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름 값이 치솟고 있다. 현재 리터당 1600원 선을 넘어섰다. 터키-쿠르드 분쟁 등 국제 정세 악화와 겨울철 기름 사용량 증가, 정유사의 잇속 챙기기가 겹쳐 발생한 일이다. 천정부지로 솟는 기름 값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일부 대선 후보들은 유류세 인하를 선심성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유류세 10% 인하하겠다고 밝혔고, 정동영 후보는 20%인하, 이인제 후보는 유류세 1/3 인하, 문국현 후보도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30% 인하하며, 추후 유류세를 폐지하고 환경세로 재조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기름 값이 인상된 것은 국제원유가의 상승이라는 근본적인 이유와 더불어, 정유사들 간의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득 취득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사상 최악의 국제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정유사의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유류세를 기름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유류세 인하’에 대한 여론이 높다. 언론도 이런 여론을 부추기는 데 한 몫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은 ‘유류세 인하냐 유지냐’보다, ‘유류세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지적도 많다. 2006년에 유류세로 걷어 들인 26조원의 세금 중 10조원 정도가 도로 건설, 대안 에너지 개발, 대기 환경 개선 등에 쓰였다. 그러나 그 중 도로 건설과 같은 사회간접 자본 구축에 쓰이는 돈이 더 많았다. 도로 건설 등에 유류세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기후 변화 대응, 대기 환경 개선, 대안 에너지 개발 등에 써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렇듯 유류세 인하 주장에는 문제가 있음에도, 대선 후보들은 유류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방송은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국내 기름 값 인상에 대한 방송 3사의 보도는 KBS 27건, MBC 30건, SBS 16건으로 총 73건의 보도가 있었다.

 

방송사 별로 국내 기름 값 상승의 원인으로 국제적 상황 악화, 높은 유류세, 정유사 담합 등을 주로 들었다. KBS는 정유사 담합 등을 원인으로 꼽은 보도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제적 상황을 원인으로 꼽은 보도가 6건, 높은 유류세가 2건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MBC도 비슷해서 정유사 담합이 7건, 국제적 상황이 5건, 높은 유류세가 4건이었다. SBS는 정유사 담합이라는 지적과 국제적 상황이 3건으로 같았으며, 높은 유류세가 2건 보도되었다.

 

반면 방송사들이 유류세 문제의 해결책으로 가장 많이 제시한 것은 가장 큰 원인으로 꼽지 않았던 ‘유류세 인하’였다. 방송보도 중에서 기름 값 인상 문제의 해결책 중에서 유류세 인하가 23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정유사 담합 등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이 20건, 대체에너지 개발이 5건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MBC는 기름 값 인상의 해결책으로 유류세 인하를 제시한 보도가 12건이나 됐다. 반면 정유사 담합 등 해결에 대해서는 7건, 대체 에너지 개발은 1건 뿐이었다. KBS는 정유사 담합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8건, 유류세 인하를 7건으로 비슷하게 제시했으며, 대체 에너지 개발도 3건으로 꼽았다. SBS는 타 방송사에 비해 워낙 보도량이 적었지만, 정유사 담합 등 해결이 5건, 유류세 인하가 4건, 대체 에너지가 1건으로 제시되었다.

 

유류세 인하에 대한 방송사들의 입장은 대체로 비슷했다. KBS는 <인하 요구 빗발>(10/26)에서 “정부의 세금 인하 불가론 속에 소비자들이 고유가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라며 유류세 인하를 강하게 주장했다. MBC도 <기름 값 세계 8위>(6/20)에서 “우리나라 기름 값, 비싸다 비싸다 했는데 … 그 주된 원인은 기름 값에 붙는 세금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며 기름 값 상승의 원인으로 유류세를 들고 있다. SBS도 7월 11일 <핵심 빼고 변죽만>에서 “기름 값 8만원 가운데 4만 6천 원이 세금”이라며 기름 값 중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방송사들까지 나서서 기름 값 문제의 해결책으로 유류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휘발유 기준 유류세는 744원으로 2000년 이후 변화가 없다. 또 현 유류세는 가격에 따라 변하는 ‘종가세’가 아니라, 사용량에 따라 세금을 내는 ‘종량세’의 개념이다. 따라서 최근 기름 값 상승과 유류세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정유사의 마진은 지난해 연말부터 올 5월까지 59%나 오른 것으로 나타나 정유사들의 폭리가 기름 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올해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석유제품 담합으로 소비자들의 피해규모는 24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정유사들의 불합리한 가격 구조가 유류가 인상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류세를 단순히 기름에 매기는 세금정도로만 봐서는 안 된다. 석유 제품을 사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환경오염과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10조원에서 40조원에 이르고, 수도권의 교통 혼잡 비용이 매년 12조원에 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류세가 사용되고 있다. 즉, 환경 부담금인 것이다.

 

유가가 치솟는다고 해서 유류세를 낮춘다면 앞서 말한 사회적 비용은 다른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는 생색을 내며 유류세를 인하할 수 있지만 결국 이것 역시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은 유류세 인하를 이야기 할 뿐이지 유류세를 인하함으로써 발생하는 세금의 공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다.

 

유가가 상승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에 대한 각 후보의 대선공약은 서민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때 유류세를 인하하라고 주장하는 일은 매우 간편하게 유권자와 시청자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방송은 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고, 유류세 인하가 서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진정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검토하여 책임 있게 보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의 보도 행태는 흐름에 부합하여 ‘유류세 인하’의 여론을 따라다니거나 부추기는 실정이다. 방송 3사는 유류세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지적하여 유류세가 적절한 곳에 쓰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꾸준히 문제 제기 되고 있는 정유사의 담합과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유류세 인하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이 갈리고 있는 지금, 이에 대한 후보자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보도가 1건도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앞으로 이 유류세 관련 공약을 분석하고 심층적으로 접근하려는 보도가 늘어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보고서 원문은 민언련 홈페이지http://www.ccdm.or.kr/main/vote2007/board/board_read.asp?bbsid=vote2007_broadcast&b_num=93&page=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태그:#유류세, #공약, #4대 폐기공약
댓글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언론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 아래 회원상호 간의 단결 및 상호협력을 통해 언론민주화와 민족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구현에 앞장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