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봉인상 추진 염치없다'
'지키라 맡긴 지갑 제 배에 넣겠다니'
'명분도 염치도 없는 의정비 인상 추진'


사설 제목이 갑자기 싸나와졌다. 지역신문들이 돌아가면서 지방의원들을 맹공하고 있다. 제목만 봐도 서릿발 같은 매서움이 서려 있다. 지방의원 유급제가 시행된 지 1년 6개월 만이다. 뭐가 잘못됐기에 이토록 심하게 꾸짖는 것일까.

"기초의회를 없애자", "선거가 아닌 시험을 쳐서 지방의원을 뽑자"는 주장도 담았다. 의정비 인상을 주장하는 의원들의 명분과 염치를 탓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유급제는 극심한 찬반논쟁에 휩싸인 채 시작된 제도다.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더니 겨우 1년 6개월 만에 일부 지역에서 연봉 인상안을 슬그머니 들고 나섰으니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역신문 사설들이 날 세운 비판적 시각은 크게 3부류다. 열악한 지방재정, 주민의견 절차무시, 무능을 탓하며 연봉인상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경향>, '놀고먹는 지방의원...' 기사, 사설서 '불씨'

<경향신문> 8월 4일자에 실린 사설.
▲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 8월 4일자에 실린 사설.
ⓒ 경향신문

관련사진보기


열심히 일하는 지방의원들도 많지만 일부지역 지방의회 의원들의 비리와 잦은 외유성 해외시찰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해온 터여서 이번 연봉 인상안에 쉽게 찬성할리 만무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신문 사설에서의 지방의원 나무라기는 최근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7월 서울에서 불기 시작했다. 한 꼭지 스트레이트 기사와 사설이 불씨를 지폈다. <경향신문>은 7월 3일과 4일자에 "'여전하신 지방의원'…의정 보다 '잇속 챙기기'"의 기사 및 '월급 받아 놀고먹는 지방의원들'이란 사설에서 지방의원 유급제가 실시된 지 1년 6개월을 조명했다.

유급제 실시 이후 의원들의 의정활동 성적표는 초라한 반면 잇속 챙기기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 기사다. 도표와 함께 각 시·도의회의 조례발의 건수와 해외여행 경비 추가지원 사례, 심지어 '자신들도 공무원'이라며 복지카드를 챙기고 있는 사례까지 <경향>은 기사에서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더니 다음날 사설에선 강도를 한 단계 높였다. "무보수 명예직 때보다 나아진 것은 없고 세금만 축낸다"는 사설은 "심지어 돈 안 받고 놀던 데서 돈 받으면서 놀게 된 것으로도 모자라 호화판 개인사무실을 요구하고 공무원 복지도 누리게 해달라고 억지를 쓰는 사례까지 확인됐다"며 "지방행정을 감시하라고 뽑아놨더니 생선가게에 고양이를 들여놓은 꼴이 됐다"고 표현했다.

그런 뒤 한 달 만인 8월 4일자 사설에선 화살을 강남구의회로 날렸다. '서울 강남구 의원들 해도 너무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다. <경향>은 이 사설에서 "서울 강남구의 구의원들이 지금 받는 연봉(의정비 2720만원)이 너무 적다며 내년부터 6100만원으로 120%나 올리려 하고 있다"고 전제 한 이 사설은 "주민의 곳간을 감시해야 할 의원들이 되레 곳간을 털어 자기 배를 채울 궁리만 하고 있는 셈 아닌가"라며 꾸짖었다.

"내년 공무원 임금인상률 2.5%의 55배가 넘는다" 사설은 "유급제 시행 1년 반 동안 달라진 의정활동을 보여주지도 못한 구의회가 월급을 갑절로 올리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했다. 오비이락처럼 이런 상황에서 부산과 광주 등 일부지역 기초의회에서 연봉 인상안을 들고 나선 게 화근이 됐다.

이 지역 일간지 사설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부산><경남> "도대체 뭘 했기에, 배짱 놀랍다"

<부산일보> 8월 31일자 사설.
▲ 부산일보 사설 <부산일보> 8월 31일자 사설.
ⓒ 부산일보

관련사진보기


<국제신문>은 8월 29일 '명분도 염치도 없는 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추진'의 사설에서 "유급제가 실시된 지 1년여 만에 '제 밥그릇부터 키우겠다'는 기초의원들의 배짱이 놀랍다"며 지방재정과 무능을 질타했다. 벼르고 벼뤄왔던 것처럼.

"의정 활동 열심히 하고 구·군의 형편만 좋다면 의정비를 못 올릴 이유도 없다"는 사설은 " 그러나 기초의원들에 대한 주민 평가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유급제 실시 이후에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시민단체의 조사결과도 있었다"며 "‘도대체 뭘 했기에 의정비를 올리겠다는 거냐’는 질타가 나와도 이상스럽지 않다"고 했다.

“더 딱한 것은 기초자치단체의 살림살이 수준으로 부산 16개 구·군의 재정자립도가 16~38%를 맴돌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 이 사설은 “이번에 의정비 인상안을 먼저 들고 나온 북구만 해도 재정자립도가 18.21%”라고 꼬집었다.

