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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겉그림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겉그림
ⓒ 부엔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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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조선은 '숭유억불'의 나라다. 말 그대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다는 시대다. 그리하여 혹자들은 불교의 암흑기라고도 한다.

그런데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에서 만나는,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려 외국에서 국보 대접을 받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조선 시대가 정말 불교 암흑기였나?'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일본 메이지유신 때 일본의 국보급 유물로 지정되기도 했던 <오불존도>는 현재 일본 오사카 시립미술관에 기탁되어 보관 중이라는데, '어? 이런 불화도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일반적인 불화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불화에 주로 등장하는 부처와 보살, 신장과는 전혀 다른, 귀족으로 보이는 남녀가 시종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강소연 교수(동국 대학교 연구 교수 및 홍익대 겸임 교수)의 그림 설명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사학자들 간에 여러 차례의 논증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우리의 유물임이 최종 결정된 이 그림은 조선 왕실에서 발원하여 제작된 불화란다. 그림 속 화려한 치장의 주인공은 조선의 법전을 집대성한 경국대전을 완성한 조선 제9대 성종과 첫 왕비인 공혜왕후란다.

불화 속에 왕과 왕비가 시종과 함께 그려진 것도 흔하지 않은 형식이거니와, 이 정도의 불화를 발원할 정도라면 불사금(그림 제작에 드는 경비)도 엄청났을 터. 불교 억압의 시대에 어떻게 이처럼 거창한 불사가 가능했을까? 그것도 왕실의 발원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숭유억불'의 이면을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작품들은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제작된 것일까? 숭유억불의 조선 시대에 그려진 그림들이 정말 맞나? 조선시대는 정말 불교의 암흑기였을까? 우리가 우리시대의 기준으로만 숭유억불의 뜻을 해석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이런 유물들은 어쩌다 머나먼 이국, 이국의 오지까지 가 닿게 된 걸까?' 우리가 잃어버린 유물 앞에서 생각이 분분해진다.

저자 강소연(동국 대학교 연구 교수 및 홍익대 겸임 교수)
 저자 강소연(동국 대학교 연구 교수 및 홍익대 겸임 교수)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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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나의 분분한 생각에 저자인 강소연 교수는 우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훈민정음 창제 후 가장 먼저 편찬된 산문 작품은 석보상절이다. 세종의 명으로 왕자인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이 편찬한 석보상절은, '석가의 족보, 즉 석가의 일대기, 상절은 중요한 것 외에 줄인다'는 뜻이다. 석가의 중요한 일대기를 적은 이 석보상절을 읽은 세종은 기뻐하며 석가의 공덕을 칭송하는 <월인천강지곡>을 직접 짓는다.

고려시대도 아닌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새로운 글자를 창제한 왕이 신하도 아닌 왕자에게 석가의 일대기를 적게 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를 필두로 수많은 경전들을 한글 번역케 하여 고려 시대 귀족의 종교였던 불교를 일반 백성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런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와 관련된 부분을 읽으며 느낀 것은, 역사적 사건들을 서로 연관 짓고 아울러 생각하지 않고 각 사건을 따로 떼어 단편적으로만 생각해왔다는 내 스스로 문제점이었다.

'숭유억불'에 대해서도 배우고, 석보상절(보물 제523호)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둘을 연결 지어 생각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전혀 유추해보지 못했다. 그 때문에 조선시대는 불교를 탄압한 시대라는 것을 다른 역사적 사건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비중 둔 것 같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필두로 시작된 한글 불경 사업은 계속되어 연산군 때까지 이어진다. 인수대비는 성종과 예종 등 선왕들을 추모하고 백성들을 무명에서 구제하고자 ‘법화경’, ‘능엄경’, ‘인각경’ 등 1000여건에 달하는 경전을 발간한다. 또한 고승 학조와 함께 수백 건의 불경을 한글로 풀어내는 간행사업을 했는데, 이때 한글로 풀어내 범어, 한문, 한글(훈민정음) 이 삼자체로 된 불경들과 여훈(女訓)은 오늘날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왕실에서 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불교 사업이 몇 대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말이 1000여 권이지, 오늘날 책을 세는 단위인 권수와 차이는 있지만 당시의 인쇄술 등 전반적인 시대상황을 고려해보면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글창제 초기의 글씨가 빼곡히 새겨진 귀중한 사례의 <안락국태자경변상도>/조선 전기(1576년)/일본 고치켄 아오야마분코 소장
 한글창제 초기의 글씨가 빼곡히 새겨진 귀중한 사례의 <안락국태자경변상도>/조선 전기(1576년)/일본 고치켄 아오야마분코 소장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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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또 다른 작품, 일본 고치켄 아오야마분코에 소장 중인 <안락국태자경변상도>에는 조선 왕실의 여인들에게서 사랑받던 원앙부인의 설화가 금 글씨로 자잘하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금으로 새긴 이 글씨들은 다름 아닌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글자들인지라, 책을 통해서나마 만나는 그림에 대한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왜 우리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 있어야만 하는 걸까? 이국땅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에게 흔적이 없는 우리의 유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160여 점 고려 불화 중 5점 제외한 나머지는 해외에 흩어져 있어... 안타깝다"

