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제야 겨우 시절 인연이 닿아
 
재작년 여름이었던가. 그때 나는 삼정산 기슭에 앉아서 건너편 산자락에 있는 성냥갑만 한 절집 하나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산 이름도 암자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암자와 나 사이에는 긴 허공이 있었고 그 허공을 늦여름을 쏘다니다 지친 바람이 중중모리 걸음으로 불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저 곳에 가 보리라. 가서 저 작은 절집이 품은 아늑함을 내 마음 속 평화로 담아 오리라. 그 다짐으로부터 어느새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야 시절 인연이 닿은 것일까. 나는 지금 그때 바라보았던 암자로 가는 길을 오르고 있다. 그 암자의 이름은 안국암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절 이름에 담긴 뜻을 생각한다. 안국암이란 국태민안을 기원하려고 절을 세웠다는 뜻이리라. 어디까지나 민안(民安)은 좋다. 백성이 편안해야 천하가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태(國泰)는 어떠한가. 옛날엔 國(국)이란 나랏님을 가리키는 대명사였다. 그러므로 국태란 절대권력에 잘 보이려는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약간 뻔뻔스럽게 느껴진다. 혹 국태가 주개념이고, 안민은 종속개념이 아니었을까.
 
 
큰길에서 안국사까지는 1.3km. 멀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산길의 길이는 오로지 부처님과 엿장수만이 안다. 한참 가다 보면 그 길이가 처음보다 늘어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사뭇 가파른 시멘트 포장 길을 허위허위 올라간다. 길이 너무 넓어서인지 호젓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길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 뒤돌아서서 앞산을 바라본다. 건너편엔 지리산 삼정 능선과 삼정산(1210m)이 있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삼정산은 늠름하다. 그 넉넉한 품 안에 갓난아기처럼 안겨있는 도마마을. 도마마을이 평화스럽다. 마을은 자신이 평안한 게 안국사가 빌어주기 때문이라고는 믿지 않겠지만.
 
30분쯤이나 올랐을까. 길이 갑자기 새끼를 친다. 샛길이 나타나고 페인트로 안국사라 쓰인 돌이 보인다. 이제야 조금 길답다. 길이란 모름지기 조금 구불구불하고 호젓해야 한다. 그런 길을 걷는 맛이야말로 절집을 찾아가는 묘미 아니겠는가.
 
오르막길 중간에서 부도밭을 만난다. 길 왼쪽에 자리 잡은 부도밭에는 4기의 부도가 있다. 감나무 두 그루가 부도밭 입구를 지키고 섰다. 오른쪽에 있으면서 가장 잘 생긴 부도가 금송당부도다.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3기의 부도와는 달리 이 부도만 유일하게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단은 세 부분으로 돼 있는데, 가운데받침돌을 뺀 아래위 받침돌에 굵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누가 선사의 쾌적한 수면을 방해하는가
 
 
기단과 몸돌 사이에 납작한 북 모양의 돌을 끼워두었는데, 이 돌의 불룩한 부분에는 꽃송이를 새긴 띠가 둘러져 있다. 2단의 받침을 놓고 나서 그 위에 지붕돌을 놓았다. 지붕돌 처마 아래는 평평하고 윗선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분명히 상륜부에 보주가 얹혀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알다시피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앰브로스 비어스가 쓴 <악마의 사전>은 '열반'을 "불교국가에서 현명한 자, 특히 열반을 이해할 만큼 현명한 자에게 주어지는 쾌적한 무의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누가 금송당 선사의 쾌적한 잠을 방해하는가.
 
꽤 너른 대숲이 부도밭을 감싸고 있다. 1947년 화재로 안국사가 소실 되고 나서 연암보살이라는 분이 부도를 이곳으로 옮겨 안치했다고 하는데 대나무 줄기가 굵지 않고 여린 걸로 보면 그 후 꽤 시일이 지난 뒤에 대숲을 조성한 것 같다. 푸른 대숲이 감싸고 있어서인지 다른 암자의 부도밭보다 훨씬 아늑한 느낌이다.
 
아미타여래좌상의 미소 속에 서방정토가 있다
 
 
부도밭을 나와서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자, 3단으로 쌓은 석축 위에 자리 잡은 안국사 전각의 지붕이 보인다.  
 
안국사는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3)에 행호조사가 국태민안을 기원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947년 불이나 타버렸는데 1965년에야 중건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3안국이라 부르는 절이 있다. 서산 안국사와 금산 안국사 그리고 이곳 지리산에 있는 안국사가 그것이다.
 
