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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10시 50분에 들어가셨고, 오늘 아침 5시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본 뒤 30분 정도 운동을 하고 7시 50분에 출근하셨다. 아침식사는 한식으로 했다."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맞은 첫 날 아침 풍경이다. 겉으로 봐선 평범한 일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부동산투기 의혹과 자녀 이중국적 논란에 휩싸인 각료 내정자 처리 문제 때문이다. "취임식과 잇따른 정상회담으로 바빠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이동관 대변인)고는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29일 첫 국무회의 열릴 수 있을까

 

청와대는 일단 오는 29일 새 각료들과 국무회의 일정을 잡아놨다. 이춘호 여성부장관 내정자가 전격 사퇴함에 따라 헌법에 규정된 국무회의 성원에는 미달하지만, "한 명이 임명 지연 된다는 전제로, 15명이 성원되는 것으로 의제(본질은 같지 않지만 법률에서 다룰 때는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는 일)되어 국무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이 '찬성' 통과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얘기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녹록치 않다. 통합민주당은 남주홍(통일)·박은경(환경) 장관 내정자에 대해 공직자로서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해당 상임위의 인사청문회를 거부하기로 했다. 남 내정자에 대해서는 자녀 이중국적과 부동산 투기 의혹, 박 내정자에 대해서는 외지인이 살 수 없는 절대농지를 편법으로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춘호 내정자의 자진사퇴로 일단락되기를 기대했던 인사 문제가 오히려 '부적절 인사'를 자인한 꼴이 되면서 '야당발 강경론'을 부채질했다. 여기에 4·9 총선을 앞두고 여론악화에 부담을 느낀 한나라당 지도부마저 우회적으로 청와대의 결단을 압박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제기되고 있는 장관 내정자 교체 요구에 대해 "재산이 많은 것이 무엇이 문제냐, 일만 잘하면 된다"며 팔짱을 끼고 있던 청와대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과 박재완 정무수석비서관 내정자가 26·27일 이틀에 걸쳐 각 정당 대표를 잇따라 방문, 협조 요청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26일 오전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 천영세 민주노동당 대표 권한대행을 방문한 데 이어 오후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다. 27일에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방문할 예정이다.

 

"일만 잘하면 된다"고 팔짱 끼고 있었지만

 

각 정당 대표 릴레이 회동은 이날 류우익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1시간 40여분이나 계속된 회의에서는 당초 언론으로부터 문제가 제기된 내정자를 교체하거나 자신 사퇴를 유도하자는 의견 등이 거론됐지만, 최종 결론은 '원안 유지'였다.

 

그러나 야당 측이 인사청문회 일정을 계속 거부할 경우 29일 예정된 새정부 첫 국무회의 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이동관 대변인은 수석회의 브리핑에서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거부 할 경우에는) 따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되겠다"면서도 "그런데 그럴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애써 여유를 보였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어 "청문회를 거부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 "장관 후보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청문회에서 본인(내정자)의 해명을 충분히 듣고나서 판단하는 것이 도리"라고 강조했다.

 

야당을 겨냥한 지적이지만 나머지 네개의 손가락은 자신에게로 향해있다. 우선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뒤 정치권과 여론의 향배에 따라 장관 내정자의 거취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야당에 대한 협조 요청과 함께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내정자에 대해 '재검증'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재검증'이라는 용어가 '탈락' '철회' 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동관 대변인은 "재검증이라고 하니까, 마치 다시 검증을 해서 문제가 있으면 탈락시키겠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다"며 "재검증이라보다는 문제가 있다는 여러 가지 언론의 지적이 있으니까 당연히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한번 더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로서는 언론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대변인은 "인사청문회 전에 장관 내정자의 자진사퇴는 없느냐"는 질문에 "뭐,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재검증이라기보다는 한번 더 들여다보는 것"

 

현행법상 국회에서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더라도 인사청문 요청안 접수 후 20일이 지나면 대통령이 장관을 자동 임명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성 시비로 인해 국회 청문회도 거치지 못한 내정자를 장관으로 임명할 경우 대통령도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그렇다고 장관 내정자를 추가로 교체하자니 인사시스템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함께 '약한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타격을 감수해야 한다. 새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를 감안하면 상당기간 국정공백도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그냥 밀고 나가자니 총선을 앞둔 여론이 부담스럽다.

 

대통령 취임식장의 열띤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장관 인사청문회,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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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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