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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 100일이라 제 형제들과 처가댁 식구들을 이틀에 나눠 한 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밖에서 먹느냐 마느냐로 조금 실랑이가 있었지만, 아이가 100일 밖에 안 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 간다는 것이 조금 걸렸던 거지요.

 

그런데 이번엔 음식을 제가 만드느냐 아니면 파출부를 쓰느냐로 또 실랑이가 생겼습니다. 군대에서 취사병이었던 전 5만원 주고 파출부를 쓴 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이틀 제가 음식하면 몸살 날까봐 아내가 좀 걱정을 했던 마음은 알지만 제가 손수 마련하고 싶었죠. 돈도 아끼고.

 

일단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아내가 뽑아 논 메뉴인 '버섯 불고기, 야채샐러드, 더덕구이, 쇠고기 무국, 꼬막 찜'에 들어갈 재료들과 사과 · 배 · 귤 등 과일을 산 후, 마트에 들러 꼬막과 쇠고기 두 근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아내는 절 도울 틈이 없으니, 먼저 꼬막을 소금물에 담가 놓고, 야채를 다듬었습니다.

 

더덕 까는 거 그거 일입니다. 또 왜 그리 끈적끈적한지. 암튼 야채 손질이 끝난 후 불고기 양념장을 만들어 쇠고기를 양념에 묻힌 후, 더덕을 반으로 잘라 방망이로 잘 두드려 놓았습니다. 샐러드에 들어갈 것들도 잘라서 모아 놓고요. 그런 후 꼬막찜과 더덕구이에 들어갈 양념장을 각각 만들어 다른 그릇에 담아 놓았습니다. 이제 음식만 만들면 됩니다.

 

우선 압력솥에 밥을 안쳐놓고, 어느 정도 모래를 토해낸 꼬막을 솔로 박박 문질러 닦았습니다. 꼬막은 왜 그리 더러운지 그냥 삶으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는 사이 밥이 되어 보온 밥솥에 옮겨 놓고, 꼬막을 삶을 물을 얹어 놓았습니다. 물이 끓자 꼬막 닦는 일이 끝나 꼬막을 끓는 물에 집어넣고, 익는 동안 잠시 휴식.

 

그런 후 꼬막을 꺼내 껍질 반쪽은 버리고 반쪽에 속이 담기게 한 후 하나하나 양념장을 얹혀 접시에 놓으니 꼬막 찜 완성. 그리고 무를 채 설어 국 끓일 냄비에 쇠고기와 같이 넣고 찬물로 채워 국 준비 완료. 국 준비하는 동안 올려놓았던 물이 끓자, 일단 양배추 삶아 건지고, 그 후 파슬리 삶아 건져 내 쌈 싸 먹을 것과, 초고추장 찍어 먹을 놈들 완료.

 

그러니 1시간 정도로 약속 시간이 다가오더군요. 더덕에 참기름과 간장을 섞은 놈으로 칠을 하여 초벌구이하고 준비한 양념장 얹혀 구워 냈습니다. 30분 남더군요. 좀 쉬었습니다.

 

드디어 둘째 형님 가족 도착. 인사하고 국에 불 붙여 놓습니다. 곧이어 큰 형님 도착. 셋째 형님 곧 온다고 연락 옵니다. 상 내려 펼쳐놓고 준비한 반찬 진열합니다. 아내 그 사이 샐러드 세팅해 가져가고, 국이 끓습니다. 셋째 형님도 도착. 버섯 불고기를 드디어 팬에 넣어 익히는 동안 국에 참기름과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형수님들에게 밥과 국 좀 놔 달라고 부탁하고 그 사이 불고기도 준비가 됩니다.

 

준비하는데 무려 8시간 걸렸습니다. 식사 하는데 30분 걸렸습니다. 30분을 위해 8시간을 준비하는 중 노동이었죠. 하지만 맛있게 식사하는 형님 가족 분들 보니 흐뭇했습니다. 제 딸 민애의 100일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와 준 것이 너무 감사했고요.

 

 

다음 날 처가댁 식구들이 점심 식사하러 오셨습니다. 몸은 무지 피곤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목욕 갔다 와서 웃으며 점심 준비하여 맛있게 또 먹었습니다. 두통이 오고 졸려 죽겠는데 얼굴 찡그리면 안 됩니다. 아내가 마음 아파하니까요. ‘어제는 잘 웃었는데 오늘은 찡그린다.’ 그러면 안 되니까요. 무사히 식사가 끝나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일어나셨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행복하던지. 웃음이 나오면서 즐겁게 보내드렸습니다. 수고했다고 아내에게 일당 5만원 용돈으로 받고요. 제가 이렇게 사소한 것을 길게 쓰는 이유는 아빠들 아셔야 합니다. 손님들 와서 먹는 것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도 그거 중노동입니다.

 

형수님이 그러더군요. 음식 장만할 때 채소만 다듬어 주어도 일이 훨씬 쉬워지고 고맙다구요. 아이 때문에 같이 못하고 혼자 한 끼 식사를 준비하면서 이 땅의 어머니들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빠들, 드시지만 마시고 장보는 것부터 음식 장만하는 것까지 함께 해보세요. 그럼 아내가 얼마나 힘들게 음식 장만 하는지 아시게 될 거고,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자, 칼 들고 어서들 부엌으로 가서 해보세요.

 

음식 못한다고요? 요즘 책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요. 그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어설프게 요리가 되어도 아내와 초대 받은 손님들 아주 맛있게 먹어 줄 것이고, ‘남편이 도와줘서 좋으시겠어요’라는 말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태그:#100일, #아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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