700년 이상을 지내 온 고려 불화 속 붉은 가사 문양을 자세히 보면 꽃의 씨방까지 낱낱히 표현해내고 있다.
 700년 이상을 지내 온 고려 불화 속 붉은 가사 문양을 자세히 보면 꽃의 씨방까지 낱낱히 표현해내고 있다.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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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섯 해 동안 우리의 문화유산을 놓치지 않고 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 유물이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다녔다.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때로는 이국땅 지방 노선을 달려 구불구불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 유물을 만나게 되면, 그곳이 대도시의 박물관이면 오지의 조그만 사찰이나 지방도서관이건 숱한 상념이 떠올랐다. ‘이 유물은 어쩌다 예까지 왔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앞서기도 하고, 우리 것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이산가족이 만난 것처럼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우리 것에 대한 본능적인 직감이랄까?"

책을 읽으며 ‘혹자들의 주관적인 편견 때문에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유물들이, 저자가 6년 동안 공을 들여 우리 곁에 이렇게라도 두고 싶은 우리의 이 유물들이 다시 외면받는 것은 아닐까?’의 조심스런 염려를 해보았다.

소개된 30점 모두 우리가 흔히 부르는 ‘불화'로 200여 컷의 화보가 풍성하다. 그러니 책을 펴면 내용을 읽기 전에 불교적인 그림들이 눈에 쉽게 들어오는 터라 지극히 불교적인 책으로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책에 대해 좀 더 설명하면, 저자는 그림의 부분을 확대, 이 부분을 주제로 역사, 미술사, 불교 상식이 녹아든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그림에 대한 교양이 훨씬 풍부해진다. 게다가 그림 중 일부는 국내에선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는데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우리 곁에 이전부터 있었다면 우리의 역사자료가 훨씬 풍부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하다. 특히 국제적 명성이 자자한 고려 불화의 섬세함은 눈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한다.

"한국 고대 미술사에서 불교 미술을 빼면 이해도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문화유산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정신, 가치, 우주관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불교적으로도 의미가 많은 작품들이지만 불교 작품 이전에 조상들이 남긴 유물로 먼저 받아들여 유물의 가치를 먼저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삶의 원형을 이룬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제대로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월관음도>,고려시대(1323년),165.5x101.5cm 일부(오른쪽)와 그 세부(왼쪽 3매. 맨 아래는 7cm에 해당. 고려불화의 국제적 명성은 '신묘한 경지'라고 일컬어지는 이와같은 표현에서 비롯, 국제 경매가 최고를 호가한다고...
 <수월관음도>,고려시대(1323년),165.5x101.5cm 일부(오른쪽)와 그 세부(왼쪽 3매. 맨 아래는 7cm에 해당. 고려불화의 국제적 명성은 '신묘한 경지'라고 일컬어지는 이와같은 표현에서 비롯, 국제 경매가 최고를 호가한다고...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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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운동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자부심부터"

문화재청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7만5000여 건. 이렇게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들 일부를 책을 통하여 만나며 우리가 잃어버린 문화유산에 대한 안타까움은 새삼 더해졌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반환운동이 꾸준히 일고 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서울 숭례문처럼 우리 곁에 있는 문화재를 지켜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자부심…, 우리의 문화재 반환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외국의 유명한 화가나 그림들은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외국의 유명한 작품들을 보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좋은 작품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좀 적은 것 같다. 더욱이,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정보는 알려진 일부 유물 빼고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어떤 유물들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전한 것이 아닌가 할 만큼 그들에 의해 보관이 아주 잘 된 것들도 있었다. 이런 유물들을 볼 때는, 문화재로 지정할 만큼 가치가 있음에도 관리가 소홀한 우리 땅의 문화재들이 더욱 안쓰럽고 안타까워지곤 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내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진정한 마니아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곤 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3월 7일 오후, 서울 홍대 정문에 있는 한 커피집에서 저자를 만났다.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강소연 글.사진/부엔리브로/2008년 1월/25700원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

강소연 지음, 부엔리브로(2007)


태그:#문화유산, #문화재반환운동, #불화, #한국미술, #해외유출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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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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