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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주최 '제2회 전국 대학생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곽진성 시민기자는 홍익대학교 국제관계학과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 [편집자말]
막심 까르미의 <밑바닥에서> 공연에 앞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막심 까르미의 <밑바닥에서> 공연에 앞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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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 대학가는 기말고사 기간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기말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며 다른 일에 밤을 지새는 특별한 대학생들이 있다. 그들의 밤은 자신의 꿈을 찾아가기에 아름답다. 지난달 28~30일 막심 까르미의 '밑바닥에서' 공연을 선보인 홍익대학교 '까망꼬망 극예술연구회'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 이다. 밤을 잊은 '까망꼬망', 그들의 '열정' 넘치는 공연 준비를 3일간 밀착취재했다.

긴장된 공연 전날, '연습' 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가 진지하다.
 긴장된 공연 전날, '연습' 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가 진지하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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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젊음, <밑바닥에서>는 아름답다

11월 27일 새벽1시 49분, 홍익대학교 조치원캠퍼스 A동 건물 1층 시청각실 안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잠을 잊은채 연기 연습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뱉는 대사가 조용한 밤을 울렸다. 이들은 홍익대 연극동아리 '까망꼬망', 대학생 연극동아리지만 이들이 공연을 위해 쏟는 땀방울은 전문 연극단 못잖다.

"아마추어 배우든 전문 배우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대에서 후회없는 연극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을 연출한 조형진(22)씨의 말이다. 조씨가 연출한 막심 까르미의 <밑바닥에서>는 러시아 시민혁명 전 전제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회적 의미가 담긴 어려운 내용이지만 대학로 연극 경험이 있는 조씨는 연극에 대한 욕심이 크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에 날카로운 지적을 해준다.

"좀 더, 대사 크게해!" "거긴, 좀 더 감정을 살려야 하잖아"

27일 낮, 공연을 하루 앞둔 배우들은 연출자의 지적에 긴장된 표정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무대는 특별하기에 지적된 부분들을 하나하나 고쳐나간다. 그런 배우들의 열정 속, 금미선 씨(21)를 만나볼 수 있었다. 금씨에게 이번 연극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제 꿈은 연극배우가 되는 것이었는데 현실적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했죠. 그래서 제게 연극은 단지 동아리에서나 하는 그런게 아니에요. 제 꿈이죠. 기회가 되면 꼭 연극무대로 달려가고 싶어요"

미술 스태프 배현진(20)씨가 배우 분장을 하고 있다.
 미술 스태프 배현진(20)씨가 배우 분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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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는 지금 기말고사 기간이지만 이들에겐 시험만큼이나 연극이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렇기에 몇일째 밤을 지새우면서 연극준비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준비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연극 소품부터 무대까지 직접 다 자신들이 만들어야 했기에 발품을 많이 팔아야만 했다. 조명을 담당하고 있는 윤아영(23)씨는 말한다.

"학생들이 시간이 없다 혹은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공연을 외면하는 것은 정말 아쉬워요. 우리는 흘린 땀방울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단 바람이에요"

무대부터 소품까지 하나하나 전부 다 스태프들이 만들었다. 그들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비로소 연극은 시작될 수 있었다.
 무대부터 소품까지 하나하나 전부 다 스태프들이 만들었다. 그들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비로소 연극은 시작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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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작은 바람 속에,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28일 6시 30분,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밑바닥에서>는 우리 대학생들의 현실과 닮아 있었다

<밑바닥에서>는 혁명 전, 러시아의 암울한 시대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 사람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우리 주변 사람들과 닮아 있었다. 특히 사랑에 관한 부분에선 대학생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건부 사랑과 진정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극의 내용, 이것은 오랜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한 갈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루까(김선호), 나따샤(장민지), 바스까 빼뺄(전문수)역
 왼쪽부터 루까(김선호), 나따샤(장민지), 바스까 빼뺄(전문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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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에서 막 출소한 빼뺄과 착한 나타샤, 그리고 영악한 바실리사와 그의 남편 지주 백작 이 네사람은 실타래처럼 얽힌 악연이었다. 이들은 현실적인 요건으로 사랑을 선택하고 배신했다. 하지만 본성이 나쁘고 착하고, 잘났고 못났건 간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순수했다. 극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었다. 극중 한 대사 속에서 답을 찾았다.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낳기 위해 사는거야' 라는,

죽어가면서 까지도 한 여자를 부르던 백작,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한 여자를 지키고 싶었던 빼밸, 그 암울한 속에서도 희망적인 메세지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이 네 명의 인물 배역을 맡은 장민지(21·나타샤), 전문수(21·바스까빼뺄), 금미선(21·바실리사), 정회경(21·꼬스뛸료프)씨는 각자의 배역에 대해 말한다.

