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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을 수 있는 시간. 대운하가 사람 죽이네.
▲ 걸으면서 생각하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시간. 대운하가 사람 죽이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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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좋다. 동강은 푸르름이 한창이다. 가만히 산바람을 쐬고 있으면 누가 뭐래도 나들이 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다. 하지만 농촌의 일손은 늘 부족하다. 해가 길어졌다지만 꿈쩍하면 긴 하루가 속절없이 가고 만다. 이런 날은 부뚜막에 기대 놓았던 부지깽이라도 주인을 따라 나서야 할 판이다.

원주YMCA 고등학교 학생들 동강 걸으면서 '대운하 반대!"

이런 날 동강을 따라 걷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을 만나러 동강으로 나갔다. 얼마 전까지 찬 바람을 피해 걸었건만 오늘은 강바람이 시원하다. 귤암리 마을 담장 아래엔 모란꽃도 피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언제고 모란이 꽃을 피웠다. 그러고 보니 곧 사월초파일이다.

학생들을 만난 건 어제 늦은 오후였다. 학생들은 정선읍내를 휘돌아 숙소인 군언마을로 가기 위해 동강을 따라 걷고 있는 중이었다. 펄럭이는 깃발엔 '원주YMCA고등학교 국토순례단'이라 적혀 있었다. 걷고 있는 학생들을 잡고 강을 따라 걷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대운하 바로 알기 국토순례단입니다."

오호라, 대운하 때문에 학생들이 길을 떠났구나. 지친 표정을 한 학생들에게 어디에서부터 걸었는지 또 물었다.

"한강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던 길이라 더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내일은 동강을 순례할 것이라는 말만 듣고 다음 날 만나자며 서로의 길을 갔다.

걸어보자. 그럼 대운하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게 된다.
▲ 대운하가 대체 뭐기에? 걸어보자. 그럼 대운하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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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동강변을 걷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가수리, 그럼 점심 시간이다!
▲ 대운하 바로 알기 순례단. 학생들이 동강변을 걷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가수리, 그럼 점심 시간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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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동강을 따라 걷는 학생들은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아름다운 동강길을 따라 걸었다. 베낭엔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주렁주렁 매달고 길을 걸었다. 이틀 째 한강 상류를 걷는 학생들, 벌써 다리와 발이 아파와 동강의 풍광도 개미귀신 집도 보이지 않는다.

비빔밥된 도시락 끝내 먹지 않은 수진이 "집에 가고 싶어요!"

광하리 마을을 출발한 순례단은 귤암리 마을을 지나 30리 길인 가수리까지 갔다. 정오 무렵 가수분교 마당가에 도착한 순례단은 500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을 펼쳤다. 돈가스와 치킨 등이 반찬으로 된 도시락은 걷는 사이에 이리 섞이고 저리 섞여 비빔밥이 되어 있었다.

"이런 걸 어떻게 먹어…."

고등학교 1학년인 수진이는 비빔밥이 된 도시락을 끝내 먹지 않았다. 오늘 일정이 운치리마을까지 걸어 간 후 백운산의 칠목령을 넘어 미탄면 진탄나루까지인데, 내심 걱정이 되었다.

"먹어두지 않으면 큰 후회 할 걸?"
"괜찮아요, 이대로 걷다 쓰러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뭐."

수진이가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말했다. 걷는 일이 힘겨운지 동료들이 식사를 하는 중에도 얼굴을 묻은 채 울먹이기만 했다.

"아, 엄마가 보고 싶다."

한 남학생이 도시락을 먹다 말고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며 훌쩍, 했다.

"집 떠난 지 며칠 됐다고 벌써 엄마가 보고 싶어?"
"제가 마마보이거든요."

배낭 끝에 달려가고 있는 도시락.
▲ 도시락. 배낭 끝에 달려가고 있는 도시락.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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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섞이고 저리 섞인 도시락. 수진이는 결국 이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 도시락. 이러 섞이고 저리 섞인 도시락. 수진이는 결국 이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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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걷지 않으면 졸업 시키지 않습니다"

학생의 말에 옆에서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동강을 따라 걷는 아이들은 모두 59명. 원주YMCA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처음엔 YMCA 원주 지역 연합 동아리 학생들인 줄 알았는데, 학교 이름이 YMCA 고등학교란다. 그 사연이 궁금해 학생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김영하 교장 선생님께 물었다.

