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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7일 오후 3시 40분]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대한 민심이 갈수록 악화되자, 정부가 한미간 합의와 달리 유사시에는 즉각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7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겠다"면서 "(미국과) 통상마찰이 발생하더라도,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전면개방 진상규명·대책마련 청문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7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7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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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오전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우선적으로 수입을 중지할 것이고,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오전 국회 청문회까지만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여부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 정 장관이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로 좀더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합의한 상태다. 따라서 정 장관의 발언은 한미간 합의 내용을 사실상 파기하는 것이어서, 향후 미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또 이는 정부가 뒤늦게 이번 협상이 졸속으로 됐음을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어서 책임 공방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운천 장관, "광우병 발생하면, 즉각 수입중단"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7일 오후 국회 청문회에 나와, 이강두 한나라당 의원의 답변 과정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정 장관은 "농업의 발전과 국민의 먹을거리에 대한 안심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국민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최근 자신의 집무실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전화 내용을 소개하면서, "국민들이 아무리 광우병이 없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에 대해 부정적이던 그동안 정부의 태도와 사뭇 다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7일 전라북도 전주시 전북도청에서 열린 업무보고를 마친 후 구내식당에서 훈제 오리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 점심식사 메뉴는? 이명박 대통령이 7일 전라북도 전주시 전북도청에서 열린 업무보고를 마친 후 구내식당에서 훈제 오리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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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부의 태도 변화는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유사 발언으로 예상된 부분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전북도청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어떠한 것도 국민생명과 바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우선적으로 수입을 중지할 것이고,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전국적으로 소를 키우는 분들의 걱정이 많은데 낙농업자들을 지원하는 등 국민들의 걱정에 대한 대처도 강력하게 하겠다"며 "음식점과 학교·병원·군대 급식 등 모든 곳에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고, 농림부에 검사의 모든 권한을 일임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모든 수입 쇠고기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수입을 중단하겠다, 일단 수입을 중단시켜놓고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정부는 재협상할 필요도 없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의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시 중단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 네티즌들의 탄핵 서명과 촛불시위 ▲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의 동반 추락 ▲ 박근혜·원희룡·공성진 등 당내 재협상론의 부상 등을 고려해 내놓은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비판 여론에 뒤늦게 조건부 수입중단... 사실상 미국과 협상 파기

하지만 향후 논란의 소지도 분명하다. 이번에 맺은 합의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지난달 22일 농림부가 입안 예고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개정안'에 따르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할 경우 미국 정부는 역학조사를 실시한 뒤 한국정부에 조사 결과를 알리고 협의해야 한다. 이로 인해 OIE가 미국에 부여한 '광우병 통제 국가'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우리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게 되어있다.

쇠고기 협상 타결 직후부터 통상전문가들이 지적하고 농림부 관료들도 인정한 사항이지만, 이는 우리 정부가 아닌 OIE의 판단에 따라 쇠고기 수입 중단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WTO의 SPS(위생검역) 협정 5조 7항에는 회원국이 수입제품의 위해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 해당 회원국이 관련 국제기구 및 타 회원국 등으로부터 입수 가능한 적절한 정보에 근거하여 잠정적으로 위생 검역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어있다.

WTO가 회원국들에게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문제 있는 상품의 수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 셈인데, 한미 쇠고기 협상안은 이보다도 후퇴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검역주권 포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부 수입중단 의사를 밝혔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부 수입중단 의사를 밝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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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이같은 협상안을 무시하고 자체 판단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경우에는 협상안을 위반한 셈이 되기 때문에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불가피하다. 실제 이날 오후 청문회에 참석한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도 "(수입을 중단할 경우) 한미간 합의한 것과 배치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재협상을 거부하고 있는데, 거꾸로 미국과의 재협상 없이 수입중단을 임의로 강행할 경우에도 미국과의 신뢰가 깨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한편,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한국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안전성 문제에 매우 엄격한 입장을 견지·관철시켰던 만큼 현재 합의문 틀 안에서 얼마든지 쇠고기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미 합의된 한미 쇠고기 협상내용을 재협상하거나 합의문을 개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태그:#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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