<부산일보>도 8월 31일 ‘지방의원 의정비 인상 추진 거둬들여야’의 사설에서 날카롭게 비판했다. “부산시 16개 구·군의회 의장협의회가 어제 긴급간담회를 개최, 의정비 인상을 추진키로 결의했다”며 “이 자리서는 구체적 의정비 인상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4·5급 공무원 연봉 수준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그런 뒤 사설은 “부산 지역 일부 기초의회의 의정비 대폭 인상 추진 움직임에 대해 시민들의 비난은 거셌다”며 “인상안 결의는 민의를 외면한 처사에 다름 아니다”고 비난했다.

<대구> <경북>, "지키라고 맡겼더니 제 배에 넣는 꼴"

<매일신문> 1일자 사설
▲ 매일신문 사설 <매일신문> 1일자 사설
ⓒ 매일신문

관련사진보기


<매일신문>은 1일 사설에서 다시 한 번 부추겼다. ‘지키라 맡긴 지갑 제 배에 넣겠다니’란 제목의 사설은 부산경남지역에서 불기 시작한 지방의원 연봉인상 바람을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현재 기초의원 연봉이 전국 평균 2천776만 원(최소 1천920만 원, 최다 3천804만 원)이니 내년부터는 그것의 두 배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말은 지방의원직 유급화 때 무산됐던 ‘부군수`부시장`부구청장 수준 연봉’을 기어코 성취해 내겠노라 다시 달려든 모양새”라고 힐난했다.

“안 그래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이 지방의원 비리 소식”이라는 이 사설은 “정말 이 꼴로 지속돼 좋을 것인지 한탄하는 사람들이 적잖다”면서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지방자치는 놔둬서 어디에 쓸 것인지 한탄스럽다”고 말미에 경계 추임새를 넣었다.

기초의원 연봉인상이 구체적으로 거론된 광주․전남지역도 예사롭지 않다. <광주일보>는 8월 30일 사설에서 질타했다. ‘전남 기초의원 연봉 인상 추진 염치없다’에서다.

<광주> <전남>, "최하위 재정자립도에서 연봉타령이라니"

한 마디로 한심하다는 투다. 사설은 “지난 28일 열린 전남 시·군의회의장협의회에서 현재의 연봉으로는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최소한 사무관급 수준으로 인상키로 했다”며 “ 유급제 시행 1년도 못돼 기초의회 대표들이 연봉 인상을 결의했다니 한심하다”고 표현했다.

전남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최하위인데다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기 때문에 유급제 이후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 한번 없이 연봉 인상을 내세우는 것은 명분도, 설득력도 없다는 논리다.

지방의회와 관련된 <무등일보> 기사.
▲ 무등일보 기사 지방의회와 관련된 <무등일보> 기사.
ⓒ 무등일보

관련사진보기


<무등일보>는 한 술 더 떴다. 30일 사설 ‘연봉 인상 추진 지방의회 제정신인가’에서 “강남구의회가 내년도 의원 연봉을 6천100만원으로 인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남지역 시·군의회 의원들도 강남구 수준으로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당장 철회할 것을 주문했다.

“벌써부터 국민 사이에선 기초의회를 없애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 이 사설은 “이젠 서슬퍼런 주민소환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지방의원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전남 시·군의회는 수당 인상을 철회하고 의정활동 혁신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성이 털 풀렸던지 <무등>은 1일 ‘광주시의회 '民(민)은 먼곳에'’란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다시 퍼부었다. “제5대 시의회 출범 이후 올 6월까지 1년 동안 모두 21건의 조례안이 발의됐으나 대부분의 의원 발의 조례들이 주민들의 실생활과 관련이 없고 주민참여 등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데다 집행부 등과의 의견수렴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방의원들이 유급제 이후 수천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조례에는 주민들이 없는 것 같다”는 시민단체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한 이 기사는 ‘그들만의 조례’를 크게 우려했다.

<문화>, "서울 강남구의회가 역시 문제"

지역의 상황이 이러하자 <문화일보>는 1일 사설에서 다시 강남구의회를 점잖게 나무란다. ‘유급화하고 나니 연봉인상 담합하는 기초의회’란 사설에서 “전국 기초의회 의원들이 연봉을 대폭 올리기 위한 담합에 나서 “지방의원들, 얼마나 열심히 일했나부터 돌아보라”(참여자치연대, 8.31)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고 시민단체 반대 움직임을 암시했다.

그러더니 “서울 강남구의회는 2720만원에서 6096만원으로 124% 인상하기로 잠정 결정해 전국 각 기초의회를 자극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부산 북구의회도 2700만원에서 5000만∼6000만원으로의 인상을 추진중이라고 한다”며 강남구의회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사설은 “과거 의정활동 실적을 돌아보면 ‘연봉 인상’ 운운이 곧 몰염치다”며 “제4대 의회 때 서울시내 25개구 의회가 발의한 조례는 의원 1인 평균 0.19건, 같은 기간 질의는 연평균 3.5건이며 임기내내 단 1번도 질의하지 않은 의원이 8%다”고 지적했다. 각 의회는 나름대로의 성적표를 제시한 뒤 연봉 인상안에 대한 주민 뜻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처럼 각 지역 신문들이 지방의회가 추진하는 연봉인상 반대에 총대를 멘 형국이다. 1년 전 유급화 과정에서 당했던 분패를 설욕이라도 하듯이  전문가와 시민들을 앞세워 맹공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태그:#지방의원연봉인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