"원주YMCA 고등학교는 개교한 지 4년 된 학교입니다. 원주 YMCA에서 운영을 맡고 있지요."
"정규과정 학교인가요?"
"그렇긴 하지만 일종의 대안학교입니다. 다른 학교처럼 대학가는 게 최고라며 닦달하지는 않습니다. 남한강 따라 순례를 하는 것도 수업의 한 형태이거든요. 대운하가 불러 올 문제를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으니 아이들과 이 길을 떠난 겁니다."

전교생이 59명인 원주YMCA 고등학교. 작년엔 '걸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걸어서 바다까지 가는 행사를 진행했단다. 원주에서 강릉 바다까지 걸었던 학생들. 올해는 대운하 때문에 프로그램이 강을 따라 걷는 '걸리버'가 되었다. 5월 6일부터 10일까지 한강 발원지에서 출발해 삼도(강원도, 충청도, 경기도)와 섬강이 만나는 지점인 원주시 부론면 흥원창까지 걷는단다.

꿀맛이다. 땀을 흘려 본 자만이 맛 볼 수 있는 기막힌 맛!
▲ 아, 배고파. 꿀맛이다. 땀을 흘려 본 자만이 맛 볼 수 있는 기막힌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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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 먹는 것도 힘드네...
▲ 먹어야 걷는다. 아고, 먹는 것도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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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길을 떠나는 학생들이라 고학년이 될수록 걷는 일은 자신있다 싶지만 아무래도 1학년 학생들은 걷기 힘들어 보였다. 도시락을 비운 학생들은 바늘로 발에 잡힌 물집을 터트리느라 바쁘다. 신발로 인해 발목이 까진 수진이는 피멍 든 발을 내놓고 아픈 부위를 자꾸만 내려다 보았다.

"수진이가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 괜찮을까요?"  
걱정이 되어 김영하 교장선생님께 말했다.

"팀이 있는데 그 팀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걷다 쓰러지면 집으로 가겠다는데요?"
"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 학교는 걷기 수업을 이행하지 못하면 졸업을 시키지 않아요. 오늘 빠지면 어느 순례단을 따라 가더라도 하루를 걸었다는 증서를 학교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졸업이 됩니다."

영어 공부 못했다고 졸업 시키지 않는 학교는 있어도 걷기 수업에 빠졌다고 졸업시키지 않는 학교는 지구촌에서 이 학교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걸리버' 프로그램을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학생들.

신발이 발을 뜯어 먹었다. 작은 상처지만 걷기엔 여간 불편하지 않다.
▲ 상처. 신발이 발을 뜯어 먹었다. 작은 상처지만 걷기엔 여간 불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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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발가락도 상처 투성이. 밴드가 유일한 치료약.
▲ 치료중. 선생님 발가락도 상처 투성이. 밴드가 유일한 치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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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란 공부보다 '참 삶'이 뭔가 알려고 하는 곳

이번 걷기 프로그램인 '걸리버'가 끝나면 고흥의 소록도로 가서 일주일간 봉사 활동도 한단다. 참된 삶이 뭔지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학교라는 생각에 교실을 훌쩍 떠날 수 있는 이 학교 학생들이 부러웠다.

학생들은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1시부터 동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을 길을 걸어 본 이들은 알겠다. 다리 쉼을 하고 나서 처음 내딛는 발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를. 작년 여름 동강 살리기 행사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동강 줄기를 일주일 간이나 걸었던 기억이 학생들로 인해 떠올랐다.

학생들의 힘겨운 걸음이 대운하 건설을 막을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학생들과 동강변에서 헤어졌다. 학생들은 뙤약볕을 받으며 동강변을 걸어 동강을 오롯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백운산을 오를 것이다. 어른도 넘기 힘든 길을 여린 학생들이 무탈하게 넘을 수 있을지 내심 염려도 된다.

광우병으로 촛불 드는 학생들, 대운하로 강을 따라 걷는 학생들, 대체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나가게 하고 강변을 걷게 하는 것일까.

피곤한 여학생. 쉬는 자세가 더 힘들어 보인다.
▲ 아, 힘들다. 피곤한 여학생. 쉬는 자세가 더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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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운하반대, #원주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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