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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1995년 거제의 한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 있을 때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해방50주년 기념으로 <거제, 친일파를 말한다>라는 야심찬 기획을 시작했다. 그 당시 필자가 작성했던 기획안을 보니, 총 50회로 연재할 계획이었다.

 

역사적인 첫 회! 지역사회의 반응은 뜨거웠다. 해방된 지 50년만에 지역의 '친일파'를 거론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정말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그런데 사태는 2회에서 사단이 나고 말았다. 지역 내 토호이자 모 교회의 장로출신 인물에 대한 기사였는데, 신문이 발행된 다음날, 그 후손들과 그 교회 사람들까지 신문사로 몰려왔다. 더 재미있는 일은 후손들과 함께 찾아 온 사람들 중에서 필자의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필자를 세워놓고 "무슨 근거로 그런 짓을 했느냐"부터 온간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흥분한 한 사람은 벽돌까지 던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분위기는 험악하게 바뀌었다. 결국 시리즈물은 중단되었고, 필자는 신문사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 사건 이후 필자는 오히려 친일파를 연구하는데 더 몰두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케케묵은 일제강점기의 신문과 씨름하게 되었고,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등과 인연을 맺으면서, 좀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앞으로 닥칠 수많은 난관

 

임종국 선생의 타계 이후 그 뜻을 받아 친일파를 연구해 온 연구소가 반민특위 해체 49년만에 친일인명사전에 게재될 명단을 확정해 29일 발표한다. 지난 2004년 <오마이뉴스>에서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편찬 모금운동은 한 네티즌의 제안에서 시작돼 11일만에 무려 5억여 원 넘는 성금이 모금되면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친일파에 대한 글이 각종 매체에 게재되면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지역사회에서는 돌팔매를 맞을 각오를 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친일파 후손들의 항의와 협박 그리고 회유를 받아가면서 말이다.

 

이러한 일은 필자만이 아니라, 연구소에서도 끊임없이 겪어온 일이다. 이번 명단 발표와 출판까지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명단에 오른 후손들은 "절대 아니다. 무슨 근거로 친일파라고 하느냐"라고 항의할 것이고, 심지어 재판으로까지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일부 극우단체 등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얘기하는 세력은 빨갱이다"라고 독설을 내뿜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진부한 민족주의'라고 애써 평가절하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1, 2차에 선정된 4800명의 친일파들은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을사오적에서 지역의 토호인사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인물 중 일제강점기 지역에서 위안부·징병 동원, 놋그릇까지 공출에 나섰던 면장, 면서기, 구장(이장), 순사 등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는 지적도 있다. 일제의 전쟁동원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지역 토호와 말단 관리였음을 각종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나 이들을 파악하기에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자료 추가 수집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자료들이 추가로 수집되어야 한다. 아직도 지역사회에는 잠자고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흩어져 있다. 전직 면장을 지낸 집에 있는 궤짝 속, 면사무소 창고 구석진 곳 먼지구덩이 속의 자료, 심지어 일본에서 비공개 상태로 꽁꽁 숨겨둔 자료까지 너무도 많다. 특히 일본은 국립공문서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공개하지 않는 자료들도 엄청나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 수집은 연구소나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라고 하겠다. 몇몇 기관에서 매년 자료들을 수집한다고 하나, 예산과 인력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전후 미국에 소장된 일본과 관련된 자료들을 치밀하게 수집해 왔다고 한다. 이제 우리 차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가 나설 것인가. 이명박 정권과 일본 보수정권이 역사적 문제를 해결할지 미지수이며, 앞으로 양자가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도 모른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할까.

 

지난 대선과 총선으로 시작된 보수정권으로의 회귀. 과연,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이다. 현 보수정권은 '역사보다 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권 교체되자마자, 현 정권은 과거청산과 관련된 각종 위원회를 청산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현 정권을 보면서, 2015년까지 인명사전 3권을 포함해 총 17권이 나올 예정인 친일파 청산운동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보수언론과 친일파 후손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묻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성금 모금 운동이 오늘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이끌어 낸 것 처럼 반세기 넘도록 해결되지 못한 역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다시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전갑생 기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을 지냈습니다. 


태그:#친일인명사전,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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