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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풍경 가운데 손수 키운 집짐승을 내다 파는 것을 보면서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어요.
▲ 시골 장터 장터 풍경 가운데 손수 키운 집짐승을 내다 파는 것을 보면서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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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구미에는 그나마 촌사람 맘씨를 느낄 수 있는 장터가 여럿 있어요. 왜관장과 약목장은 따로 장날이 있어 이때에 가면 보통 때보다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참 좋지요. 지난 27일은 2일, 7일장이 서는 선산장날이었어요. 장 구경을 한 번 해보고 싶어 얼마동안 벼르고 별렀는데, 다른 일과 겹쳐서 날짜가 맞지 않았지요. 이번에는 열일을 제쳐두고 선산 장 구경을 하려고 갔어요. 그것도 발품을 팔고 다니면서 구석구석 다녀볼 생각으로 버스를 타고 갔답니다.

늘 자전거만 타고 다니다가 모처럼 버스를 타니, 어찌 그리 신이 나든지 매우 즐거웠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시골이라 버스를 타도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오늘은 선산 장이 서는 날이라 그런지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꽉꽉 들어찼어요. 모두 장바구니나 작은 손수레를 하나씩 끼고 탄 어르신들이 많았지요. 장 구경도 신나는 일이지만 오랜만에 버스타고 가는 재미도 퍽 남달랐답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오늘은 모처럼 벼르고 별러서 버스를 타고 시골 장에 갑니다. 버스에는 장날이라서 그런지 보통 때와 달리 손님이 많았어요.
▲ 버스를 타고 장에 가는 날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오늘은 모처럼 벼르고 별러서 버스를 타고 시골 장에 갑니다. 버스에는 장날이라서 그런지 보통 때와 달리 손님이 많았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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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장터에는 벌써부터 많은 장사꾼들이 나와 판을 벌려 놓았어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답니다.
▲ 설 대목을 앞두고... 선산 장터에는 벌써부터 많은 장사꾼들이 나와 판을 벌려 놓았어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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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에는 예부터 장이 꽤 크게 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들머리부터 꽉 들어찬 장사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답니다. 장이 서는 곳은 선산 시장 뿐 아니라, 그 앞 개천을 막아 만든 ‘복개천’까지 꽉 메우고 있었지요. 여기는 선산 비봉산 임도를 타려고 자전거를 타고 가끔 왔던 곳인데, 오늘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라 무척 설레게 하네요.

장날 풍경 가운데 으뜸은 집에서 손수 키운 토끼나 강아지, 닭을 파는 곳이에요. 귀여운 집짐승을 장터에서 만나니, 어릴 적에 고향 장터에서 보던 그런 모습이라 무척 반가웠어요. 또 곶감이나 마른 생선, 과일, 알록달록한 옷가지들, 시골 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이 많았어요. 더구나 설이 가까워서 그런지 재수용품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요.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오전 10시쯤 되었는데, 벌써 장에는 붐비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아이고, 대목장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네!”
“올 설에도 대목 좀 봐야지!
“그러슈, 설 대목에 돈 많이 벌어야재!”


많은 사람들 틈에 어깨를 부비며 지나가는데, 서로 잘 아는 듯 보이는 손님과 장사꾼이 나누는 얘기를 듣고서야 알았어요. 설 대목이라서 다른 때보다 더욱 많이 붐빈다는 걸….

‘대형마트’ 보다는 ‘시골 장터’에서 설맞이를 해보세요.

요즘은 군밤도 기계로 구워내더군요. 장터에는 먹을거리들이 넘쳐 나요. 이것저것 모두 먹어보고 싶을 만큼 군침이 돌았어요.
▲ 맛있는 군밤 요즘은 군밤도 기계로 구워내더군요. 장터에는 먹을거리들이 넘쳐 나요. 이것저것 모두 먹어보고 싶을 만큼 군침이 돌았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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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는 장사꾼도 손님들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깨끗하게 꾸민 큰 가게(대형마트)로 몰려가는데, 그래도 어른들은 장날을 손꼽아 기다려 시골 장터를 찾아오는 듯했어요.

뉴스에서도 설 재수용품 값이 큰 가게보다도 재래시장이 20~30% 싸다고 하던데, 이것저것 값을 물어보니 그 말을 몸으로 느끼겠더라고요. 그리고 값도 싸지만, 무엇보다 집에서 농사지은 곡식들이라 믿고 살 수 있어 좋았어요.

