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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기자] 18대 총선 지역구 공천에 이어 비례대표 후보 선정 결과가 발표됐다.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이라는 공직선거법상 의무조항에 따라 여성들에게 절반의 자리가 주어졌다. 하지만 당 안팎과 여성계에서는 이 여성후보들이 얼마만큼의 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대표성을 띠고 있느냐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은 여성운동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여성 정치참여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성평등 의식과 성인지적 시각을 가진 여성들의 정치 진입을 가능하도록 해 여성의 권익 신장과 차별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비례대표 여성후보 공천 결과를 보면 제도 도입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통합민주당은 당내 반발이 심각하다. 전국여성위원회 위원장인 윤원호 의원은 "비례대표에 공천된 여성인사들의 경우 전문성과 대표성은 물론 당 기여도 또한 전무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상위 순번 여성후보들 중 직능대표 몫인 강명순 '부스러기 사랑나눔회' 대표와 조윤선 대변인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난해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던 이들로 대부분이 채워졌다.

 

오유석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유력 정당들이 여성 할당 자체는 지켰지만, 당연히 비례대표 여성후보의 기본전제가 되어야 하는 성평등 의식과 이에 대한 검증이 과연 어느 정도 선정 기준으로 작동되었는지 의문"이라며 "현재와 같은 비례대표 순위 선정과정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은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 또한 "계파별 나눠먹기식 공천, 과거 정권의 고위직 인물에 대한 선심성 공천으로 소외계층을 대변할 여성 비례대표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창조한국당과 친박연대는 50% 여성 할당과 남녀 교호순번제라는 규정 자체도 지키지 않았다. 창조한국당은 1번부터 4번까지를 모두 남성으로 공천했을 뿐 아니라 총 12명의 후보 중 3명만이 여성후보다. 친박연대 역시 여성후보의 순번을 1, 4, 5, 7번 등 자의적으로 배치했다.

 

오유석 대표는 "지역구에 여성후보를 한명도 출마시키지 않았고 비례대표에 있어서는 공직선거법상의 의무조항조차 지키지 않은 창조한국당은 규탄받아 마땅하다"면서 "특히 이주여성 후보를 내세워 여성과 소수자를 배려한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음에도 불구, 이주여성 후보는 8번을 배정받았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당에서 몸담았던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후보들 대다수가 당선 안정권과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의 공천자 명단에 오른 당직자 그룹 중 서영교 전 청와대 춘추관장(33번)과 김현 부대변인(39번) 등은 후보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서영교 전 춘추관장은 "비례대표 선정의 객관적 기준이 모호하다. 정치전문가이면서도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 당직자들이 제대로 된 평가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각 당의 당직자들은 "이런 식이면 누가 당을 위해 일하려고 하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는 "각 당이 당 지지율을 높이고 의석 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 이벤트처럼 진행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엄 교수는 "정당인들을 홀대하는 일이 반복되면 정당의 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정당문화가 정착될 수 없다"면서 "TV 지명도나 인기도가 심사기준이 되고 의석 수만 늘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을 영입하는 것은 천박한 정치행태"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여성후보, 총 70명 후보 중 당선 안정권 27명선

 

각 정당의 4·9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정 결과, 여성후보들은 총 70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각 당의 당선 안정권에 든 여성들은 통합민주당 8명, 한나라당 14명, 민노당 2명, 자유선진당·진보신당·친박연대 1명 정도다.

 

통합민주당은 ‘경제 살리기’를 우선으로 내세웠다. 1번 후보로 ‘금융전문가’ 이성남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선정한 것. 이 전 위원은 씨티은행 한국영업담당 총지배인과 한국재정담당 수석을 거쳐 금융감독원 최초의 여성임원이자 한국은행 금통위 첫 여성위원으로 활동했다.

 

손학규 대표는 “이성남 위원은 실물경제를 일선에서 경험하신 분으로 우리 당이 건전한 정책정당, 대안정당으로 금융통화 분야에서 앞으로 내실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여성후보로는 최영희 전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 박선숙 전 청와대 공보수석 등이 선정됐다.

 

한편, 민주당은 일부 후보들이 “비례대표 선정은 결국 ‘계파 나눠먹기’에 불과하다”며 줄사퇴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서영교 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고연호 전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위원장, 김현 당 부대변인 등 여성후보들도 사퇴의사를 밝혔다.

 

한나라당은 서민·빈민 등 소외계층을 배려한다는 방침에 따라 ‘빈민촌의 대모’로 알려진 강명순 목사를 1번으로 선정했다. ‘부자당’ ‘웰빙당’의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강명순 목사는 대학시절 빈민촌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빈민운동에 투신해왔고, 1986년 빈곤층 아동 후원을 위해 시작한 ‘부스러기 선교회’를 현재 1만여명의 빈곤층 어린이를 돕는 ‘부스러기 사랑나눔회’로 발전시켰다.

 

그간 비례대표 1번으로 꾸준히 거론됐던 이경숙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발표 직전 “인수위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안된다”는 강재섭 대표의 말 등으로 논란이 일자 공천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위 순번 여성후보로는 대선 기간 이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를 수행한 김금래 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을 비롯해 이정선 한국장애인정치포럼 대표이사, 김소남 국민화합실천연대 공동대표 등이 배치됐다.

 

자유선진당은 이영애 당 최고위원을 1번으로 확정했다. 이 최고위원은 사법시험 최초의 여성 수석합격자, 여성 최초의 고법 부장판사와 법원장 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이 외 박선영 동국대 교수, 박원경 전 국민중심당 최고위원, 황인자 당 여성위원장, 이혜연 당 공보특보 등이 순위에 올랐다.

 

민주노동당은 일찌감치 여성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위 순번에 할당해 사회적 약자와 서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1번에 배치된 곽정숙 전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는 20여년간 장애여성계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애썼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진두지휘했다.

 

곽 전 대표는 “국민의 10%인 500만 장애인의 권리를 100% 찾아드리겠다”며 여성장애인 지원법 제정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강화, 장애인 연금제 실시 등을 중심으로 한 총선 장애인 공약을 발표했다.

 

여성 몫으로는 황선 민노당 부대변인, 최옥주 전 전국여성농민연합 사무총장을 선정했다.

 

진보신당은 1번에 박김영희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를 선정했다. 유방암 투병 후 강제 전역을 당했다가 복직 투쟁 중인 예비역 중령 피우진씨가 3번으로 배치돼 눈길을 끌었다.

 

창조한국당은 1번부터 4번까지를 남성후보로 배치했다. 오정혜 정부정책연구원장이 5번을 배정받아 여성 최고순위가 됐으며, 다문화 사회화에 대한 대비와 배려 차원에서 추천된 필리핀 이주여성인 헤르난데즈 주디스 알레그레씨는 8번에 배정됐다.

 

한편,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석 수는 지난 17대보다 2석 줄어든 54석이다. 비례대표 의석을 받으려면 정당 투표에서 3%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거나, 지역구 5석 이상을 얻어야 한다.

 

비례대표 의석 분배는 지난해 대선 당시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면 한나라당(48.7%) 26석, 통합민주당(26.1%) 15석, 자유선진당(15.1%) 8석, 창조한국당(5.8%) 3석, 민노당(3.0%) 2석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23일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하면 한나라당 27석, 민주당 17석, 민노당 4석, 친박연대 3석, 자유선진당 3석 정도가 된다.


태그:#여성 비례대표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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