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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지난 9일(금요일) 열린 촛불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에 사는 저와 충남 부여 병원에서 근무하는 아내가 대전에서 만나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딸을 만나 청계광장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것입니다.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과 학생,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손에 쥐어진 촛불을 보고 놀랐고, 행사 도중 촛불 파도타기를 할 정도로 많이 모인 인파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서울에 간 목적은 집안 조카의 결혼식 참석이었지만, 우리 가족의 촛불이 다른 2만여 개의 촛불과 함께 청계광장 하늘을 밝혔다고 생각하니 자부심도 들었습니다.

 

오후 5시 조금 넘어 서울에 도착, 딸에게 전화해서 "촛불문화제로 길이 복잡할 것 같으니 청량리에서 만나자"라고 할 때만 해도 행사 참석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조금 늦겠다며 청계광장에서 만나기를 제의했고,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사는 딸이라서 놀라고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참석했던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청계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종각역에서 내려 청계천에 6시쯤 도착했는데 날이 훤하더군요. 그래도 촛불문화제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슈퍼주니어 그룹이 개그맨 서경석씨에게 희망달리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터지는 함성이 열기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청계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촛불문화제는 저녁 7시쯤 개그맨이자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노정렬씨 사회로 비보이 공연과 퍼포먼스 등의 공연으로 시작됐습니다. 자유발언을 하고 싶은 분은 무대 뒤로 와달라는 주최 측의 안내가 있자 많은 시민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걸 보니 저도 나가서 한마디 하고 싶더라고요. 

 

자유발언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여중생, 대학생,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는데요. 며칠 전 행사에도 참석했었다는 한 여고생은 얼굴을 가리고 무대에 오르더니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해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당찬 목소리의 여학생은 "청와대는 놀이문화가 없어서 학생들이 시위에 참석한다고 하는데, 노래방이 없습니까? PC방이 없습니까?"라며 청와대를 꾸짖더니 "좌파세력이란 말에 주눅 들지 말고 우리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자!"라며 무대 앞 카메라 기자들에게 "이왕 찍으려면 예쁘게 찍어주세요"라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회장도 자유발언에 나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없는 것도 있게 한다"라며 학부모들의 참교육 정신을 강조하고 "미친 교육, 미친 소를 꼭 막아내겠다"라고 이명박 대통령의 조공협상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 강화도에 있는 <오마이스쿨> 탐방 기사를 썼던 건축사 김진애씨도 제 옆에서 시민과 호흡을 함께하며 사직을 찍고 있더라고요. "김 선생님! <오마이스쿨> 탐방기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시민기자 기초 강좌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셨던데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못하고 말았습니다. 

 

예쁘고 당찬 '예진이'와의 대화

 

예쁜 꼬마가 엄마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다가가 "착하고 예쁘게 생겼네요. <오마이뉴스>에 올리고 싶은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되지요?"라고 물었더니 엄마는 웃는데 꼬마는 고개를 젓더라고요.

 

흰머리에 인상도 별로여서 시민기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해서 생각 끝에 뒤에서 사진을 찍어 "예쁘게 나왔어요"라며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꼬마는 만족스러웠는지 웃었고 엄마도 좋아하며 딸이 그린 그림이라면서 살짝 내밀더군요. 상상력과 응용력이 돋보이는 그림에서 아이의 희망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학교 몇 학년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참 잘 그리네요. 이름도 궁금하고 나이도 궁금한데 지금 몇 살이지요?"

"이름은 '차예진'이고요 나이는 9살이에요. 신길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요."

 

엄마는 아이가 7살에 입학했다며 어디에 사는 것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빠도 함께 오자고 하지 그랬냐고 했더니 출장을 가셔서 못 오셨다며 다음 행사에는 꼭 아빠와 함께 올 것이라고 말하는 '예진이'가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자리로 오는데, 예진이가 "미국 쇠고기도 걱정 없으니까 먹으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미워요"라고 하더라고요. 흔히 듣는 불만으로 받아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바람이 차갑더라고요. 해서 광장 옆의 제과점에 들어가 몸도 녹이고 빵과 음료수를 마시며 그동안 못했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향했는데요. 장소만 천변으로 옮겼을 뿐 촛불문화제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명박 정부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개사한 노래를 진행자가 선창하면 참가자들이 따라 불렀는데요. 참가자들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청계광장의 밤하늘로 울려 퍼졌는데 청와대에서 쉬고 있을 이명박 대통령도 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친 소는 너나 먹어, 진정한 배후세력은 이명박, 이명박 정부도 벌벌 떨고 있다, 미친 교육 때려치워···미, 미, 미친 소는 너나 먹어, 미친 교육 떤다 떨어····친구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미친 소는 너나 먹어…."

 

노래를 따라 부르려니까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희생된 민주열사들이 시나브로 떠오르면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출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옛날 같았으면 우리 가족도 참석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정부는 시위를 문화제로 승화시키는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참가 자제를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가정통신문을 보냈다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네요.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유는 국민의 기본주권을 무시하는 관료주의 탓임에도, 괴담을 들먹이며 배후세력이 문제라는 한나라당과 미국산 쇠고기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 대통령의 국가 경영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도를 보면, 국민의 80% 가까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나만 따라오라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요, 공직사회가 상명하달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권력의 칼자루가 옛 것으로 바뀌는 것 같아 여간 우려되는 게 아닙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청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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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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