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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형 도매 시장 근처 구두 수선집의 안내문
 어느 대형 도매 시장 근처 구두 수선집의 안내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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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안내 받으면 제발 인사하고 갑시다'

어제(20일) 오후, 친구를 만날 일이 있어 약속 장소로 바삐 가던 중이었다. 대형 도매 시장 근처를 지나는데 어느 구두수선 집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몇 걸음 더 가다가 되돌아 가 구두 수선집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맞아요
 맞아요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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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어지간히 겪었던 불쾌한 일들이 몇 걸음 걷는 그 짧은 시간에 제법 많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운동화를 신고 불쑥 들어선 필자가 그리 반가운 손님일 수는 없을 텐데, 아주머니는 싫다는 내색 한 번 없이 다짜고짜 묻는 내게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셨다.

아니, 자주 웃으시며 말도 잘하시는, 서글서글하고 참 편안한 인상의 아주머니.

- 밖에 써 붙인 글 보다가 물어볼 것이 좀 있어서요. 저도 십몇 년 전에 노점을 하면서 참 어지간히 겪었던 일이거든요. 길 알려주면 길 물어볼 때 그 절박한 마음과는 정반대로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죠? 그리고 별별 사람들 다 있지요?(웃음)
"아, 그 글? 아, 그럼요. 그런 사람 참 많지. 고맙다는 인사는 고사하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막 화내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손님하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막 재촉하고 화내는 사람들도 많고요. 길 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취급하며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다 있지요. 오죽하면 써 붙였을까?(웃음)"

-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하루에 대략 몇 명 정도 되는데요?
"글쎄 일부러 안 세어 봐서 잘 모르겠는데… 음, 몇 명이나 될까?"

구두 수선집에서 느닷없이 인터뷰를 하다가 바라 본 밖
 구두 수선집에서 느닷없이 인터뷰를 하다가 바라 본 밖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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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시장 근처 이 구두수선 집은 아저씨, 아주머니 두 분이 하고 계셨다. 아주머니께서 선뜻 대답을 못하자 옆에서 구두 바닥을 덧대고 있던 아저씨가 "하루에 백 명도 훨씬 넘지"라며 말을 거들었고, 아주머니는 구두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 그래도 100명 중 절반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죠?
"하하. 그럼 저런 글을 써 붙일 필요도 없게요. 열 명이나 되나? 10%도 안 돼. 아는 길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지. 나도 어디 가서 모르면 물어보는데. 하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한마디 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러게 오죽하면 저런 글을 써 붙였겠어. 예의 없는 어른들을 아이들이 당연히 따라 배우니 말이야."

나는 십수 년 전에 화재로 인해 살림살이는 물론 창고에 쌓여 있던 물건들까지 함께 타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았던 적이 있다. 그때 우리 부부는 호구지책으로 통일로변에 어느 공원 부근에서 노점을 했다. 당시 노점을 하면서 구두 수선집 부부처럼 참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때 막연하게 북쪽을 가리키며 "쭈~욱 가면 어디죠?"라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인 셈. 이건 숫제 턱과 질문이 자동인 사람도 많았다. 턱을 약간 올리며 턱! "어디가 나와요?"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북한이요!"란 대답에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쉽게 인정, 웃고 다시 고쳐 묻는 사람은 양반이다. 도리어 대뜸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라며 신경질을 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대책 없이 저리로 쭈욱 가면 결국 북한이 나오는 곳에서 장사를 했었다. 지금처럼 관광이 가능하리란 생각을 못하던 때이니 어찌 보면 대책 없는 질문에 그 답이랄 수 있다.

"손님에게 물건 설명을 한다거나 가격 흥정을 하는데 자꾸 끼어들어 제 갈 길만 알려달라고 채근하는 사람, 잘 모르는 곳이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헤맬까 봐 모르겠다고 했더니 불친절하다는 사람,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그것도 모르냐며 화내는 사람, 언제 보았다고 반말하는 사람, 실컷 알려주었더니 잘못 알려주었다고 화내는 사람(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 왜 물어보았지?), 알려준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는 사람, 작업을 하는데 불러서 손님인 척 가장하여 길을 물어보는 사람, 저만큼 차 세워 두고 불러서 길을 물어보는 사람……."

아주머니 말처럼 몰염치하고 적반하장인 경우도 많았다. 정말 별별 사람들 다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길 알려주었다고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않고 도망가는 사람들은 차라리 양반인가 싶을 만큼 말이다.

- 인사하는 사람들 나이는 주로 어때요? 나이 든 사람들은 대부분 인사를 잘 하죠?
"꼭 그런 것도 아냐! 전에는 나이 든 사람들은 대부분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나이 든 사람들 중에서도 고맙다는 인사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옛날(아마 십수 년 전?) 할머니들은 꼭 고맙다는 인사를 했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거의 없어요."

