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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기자는 15번 정도로 기억했다. 그러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21번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뉴욕 피에르(PIERRE)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 연설 도중 받은 박수의 횟수를 놓고 작은 설전(?)이 벌어졌다. 사실 누구의 주장이 맞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청와대에서 굳이 과장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 대통령은 동포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고, 이날 행사는 성황리에 치러졌다.

 

그러나 이날 행사 분위기 만큼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환영을 받았을까? 동포 사회 일각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재외동포청 신설 문제나 재외동포 참정권에 대한 이 대통령의 답변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방미가 한쪽에선 환영으로, 다른 한쪽에선 아쉬움과 외면으로 비쳐지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뉴욕동포 99%가 나를 지지... 재외동포청은 어렵다"

 

"기분 같아서는 선거 끝나고 그 다음날 뉴욕에 오고 싶었다."

 

뉴욕 동포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첫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 대선에서 뉴욕 동포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 "뉴욕 분들이 100%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99%는 저를 지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두 번째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날 행사장을 가득 메운 450여명의 동포들은 이 대통령의 연설 내내 연신 박수를 치며 뜨거운 호응을 보내줬다. 한쪽에선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조병창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미지역 부의장은 "이 대통령이 뉴욕동포사회에서 인기가 많으니 5년 뒤에 뉴욕 한인회장 한번 하시겠다면 제가 추천하겠다"며 건배사를 했다.

 

17일 워싱턴 동포 간담회에서도 박수가 좀 덜 나왔을 뿐 환영 분위기는 비슷했다. 이 대통령이 동포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은 10년만의 정권교체로 한미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동시에 동포 사회에선 한국내 재외동포재단의 재외동포청(부) 승격, 재외동포의 참정권, 이중국적 인정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인억 워싱턴 D.C. 한인회 회장은 "참정권, 이중국적 문제 등 많은 의견이 있었고 한국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라며 "가까운 장래에 미래지향적인 동포정책을 실행해 줄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기철 전 뉴욕한인회 회장도 "재외동포재단으로는 700만 재외동포들의 창구역할을 대변하고 정책수립 하는데 미흡하다"며 "부로 승격하면 좋겠지만 동포청이라도 승격시켜줬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또 "이중 국적을 빨리 허용해주고 모든 재외교포들이 한국 참정권도 갖고 거주국 참정권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선물' 보따리는 동포들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우선 이 대통령은 "동포재단을 부로 승격하는 것은 안 된다"고 일축했다. 이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 때문에 부처가 줄어들었다"라며 "장관을 두는 것보다 동포재단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일을 잘 할 수 있을 지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중국적과 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선진적인 규정대로 바뀔 것"이라면서도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는 "중국과 같은 정체성이 다른 국민도 있고 대한민국에서 참정권을 갖는 것을 문제삼는 나라도 있어 일률적으로 할 수 없다"며 "신중하게 하되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모처럼 '한미동맹 강화'를 주문처럼 외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탄생에 잔뜩 기대감을 나타냈던 동포들은 이 대통령의 답변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포들은 "법을 바꿔 외국인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 "미국 교민 젊은이들이 (한국의) 학교를 순회하면서 영어교육을 할 수 있도록 금년에 500명 정도 모집에 들어갔을 것" 등의 '공약'에 만족해야 했다.

 

"FTA로 양국 경제 발전"... "우리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내 대표적 '지한파' 모임인 '코리아 소사이어티' 초청 만찬에서도 이 대통령은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이날 만찬은 400달러(한화 약 40만원)에 달하는 입장권이 모두 팔려나가 정원 600석이 다 찼고, 미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인사들도 2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성황을 이뤘고, 분위기도 훨씬 좋았다"고 자평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한국은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한국경제의 체질을 강화할 수 있다"며 "미국도 선진화된 서비스 산업을 한국에 진출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동아시아에 대한 시장을 넓히는 데 있어 한국을 전략적인 교두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미의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고 있는 한·미 FTA 비준안 처리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 첫날부터 각종 행사마다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상무부 장관은 "조속한 시일내에 FTA를 발효시켜 양국의 경제성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한미관계가 그간 특별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하지만 지금보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FTA를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들고온 한·미 FTA 문제에 대해 미국 사회가 모두 찬성하고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힐 차관보는 "호텔에 들어올 때 보니 많은 FTA 반대 시위자들도 있더라"고 전했다.

 

실제 '코리아 소사이어티' 초청 만찬 행사가 열린 맨하탄 플라자(PLAZA) 호텔 앞에서는 재미교포 시민단체인 '노둣돌' 회원 20여명이 '한미FTA STOP!'이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한미자유무역협정 결사반대", "우리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삼성, 이 대통령 방미 '환영 광고'... 기사는 없어

 

삼성그룹이 미국 현지 신문에 이 대통령의 방미를 환영하는 내용의 전면 광고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삼성은 16일(현지시각)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의 주요 신문에 이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Welcoming a New Era of Friendship between the US and Korea"(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우정의 시대, 그 힘찬 출발을 환영합니다)는 제목의 전면 컬러 광고를 일제히 실었다.

 

삼성은 광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첫 미국 공식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상호 믿음과 신뢰에 바탕을 둔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적 방문을 계기로, 삼성은 두 국가 간의 깊은 우정이 더욱 발전되고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고 밝혔다.

 

또 광고 좌상단에는 "We are proud to share this historic moment between two great nations(우리는 두 위대한 국가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성조기와 태극기를 새겨넣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은 '썰렁'했다. 이날 삼성 광고가 실린 이들 신문들조차 이 대통령의 방미에 대한 기사가 전혀 실리지 않았다. 삼성의 '광고'가 기사를 대신 한 셈이다.

 

그나마 WSJ의 경우 전날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존 볼턴 전 유엔 대사의 기고문을 게재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짧게 소개했고, 이날 서울발 기사로 간접보도를 한 게 전부였다. 반면 이들 언론들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방미 소식은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어 대조를 이뤘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힐 차관보가 영접을 나온 반면, 교황은 부시 미 대통령 내외가 공항에서 직접 영접한 상황 역시 국내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태그:#이명박, #한미FTA,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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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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