할머니가 차가운 장터에 쪼그리고 앉아 손수 나물을 다듬고, 한 바구니씩 넘치도록 푸짐하게 담아놓고는 1천 원씩 파는 채소 값은 정말 쌌답니다. 거기에다가 덤까지 듬뿍 담아주는 맘씨는 시골 장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이었어요.

흔히 ‘대형마트’를 찾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여러 물건을 한 자리에 모두 모아놨으니 사는 사람 처지에서는 손쉽게 한 곳에서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이런 장날에 재래시장에 나와 조금만 발품을 팔면 얼마든지 값 싸고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답니다. 또 무엇보다 정해진 값대로 파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말만 잘하면 덤으로도 많이 얻을 수 있지요. 그런 살가운 정이 바로 시골 장터에서 느끼는 참맛이 아닐까 싶었어요.

지난날 어릴 적에 보았던 장터 풍경과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 옛날에 시골 장터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은 조금 사라진 듯했어요. 약장수나 서커스 같은 풍경은 아마도 어릴 적 기억에서만 더듬어볼 수 있을 듯해요.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런 풍경을 바라는 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지요.

김 한 조각을 떼어 맛을 보라며 건네주는데...
▲ 아따 맛이나 보라니까, 안 사도 돼요. 한 번 잡숴봐요! 김 한 조각을 떼어 맛을 보라며 건네주는데...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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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장터에서 도장을 파주는 아저씨도 만났어요. 참 보기 드문 풍경이지요.
▲ 도장 파주는 사람 선산 장터에서 도장을 파주는 아저씨도 만났어요. 참 보기 드문 풍경이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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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깜짝이야! 뻥이요!

장터 구경에 신이나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구경하는데, 어디선가 ‘뻥!’ 하고 큰 소리로 놀라게 하네요.

“어! 뻥튀긴가 보다! 저기 가보자!”
“허허 그래 시골 장터 맛은 뻥튀기지, 어서 가보자!”


소리가 들리는 데로 가보니, 하얀 김을 내뿜으며 지금 막 갓 튀겨 나온 하얀 튀밥을 자루에 담고 있었어요. 장터 어떤 곳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모두 설 준비를 하느라고 튀밥을 튀기러 나온 사람들이었어요.

튀밥을 튀기는 모습은 퍽 정겹고 재미나요. 어릴 적에는 이런 걸 자주 봤는데, 요즘은 시골 장터에서도 명절이나 되어야 볼 수 있다고 해요.
▲ 뻥이요~! 튀밥을 튀기는 모습은 퍽 정겹고 재미나요. 어릴 적에는 이런 걸 자주 봤는데, 요즘은 시골 장터에서도 명절이나 되어야 볼 수 있다고 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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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에는 세 곳이나 뻥튀기를 하는 집이 있었는데, 여기도 어릴 적 풍경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기계가 세 대씩 있고, 옛날에는 장작불로 돌리던 것이 지금은 파란 불꽃이 일렁이는 가스불로 튀기는 게 조금 달랐어요. 또 그때에는 뻥튀기 아저씨가 손수 기계를 돌려서 했는데, 요즘은 기계가 저 혼자 돌더군요.

“튀밥 튀기러 오신 거예요?”
“네. 이제 설도 다가오는데, 강정이라도 만들라고요.”


튀밥을 튀기려고 깡통에 쌀 한 됫박을 넣어두고는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께 여쭈었어요.

뻥튀기를 할 쌀이나 콩, 옥수수 따위를 깡통에 담고 줄을 서요. 깡통도 줄을 서고 손님도 줄을 서고...
▲ 줄을 서시오! 뻥튀기를 할 쌀이나 콩, 옥수수 따위를 깡통에 담고 줄을 서요. 깡통도 줄을 서고 손님도 줄을 서고...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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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그러면 집에서 강정을 만드세요?”
“그럼, 내가 직접 만들어야지 더 맛있지.”
“옛날에는 장에서 강정 만들어주는 곳도 있었는데, 이걸 손수 만드신단 말이에요?”
“그럼요. 여기도 강정 만드는 데도 있어요. 그래도 내가 하는 게 더 낫지.”
“아, 그래요? 여기도 있어요?”
“요 옆에도 있고, 또 저 앞에도 있고.”


