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살고 싶은 시민들, 거리로 나오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

 

시민들이 급기야 ‘살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한-미 쇠고기협상을 규탄하는 문화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표정은 분노와 절박함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청계광장에 모이기 시작한 시민들의 숫자는 주최측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5천명을 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주최측의 예측과 달리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청계광장에 운집했다.

 

이는 2004년 탄핵 반대 문화제 이후 최대규모다. 주최측은 급기야 집회장소를 파이낸스 센터와 프레스센터 앞까지 넓혔다. 촛불을 든 행렬은 동쪽으로는 영풍문고 근처 지점까지, 남쪽으로는 시청으로 향하는 보도 끝까지 이어졌다.

 

집회는 청계광장과 프레스센터, 파이낸스 센터 등 셋으로 나눠 따로 진행됐다. 경찰은 집회 시간에 맞춰 300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했으나, 예상보다 인원이 많아 긴급히 30개 중대 3300여명을 청계광장에 추가 투입했다.

 

 

혹세무민? 천만에, 내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서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10대와 20대 학생부터 30, 40대 직장인,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까지 남녀노소가 모두 참가하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촛불 행렬에 참가한 부부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나온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나와 내 자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이 집회에 참가한 이들의 공통적인 대답이었다.

 

부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문화제에 참석한 김주홍(38)씨는 “국민들에게 직접 피해가 가는 미국산 쇠고기를 무차별 수입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당장 네 살짜리 아들이 먹을 수도 있어서 걱정된다” 고 말했다.

 

충주에서 온 문 아무개(31)씨도 “조카가 유치원을 다니는데 (미국산 쇠고기가) 급식으로 사용될까봐 걱정이 된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인 김주미(가명. 여, 18)양은 “야자(자율학습)를 빼고 집회에 참석했다. 그게(미국산 쇠고기) 수입되면 급식을 먹는 우리는 할 수 없이 다 먹어야 한다. 아파서 죽기 싫다. 대통령께서 국민들을 너무 막 대하시는 것 같다”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또한 시민들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혹세무민’ 발언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제에 참가한 최석용씨는 “나는 당장 먹고 죽어도 괜찮지만 학생들과 군인들이 걱정이다”고 하면서, “국민이 선동 당하고 있다면, 그동안 정부는 왜 협상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냐? 말도 안 된다”며 거부감을 표시했다.

 

21살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대생도 자유발언을 통해 “우리가 빨갱이 좌파입니까?" 하고 반문하며 “이 정부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빨갱이, 좌파 라고 몰아붙이고 있다”며 정부 여당을 비난했다.

 

장비도, 무대도 없지만.. 2만 명이 함께 벌이는 마당놀이

 

시민들은 적극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했다. 반면, 주최측의 진행은 상대적으로 원활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문화제를 연 주최측은 무대가 없어 분수대 위에 올라가 연설을 했다. 여느 집회에서 흔히 볼 법한 일정표도, 보도자료도 없었다. 그 흔한 무대도, 연단도, 대형 스피커도, 공연도 없었다. 무선으로 연결된 마이크는 웅웅 울려대고 신호가 끊겨 말소리를 재대로 듣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의 강전호 공동부대표는 집회 일정과 장비문제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인원이 오늘 열릴 문화제에 참석할 줄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의외의 결과라 미리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 고 답변했다.

 

 

주최측의 미숙함과는 달리 시민들이 보내주는 호응은 문화제 내내 식지 않았다. 시민들이 하나 둘 나서 자유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인천에 사는 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이 “내가 낳을 자식들이 광우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간다고 생각해 봐라. 난 광우병에 걸려 서서히 죽기 싫다”고 발언하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시민들은 자유발언이 끝날 때마다 “너나먹어 미친소”, “조중동은 반성해라”, “미친소를 청와대로” 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화답했다. 마치 사설을 늘어놓으면 끝에 청중들이 후렴구를 붙여주는 마당놀이를 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시민들은 흥은 넘쳤지만 차분했고, 분노는 했지만 폭력적이지 않았다. 한바탕 축제의 마당은 9시 40분 자원봉사자들의 해산 안내를 시작으로 마무리됐다. 

 

"조중동은 물러나라" 사옥들을 향한 야유

 

이번 문화제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었다.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보수신문들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특히 오른편에 동아일보 사옥이 있는 청계광장에서는 동아일보를 향한 야유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하는 야유소리와 함께, “동아일보 쓰레기”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동아일보 사옥에 있던 직원들이 밖을 내다보자 야유소리는 더 커졌다. 곳곳에서 동아일보를 욕하는 소리와 함께 ‘조중동은 반성해라’ 라는 구호가 다시 한번 울렸다.

 

세종로 맞은편에 사옥을 두고 있는 조선일보 역시 시민들의 야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시민들은 동아일보에 대한 야유를 끝낸 후, 조선일보를 향해 ‘조선일보 매국노’를 외쳤다. 자원봉사자들의 집회 해산 안내가 시작되었음에도 시민들은 한동안 두 신문사에 대한 야유를 멈추지 않았다.


태그:#이명박, #쇠고기, #탄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