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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계속되고 있고, 그 중심엔 10대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최재천 통합민주당 의원이 그러한 10대들과 공유하기 위해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에 관한 네 편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습니다. 다음은 그 첫 번째 글입니다. <편집자주>

쇠고기 수입 협상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별개일까요, 한 몸일까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쇠고기와 자유무역협정 비준은 별개"라고 합니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실장의 칼럼으로 대신합니다. "'정상회담과 쇠고기 수입 개방은 직접 관련 없다'거나 '쇠고기와 FTA는 관련 없으므로 협정을 비준해 달라'고 해봤자 순도 100%짜리 진실도 아니고, 먹히지도 않는다." (<광우병보다 끔찍한 재앙>, 5월 17일자)

 

지금까지 한미FTA에 대한 일반적 여론은 찬성 쪽이 약간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역전되고 말았죠. 지난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반대의견이 처음으로 55.4%를 기록했고, 찬성은 28.3%에 그쳤습니다. 시민들이 쇠고기 협상에 분노하면서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한미FTA 협상 결과에 대해서도 분노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흐름으로 보입니다.

 

참여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시작한 것은 사실이죠.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었습니다. 관련 연구도 빈약했고, 우선순위도 본래는 미국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선진통상국가론'이라는 이론적 근거도 졸속이었고, 경제적 효과 예측도 엉망이어서 지금까지도 논란 중일 정도입니다. 단적으로 한미FTA 협상 경비와 홍보 비용도 국회에서 승인한 정부의 본래 예산이 아닌, 예비비를 끌어다 썼을 정도이니까요.

 

협상 과정도 졸속이긴 매한가지였습니다. 한미FTA는 겨우 10개월 만에 모든 협상을 끝낸 '초고속 통상 협정'입니다. (정부는 1년 2개월이라고 하지만, 미국 의회의 승인이 날 때까지 4개월 간 협상은 없었습니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한․칠레FTA도 협상 타결에 3년 4개월이 걸렸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본래 통상 협정에 대한 권한은 미국법상으로는 미 의회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정부의 권한이고 비준만을 국회가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연방제 국가와 단일국가의 차이겠지요. 그런데 미 의회가 한시적으로 이 권한을 정부에 위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법을 TPA(무역촉진권한)라고 부릅니다.

 

TPA가 허가한 협상 기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2007년 4월 2일까지 협상을 끝내야만 했습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협상 권한이 미 의회로 넘어가게 되거든요. 우리는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을 철저하게 선호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시간표가 아닌 미국의 시간표에 철저히 맞춰야만 했죠. 결국 내용도 시간도 미국편이었던 겁니다.

 

10개월 졸속 한미FTA 협상의 핵심 문제는 사전 퍼주기

 

무엇보다 문제는 '선결문제' 혹은 '선결과제'란 이름의 '사전 퍼주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미국에 FTA 협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네 가지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요구했고요. 그 네 가지는 광우병 이후 수입이 금지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적으로 재개할 것, 한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쿼터 규정을 축소할 것, 자동차 배기 가스 관련 세율을 전면 재조정할 것, 의약품 가격 규제 정책을 완화할 것 등이었습니다. 미국이 가장 강점을 가진 분야에 대해 전면적인 선 시장개방을 요구했던 것이죠.

 

물론 정부는 처음엔 "선결과제란 없다"고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문서로서 증명되자, 물러서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정부 공문서에도 4대 선결조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바 있다. 선결조건으로 해석한다면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용하겠다"(노무현 전 대통령, 2006. 7. 21 대외경제장관회의)고 밝히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대통령까지 시인했음에도 협상의 책임자였던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나 후임 김종훈 현 본부장은 거짓으로 일관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짓은 지금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도 승계됩니다.

 

"쇠고기 협상은 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 측과 합의해 개방을 약속한 사안... 한미 FTA 협상과는 원칙적으로 관계가 없는 일"(이명박 대통령, 2008. 4. 24 국정과제보고대회)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이죠.

 

본 협상은 이미 작년 6월 체결됐습니다. 양국 국회의 비준만 남아있는 셈입니다. 그래도 우리 정부는 의회에 제출이라도 했는데, 미국은 제출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호주의' 경향이 강하게 일고 있고, 부시 대통령은 사실상 레임덕 상태이고, 미국 의회도 공화당 지배에서 민주당 지배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국 의회와 정부는 한미FTA의 '선결문제'이자 핵심인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데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이명박 정부는 '신뢰의 위기'에 처한 한미동맹을 복원한다는 명목으로, '전략동맹'을 화두로 들고 방미를 서둘렀죠. 알고 보니 외교정책에 있어서 졸속과 '밀행주의'와 국내에서 보여준 일방주의는 참여정부만의 것이 아니었더군요. 그 결과가 이번에 국내에서 쇠고기 파동으로 터져버린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전략동맹을 얘기하고 신뢰동맹을 얘기해도 미국은 이명박 정부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16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구띠에레즈 미국 상무장관은 "재협상은 없다"고 분명히 선언해버렸죠. 이것이 통상이고, 이것이 국익이며, 이것이 곧 쇠고기 문제이자, 한미FTA입니다.

 

한미FTA 선결 조건이 돼 버린 미국 쇠고기 문제

 

이렇듯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누가 뭐래도 한미FTA의 선결조건이자, 최소한 선결조건화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선결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여지가 없어져버린 것이죠. 그래서 "한미FTA와 쇠고기협상은 하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쇠고기 협상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한, 한미FTA의 앞날은 어렵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죠.

 

물론 이것은 한반도의 시각입니다. 미국 내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자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냐고 불편해할 것입니다. 한미FTA를 위해서 미국산 쇠고기를 무조건 풀자는 주장은 '맹신동맹'의 전형입니다. 잘 해보자고 해놓고 딴소리한다는 태도는 '불신동맹'의 전형입니다. '신뢰동맹'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호혜를 바탕으로 동맹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나타난 한미동맹 관계의 현주소는 여러분께 어떻게 비쳐집니까?

 

마지막으로 이런 비유를 한 번 해볼까요?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영화와 자동차와 비타민제를 선물하고, 맛있는 쇠고기를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겨우 만나주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이런 상대를 알고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짝사랑 상대방은 "네가 먼저 부모님 허락을 받아와라, 그런데 쇠고기를 사줘야 나도 부모님을 압박해서 혼인 승낙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짝사랑에 애가 탄 젊은이는 내가 상대방과 결혼하면 엄청나게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며 부모님을 채근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미FTA 국회비준을 둘러싼 마지막 모양새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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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2편에서는 한미FTA 속에 담긴 대한민국 주권 침해의 여러 모습과 헌법 질서마저 침해하는 한미FTA의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태그:#한미FTA, #쇠고기협상,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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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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