손쉽게 해도 될 텐데 손수 설에 먹을 강정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으니 놀라웠어요. 하도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신기하게 여기며 구경하는 우리를 보고 아주머니가 다시 물으셨어요.

“근데 뭐하는 사람들이유?”
“아, 네.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곤 한답니다.”
“어쩐지 그래 보였어. 그럼 나중에 우리 동네에도 한 번 와봐요.”
“아주머니 어디 사시는 대요?”


선산 장에서 조금 떨어진 ‘산촌리’라는 마을에 산다는 아주머니는 나중에 꼭 놀러 한 번 오라고 하시면서 금방 튀겨서 나온 쌀 튀밥을 한 움큼 쥐어주었어요. 살갑게 대해준 아주머니 덕분에 사진도 찍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이런 데 오면 이렇게 먹어보는 거야. 이런 재미로 장에 오는 거지 뭐.”
“아이구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여기 선산 장에 뻥튀기집이 세 군데 있는데, 이 집이 제일 잘 튀겨준다니까.”
“그럼, 여가 젤 나아여! 옛날에는 저 앞에만 손님이 많았는데, 요새는 여가 젤 낫지.”
“그카고 여 주인이 말을 못하는데 옛날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어. 그래도 요새는 일부러 여까정 오는 사람도 있재. 또 튀밥 잘 튀긴다고 손님이 많이 온다니까.”


함께 있던 어르신들이 서로 이집이 튀밥을 가장 잘 튀겨준다면서 칭찬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아저씨 두 분이 계셨는데 한참 동안 지켜봐도 말이 없었어요. 말을 못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손님끼리 옥수수나 쌀, 콩 따위를 서로 깡통에 담아주면서 튀밥 튀기는 삯을 얘기해주기도 했어요. 구경을 하는 동안 기계에서는 쉴 새 없이 튀밥이 튀겨 나오더군요. 눈으로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모두 귀를 막고 깜짝깜짝 놀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재미나고 긴장되었답니다.

바로 곁에 있던 강정 만드는 집에서는 온 식구가 나와서 일손을 돕고 있었는데, 모두 어찌나 바쁘게 일하는지 대목은 대목이구나 싶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강정 만드는 과정을 사진을 찍으면서 인터뷰라도 하고 싶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한철 장사를 하고 있는 이들한테 방해가 될까 싶어 한참 동안 서서 구경만 했답니다.

지금 막 갓 튀겨나온 튀밥을 한 움큼 쥐어주시는 바람에 아주 맛나게 먹었답니다. 옛날 생각 하면서... 시골 사람 넉넉한 맘씨에 저절로 웃음이 나요.
▲ 쌀 튀밥 지금 막 갓 튀겨나온 튀밥을 한 움큼 쥐어주시는 바람에 아주 맛나게 먹었답니다. 옛날 생각 하면서... 시골 사람 넉넉한 맘씨에 저절로 웃음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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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리에 산다는 이 아주머니는 말을 하지 못하는 뻥튀기집 아저씨를 생각해서 손님끼리 서로 깡통에 쌀을 담아주곤 했어요.
▲ 손님이 손수 깡통에 담아주고... 산촌리에 산다는 이 아주머니는 말을 하지 못하는 뻥튀기집 아저씨를 생각해서 손님끼리 서로 깡통에 쌀을 담아주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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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한 켠 빈터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어요. 매우 정겨운 풍경이지요.
▲ 윷놀이 장터 한 켠 빈터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어요. 매우 정겨운 풍경이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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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명절 설을 앞두고 선 장날은 장사꾼이나 손님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쁜 하루였어요. 사람들은 흔히 사람 냄새를 맡으려면 장에 가보라고 했던가요? 정말 그렇더군요. 덤으로 주는 물건도 듬뿍 얹어줄 줄 아는 넉넉한 맘씨와 큰 소리로 외치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서 그저 장터에 구경 온 사람들도 신명나는 하루였답니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고 했던 가요? 값 싸고 살가운 정으로 얻어 온 덤까지 배가 불룩하도록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지요. 또 시골 장터에서 맛볼 수 있는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돼지국밥도 한 그릇 배불리 먹고 돌아왔답니다.

여러분들도 올 설맞이 준비는 정이 넘치고 생기 있는 시골 장터에서 해보는 건 어떨까요? 눈도 즐겁고 마음도 따듯해지는 시골 장터에서……. 


태그:#장날, #시골, #뻥튀기, #선산,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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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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