<밑바닥에서> 배우들
 <밑바닥에서>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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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는 구받 받는 어려움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아요. 그녀가 말하죠 '난 매일매일 공상을 해요'라고, 그런 순수함이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장민지)

"빼뺄은 남성적이고 강한 인물이지만 나티샤에게 만큼은 진짜 사랑을 하는 인물이죠. 그녀를 향해 사랑을 더해라고 외친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전문수)

"바실리사는 남편을 죽이라 사주하고, 동생을 때리는 표독스런 여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사람이기도 하죠" (금미선)

"백작은 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죽어가면서도 바실리사를 향해 사랑해, 바실리사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연민을 느껴요"(정회경)
 
이들의 서로를 향한 사랑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나지만 그것을 단지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깊이가 너무나 컸다. <밑바닥에서>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 잔잔한 교훈을 들려준다.

희망 없는 사람들의 한가지 소망

<밑바닥에서>에서는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의 갈등과 함께 또하나의 중요한 내용이 진행되어 나간다. 바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 관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연극을 지켜보았다.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 관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연극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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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배경이 되는 한 술집에서 사기꾼 사찐, 매춘부 나스짜 그리고 무명 배우, 몰락한 귀족 바론, 아픈 여인 안나, 아픈 여인을 방관하는 남편 끌로쉬가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희망이라고는 없는 절망의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에 한 현자 '루까'가 찾아오면서 작은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 희망은 절망만이 자리잡은 곳에서 위험하게 싹튼다. 평생을 고통과 절망속에서 보냈던 여인 안나는 현자덕에 비로소 마지막에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했고, 무명 배우 바론은 알코올에서 벗어날 꿈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얻는다.

하지만 이 절망적인 공간에서 '현자'가 떠나자 모든 것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원상복귀 되었다고 사람들은 믿었지만 그곳엔 작은 변화가 남아있었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꿈'이다. 현자가 떠난 자리에서 무명 배우는 죽은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끌로쉬에게 물었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줄 수 있나요?"

하지만 끌로쉬는 냉정히 거절한다. 너의 기도는 너 스스로 하라고, 결국 '꿈'을 잃은 무명배우의 자살을 선택한다. 술집의 즐거운 분위기에서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리며 <밑바닥에서>는 끝난다. 그 절규는 이랬다.

극중, 술에 취해있는 배우들을 향해 들려온 한가지 소식, 무명 배우의 자살
 극중, 술에 취해있는 배우들을 향해 들려온 한가지 소식, 무명 배우의 자살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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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한창 좋았는데'

막심 까르미의 <밑바닥에서>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그리고 우리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삶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줬다. 농도깊은 작품을 대학생들의 연기를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우리들의 연극, 아름답게 기억되었으면"

송미희씨(21)는 공연 연습중 다리를 다쳐 절뚝거렸지만, 압박 붕대를 감고 연극에 임했다.
 송미희씨(21)는 공연 연습중 다리를 다쳐 절뚝거렸지만, 압박 붕대를 감고 연극에 임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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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끝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기분좋게 웃고 있었다. 특히 공연 중, 다리를 다쳐서 붕대를 감고 연극무대에 섰던 송미희(21)씨에게 이번 공연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연습중에 다리를 다쳐서 계속 절뚝거렸는데 공연때는 되도록 참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관객들에게도 공연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공연에서 미술감독과 나티샤역 등 1인 2역을 담당한 장민지(21)씨에게는 공연의 끝이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수업과 공연 두가지 일을 다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번 공연은 제게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이니깐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다행히 잘끝나서 다행이에요. 시원 섭섭해요"

대학생들에게 중요한 기말고사 기간에 시험공부 대신 자신의 밤을 잊으며 연극준비에 매달렸던 '까망꼬망' 사람들, 그들이 밤을 지새며 준비한 공연의 끝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열정'으로 가득했던 공연장에 울려퍼졌다.


태그:#까망꼬망 , #막심 까르미, #밑바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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