세상 참 많이 변했다거나. 이건 예의가 아닌데 라거나. 아주머니의 얼굴에 문득 '옛날'이 스쳤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구두 닦으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두분은 열심히 일하는 중, 나는 열심히 인터뷰 하는 중
 두분은 열심히 일하는 중, 나는 열심히 인터뷰 하는 중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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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사이 반짝반짝 변신한 신발들
 잠깐사이 반짝반짝 변신한 신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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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들은 물론 지방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이 도매 시장 근처에서 아저씨 아주머니는 30년 가까이 구두를 닦고 수선을 하고 있단다. 올해 63세이신 아주머니가 38세부터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니 횟수로 26년째, 남편의 일손을 거들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일터의 동반자가 되었단다.

구두 굽갈이와 밑바닥 덧붙이기 등 험한 일은 아저씨 몫, 반짝반짝 윤기가 나도록 닦는 것은 아주머니 몫이다. 잠시 이야기 나누는 동안에도 구두 몇 켤레가 아저씨 아주머니 손을 바삐 거쳐 갔다. 묵묵히 일하시면서 어쩌다 한마디씩 거드는 아저씨와 구두를 닦으면서 웃음기가 떠나지 않는 아주머니와 십여 분가량의 이야기.

어떻게 구두를 닦기 시작하셨는가? 자제분은 몇? 어떻게 구두 닦을 생각을? 등 이런저런 것을 묻는 내게 아주머니는 웃으시며 대뜸 물으신다. "그런데 기자세요?"라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옛날 생각이 나서, 기껏 목이 아프도록 길을 알려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화까지 내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제발 좀 적어졌으면 하는 나의 바람을 담아 인터넷에 글을 올려 보려고요." 이런 말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글을 올릴 거라고, 글을 볼 수 있는 명함까지 건넸다.

"못하는 것은 당연히 혼나야지!"
(<오마이뉴스>란 말을 듣고 묵묵히 일하시던 아저씨께서 하신 말씀이 반가워 몇 마디 더 나눈 대화를 옮겨봤다.)

"아, 그 유명한 신문?"
"당신은 어떻게 아시우? 언제 들어가 봤소?"(아주머니께서 눈을 힐끗~)

"아니 난 못들어 가 봤어. 그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지."

- 어르신 연세에 있는 분들은 많이 모르던데, 안다고 해도 너무 과격(진보)하다느니 정부 하는 일에 반대를 많이 한다느니 식의 말로 별로 좋지 않게 바라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던데?(웃음)
"난 그래도 그런 색깔이 좋아. 나이든 사람들이라고 정부 하는 일에 무조건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 잘한 것은 잘한 거고 못하는 것은 당연히 혼나야지, 안 그래?"

- 요즘 <오마이뉴스>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적극 반대하거든요. 한반도 대운하도 마찬가지고?
"당연히 반대해야지. 그런 것은 (오마이뉴스가) 참 잘하는 일이지." (덧붙여, 옮기기에는 뭣한 말은 생략하면서….)
<오마이뉴스>라는 이름에 옆에서 묵묵히 일을 하시던 아저씨께서 반색을 하신다.(옆 상자 내용 참조)

예전에 '길 물어보지 마세요', '길 물어보아도 안 가르쳐 줌'이란 글도 본적이 있다.

그럼에도 물어볼 사람이 없어 물어보았더니 대꾸 한마디 전혀 없던 동대문 시장 근처 어떤 아저씨, 아니 노골적으로 길을 안 가르쳐 준다던 사람이다. 그 순간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결국 난 이해하는 쪽이었다. 나 역시 지난 날 너무 적나라하게 겪은 일이므로.

자동차 매연 속에서 하루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손님도 아닌 나와 선뜻 이야기를 하시던 아저씨 아주머니, 두 분이 그런 글을 써 붙인 이유는 길을 알려주어 고맙다는 10% 인사마저 사라지는 예의 없는 사회, 예의 없는 어른들을 그대로 따라 할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구두를 잘 닦지 못해 구두를 잘 닦는 선생님한테 구두 닦는 법을 배우기도 했었지.(웃음) … (이런 저런 이야기 더) … 그럼. 애들은 다 컸지. 이제 먹고 살만큼은 충분히 돼. 그래도 일하는 것이 좋잖아. 한 가지 걱정이라면 딸은 시집을 갔는데 아들이 장가 갈 생각을 않고 있다는 거야. 올해 34살이거든…. 그런 큰 신문에 실릴 만큼 어디 대단한가? 우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더 많이 실려야지."


태그:#예의, #길 안내, #고맙습니다, #구두수선, #예의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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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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