이 전해줬다고 합니다. 영화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들려줬다는 그 인터내셔널, 지금의 20대야 잘 모르겠죠. 고백하자면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상실했다고 여겨졌던 소중한 가치가, 칠흑 같은 새벽녘에 조용히 울러 퍼졌을 때 느껴지는 그 벅차오르는 감동.

소리 나지 않았을 그 감동은 알게 모르게 전국으로 퍼졌을 겁니다. 뜨거웠던 열정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을 이도 있었을 겁니다.

그 누군가들이 진짜 임을 생각하며, 정은임과 함께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뇌었을 '임을 위한 행진곡', 그 모든 금지된 것들이 고운 목소리에 야무진 의지를 동시에 갖췄던 당찬 정은임과 함께 살아났던 것입니다.

먼 훗날, 2003년 10월 26일에 정은임은 말했습니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정은임을 추억하는 이들이 가장 아끼던 것은 아마도 그런 정은임의 고운 마음씨였을 겁니다. 각박한 세상, 먹고살기 힘든 세상,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아픔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이 줄어가는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정은임은 변하지 않고 그 고운 마음씨를 전해왔습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는다"는 고요히 울려 퍼지는 그 당찬 신념과 함께 말이죠. 우리네 정서는 그래요.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정서란 거죠.

우리 시대의 마지막 아나운서 정은임

그동안 쓴 글에 마지막이란 말 많이 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여운이 많이 느껴진 적이 없네요. 한 번도 지켜보지 못했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먼 훗날, 기억으로만 전해 들었던 사람일 뿐인데 말이죠.

감히 말합니다. 정은임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당찬 의지들이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누가 정은임을 따를 수 있을까요?

연예인으로 변신하는 아나운서는 많습니다. 하지만 정은임처럼 힘에 굴복하지 않고 압력에 굴하지 않았던,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는 가치를 전할 수 있는 이, 과연 누구일까요?

결국 정은임은 우리가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가치의 마지막 화신이었습니다. 방송이라는 민감한 영역에서 용기를 실천할 수 있었던 마지막 꿈이었습니다. 실천이 아쉬운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진해질 겁니다.

앞으로도 정은임은 신화이자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정은임이 좋아했던 구절이라지요. 정은임은 하늘에 있지만, 사람들의 가슴 속에 그 가치가 남아있는 한, 정은임은 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추신

하늘에서도 외로운 이들에게 그 고운 목소리, 그 당찬 의지를 전해주고 계신가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늘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면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3년 후, 뒤늦게 당신의 존재를 알고 아쉬워했던 어느 20대 영화키드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은임, #정영음, #영화음악,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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