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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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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 이른 아침이지만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일인용 좌석 옆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고 섰다. 좌석 옆에 놓은 제법 묵직해 뵈는 검은색 배낭에 눈길이 간다. 먼지가 잔뜩 묻어 있고, 낡았다. 배낭 위에는 둥글게 여러 겹으로 만 청록색의 가는 플라스틱 관이 풀어지지 않게 빛바랜 나일론 끈으로 질끈 묶인 채 올려져 있었다.

배낭은 좌석에 앉은 노인의 것이 분명했다. 손질이 잘된 양복을 빼입은 남자가 그걸 들고 탔을 리가 없고, 수수한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임자일 리가 없다.

노인은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모아서 쥔 두 손을 허벅지에 위에 올려놓고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것뿐이었다면 나는 눈길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노인의 투박한 엄지손톱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두껍고 색깔도 불투명하고 표면이 울퉁불퉁했다. 그 손톱에서 나는 힘든 노동의 흔적을 발견했다. 편한 일을 하면서 살았다면 손톱이 그 지경이 되지 않을 테니까.

노인의 백발과 엄지손톱을 번갈아 보다가 문득 이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배낭과 그 위에 얹혀진 물건으로 보아서 일을 하러 가는 길인 것 같다는 짐작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 힘든 노동을 감내하느라 검었던 머리는 하얗게 셌을 것이고, 손은 투박하고 거칠어졌을 것이며, 엄지손톱은 갈라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다가 저렇게 흉물스러운 형태로 변한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자식을 낳아 길러보고서야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는 건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에 만원버스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힘겨운 삶을 살았을 우리시대의 아버지 상을 그 노인에게 보았다고 하면 너무 과장이 심한 것일까?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부모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을 소개한다. 사진작가 최민식, 노인복지전문가 유경, 문필가 호원숙 등 우리 시대의 전문가 10인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사진작가 최민식은 너무도 가난해 어린 나이에 집을 등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이산가족이 되어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채 한평생을 살았다. 팔순이 된 그가 고향에서 부모와 함께 산 세월은 고작 12년. 그런 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깊은 그리움이 되어 남았고, 그 그리움이 그로 하여금 농촌의 가난한 농부들의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노인복지전문가 유경은 나이가 들어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에게 거리감을 느꼈으나 아버지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이북에 가족을 두고 혈혈단신 월남한 아버지가 평탄한 삶을 살았을 리 없지 않은가.

유경은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아버지에게 성큼 더 다가갈 수 있었고,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시인 정희성은 팔순 평생 동안 한량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경제적 무능 때문에 아버지에게 지독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한 마음을 털어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열흘 전에 아버지와 화해를 했으나, 돌아가신 뒤에 아버지가 남긴 통장을 보고 통곡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깊은 회한과 함께 풀어놓는다.

<너무 늦기전에 사랑한다고 말하세요>의 10명의 저자들은 부모님과 함께 한 삶과 애틋한 추억을 돌이켜 기록하면서 더불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각자의 비법(?)도 소개한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방법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이다.

부모님과 함께 목욕을 하거나 같이 수다를 떠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마음을 함께 하는 것을 부모님이 더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어버이날. 부모님께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 기회에 내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추억이 있는지 돌아보면서 효도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늦기전에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 10인의 전문가가 전하는 나이드신 부모님을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최민식.서유헌 외 지음, 브렌즈(2008)


태그:#부모,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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