안국사의 주불전은 맞배지붕을 한 무량수전이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자, 찬란한 빛을 발하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눈에 들어온다. 2004년에 개금불사를 한 것이라고 한다. 개금할 당시 복장 구멍을 뜯어 보았으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미타여래좌상은 등을 세우고 결가부좌를 튼 채, 오른손은 손바닥이 밖을 향하도록 가슴 높이로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아미타 수인을 하고 있다. 몸에 비해 얼굴이 매우 큰 편이다. 방형에 가까운 얼굴은 턱을 둥글게 깎고 뺨도 통통한 편이다.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자세로 미소짓는 얼굴은 부드러우면서 자비로운 인상을 풍긴다. 아미타여래좌상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444호로 지정돼 있다.
 
무량수전 왼쪽엔 옛 법당으로 보이는 팔작지붕 건물이 있다. 어렸을 적에 동네에서 흔히 보던 기와집 형태라서 그런지 매우 친근하게 느껴진다. 문틀을 칠한 노란색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고고하면서 외롭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암자에는 들머리의 부도밭 말고 따로 부도 한 기가 있다. 요사에서 일하시는 보살에게 물으니 무량수전 뒤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시간에 대한 감수성이다. 시간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말하는 '한참'은 생각보다 짧고 둔감한 사람이 말하는 '한참'은 생각보다 길다. 저 보살은 시간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까, 아닐까.
 
산길을 채 20여 m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벌써 부도가 나타난다. 아까 보살은 아무래도 시간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분인가 보다. 부도는 양지바른 곳에 터 잡고 있다. 첫눈에 봐도 명당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부도는 팔각원당형이다. 아래·가운데·위의 3단을 이루는 기단 위에 몸돌을 올리고 그 위에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두르고 윗받침돌에는 이와 대칭되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지붕돌은 윗면에 새긴 기왓골이 선명하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떨어져 나가 형태를 알 수 없다.
 
가운데받침돌에 '은광대화상'이라 새겨 주인공을 밝혔다. 은광화상은 살았을 때 어떤 분이었을까. 기단에 새겨진 연꽃무늬의 연대로 보면 통일신라말이나 고려 초에 살았던 분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천 년이 넘게 홀로 이 기슭에 누워 계시는 셈이다. 고고하긴 하나 외로울 것도 같다. 하기야 외롭지 않으면 고고하기 어려운 게 세상사 아니던가.  
 
산길을 내려오다가 무량수전 오른쪽엔 요사로 보이는 건물에 눈길이 닿는다. 3년 전이던가. 이곳에 비가 많이 와 산사태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 맞은 편 삼정산에서 봤을 때 벌겋게 흙이 드러난 곳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때  일어난 산사태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출정하면서 전승을 기념하며 세운 출정탑이 사라졌다고 한다. 안국사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유물을 잃어버린 것이다.
 
안국사여, 너만은 세간에 물들지 마라
 
 
다시 절 마당에 선다. 삼정산과 그 능선이 눈인사를 건넨다. 산기슭과 골짜기엔 눈이 쌓여 희끗희끗하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였는데 정면만 겨우 문구멍처럼 터줬다. 성(聖)과 속의 경계가 확연하다. 무량수전의 문을 죄다 열어 놓은 채 결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절로 절대고독이 완성될 듯하다.  
 
어쩌면 저 위에 좌정하신 은광화상께선 살았을 적에 가끔 이렇게 외쳤을는지 모른다. 삼정산아, 네 몸집이 더 크냐, 아니면 내 절대고독이 더 크냐? 그런 호연지기 하나쯤 없다면 어찌 참다운 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안국사는 내게 더 머물렀다 가라고도, 빨리 가라고도 하지 않지만 이제 곧 떠나야 할 시간이다. 문득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게송 한 편이 떠오른다.
 
不離於世間(불리어세간) 亦不着世間(역불착세간) 行世無障碍(행세무장애) 如風遊虛空(여풍유허공)
이 세간 떠나지 않고, 이 세간에 붙들리지도 않고, 이 누리를 오가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음이여, 마치 바람이 허공 속에서 노는 것과도 같구나.  
 
그 경전 구절 한 번 좋을시고. 그러나 나 같은 범부에겐 <화엄경>은 <화엄경>일 뿐이요, 나는 나일 뿐이다. 시간의 그물에 갇혀 사는 나는 서둘러 안국사를 나선다. 안녕, 안국사여, 너만은 세간에, 세간의 명리(名利)에 붙들리지도 말고 지금처럼 조용히 살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안국사는 경남 함양 마천에 있습니다. 


태그:#지리산 , #안국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