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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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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촛불을 든 한국인들에게 굴복의 백기를 들었습니다.

미국 농무부는 20일 도살장에서 병이 들어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일명 '다우너(downer)' 또는 '앉은뱅이 소'의 도축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에드 샤퍼 농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앉은뱅이 소라도 2차 검역을 통과하면 도축을 허용해온 예외규정을 철폐해 앉은뱅이 소에 대한 도축 자체를 전면금지하는 다우너 규칙 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앉은뱅이 소의 고기가 식용으로 판매돼 식품안전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앉은뱅이 소의 도축과 관련해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비인도적인 도축 시비가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누가 보기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반발이 거센 한국 국민을 염두에 둔 조처입니다.

인터넷-휴대폰 문자-촛불로 연결된 '인간안보 네트워크'

쇠고기 가공처리를 하는 웨스틀랜드 미트컴퍼니의 홀마크 미트패킹 도살장에서 노동자들이 도살소를 몰아넣으면서 소를 발로 차거나 포크리프트 블레이드로 때려 소들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의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치노 홀마크미트 패킹도살장 주자장에서 순찰하는 민간경비원.
 쇠고기 가공처리를 하는 웨스틀랜드 미트컴퍼니의 홀마크 미트패킹 도살장에서 노동자들이 도살소를 몰아넣으면서 소를 발로 차거나 포크리프트 블레이드로 때려 소들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의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치노 홀마크미트 패킹도살장 주자장에서 순찰하는 민간경비원.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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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농무부 성명이 나오기 몇 시간 전에 김효석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는 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대한 재협상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민주당이 '쇠고기 재협상'을 호소하기 위해 직접 미국과의 접촉에 나서고, 필요하면 미 의회 청문회에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실제로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의 기준을 지켜서 수입하라"며 "우리 국민의 요구가 높아져 미국의 광우병 예방 조치가 강화되면 결국 미국 국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마치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미국 농무부가 '미국 국민에게도 도움이 될 일'을 한 것입니다.

샤퍼 장관은 작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3400만 마리가 도축됐는데, 이 가운데 예외를 인정받아 도축이 허용된 앉은뱅이 소는 1000마리도 안 된다면서 그 비율은 0.003%에도 미치지 못하고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미국인들은 0.003%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MBC <PD수첩> 등이 방영한, 앉은뱅이 소를 도축하는 충격적인 동영상은 미국의 한 동물보호단체가 찍은 것입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라는 동물보호단체는 캘리포니아주의 웨스트랜드 훌 마크 도축장에 위장 잠입해 물대포와 전기충격기로 다우너를 필사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충격적인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자국의 동물보호단체와 소비자보호단체가 쇠고기의 안전성을 문제 삼을 때만 해도 꿈쩍 않던 미국 정부가 한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계기로 다우너의 도축을 전면 금지키로 한 것입니다. 최초 문제 제기는 미국 동물보호단체가 했지만, 콧대 높은 미국 정부를 굴복시킨 것은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 그리고 촛불로 연결된 거대한 '인간 안보 네트워크'를 형성한 한국인의 힘입니다.

[얼리 어답터] '빨리빨리' 기질과 IT 선진기술이 결합

지난달 29일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한 장면.
 지난달 29일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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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인들의 소비자 고발 정신은 식품안전 분야보다는 주로 IT 분야에서 진가를 발휘해 왔습니다.

특히 한국인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의 맹활약은 IT·전자 분야에서 이미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기질과 한국의 IT 선진기술이 결합한 자연스런 결과로 보입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널리 쓰인 신조어인 '얼리 어답터'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는 미국 격언에서 빌려온 용어입니다. 이처럼 원래는 남들보다 빨리 신제품을 사서 써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군(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의미가 확대되어 제품이 출시될 때 가장 먼저 구입해 평가를 내린 뒤 주위에 적극적으로 제품 정보를 알려주는 성향을 가진 소비자군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정보의 유통으로 축적된 전문가 뺨치는 실력으로 제품의 결함을 지적하고 A/S나 환불을 요구합니다.

소니·캐논·니콘 같은 일본의 세계적인 디지털 카메라·전자 제품 기업들은 신제품을 출시할 때 먼저 한국의 얼리 어답터들에게 사용하도록 한 뒤에 세계 시장에 내놓는 프로슈머(prosumer)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만큼 민감하게 반응해 왔습니다. 그에 견주면 이번 쇠고기 파동에서 나온 미국 정부의 굴복은 늦어도 한참 늦은 '뒷북'입니다.

물론 미국 정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 뒤늦게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고 합니다. 국민과의 소통의 부재를 자아비판한 뒤에 나온 '뒷북'입니다.

[얼리 덕] 빨리빨리 레임덕... '이명박 퇴임시계'까지

요즘 인터넷 공간에 등장한 '이명박 퇴임시계'. 블로그에선 이명박 대통령 퇴임까지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는 '이명박 퇴임시계' 플래시 동영상이 확산되고 있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 등장한 '이명박 퇴임시계'. 블로그에선 이명박 대통령 퇴임까지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는 '이명박 퇴임시계' 플래시 동영상이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언론과 인터넷 공간에서는 '얼리 덕(early duck)'과 '이명박 퇴임시계'가 등장했습니다.

'early duck'은 이른 아침부터 일하는 '얼리 버드(early bird)'와 권력 누수를 뜻하는 '(lame duck)'에서 따온 합성어입니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의 역대 최초로 빠른 지지율 하락과 조기 권력누수 현상에 비추어 촌철살인의 비유입니다.

블로그에선 이명박 대통령 퇴임까지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는 '이명박 퇴임시계' 플래시 동영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시계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구성한 날로부터 5년 뒤인 2012년 12월 26일까지 남은 시간을 음울한 음악과 함께 천분의 일초 단위까지 보여줍니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3만여 개나 팔렸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퇴임 시간을 보여주는 실물 시계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시 퇴임시계'에는 '우리나라의 악몽이 머지않아 끝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답니다.

몇 달 전에 김효석 대표는 기자에게 "2MB라는 용어를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네티즌이 '2MB'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기 전입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영문이니셜(2MB)을 컴퓨터 기억용량(mega bite)에 빗대어 합성한 것입니다. 국민 의식은 '기가바이트'를 달리는데 대통령은 '메가바이트' 수준이라는 조롱이 담긴 신조어입니다.

물론 김 대표가 그런 뜻을 기자에게 알려주려고 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1당의 원내대표로서 "저변에 민심 이반의 조짐이 보이는데 청와대만 모르는 것 같다"면서 '대통령이 국민과 동떨어진 채 저렇게 꽉 막혀 있으니 나라가 걱정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정치인뿐이 아닙니다. 휴일 산행길에 들른 산사에서도 대통령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얼레리꼴레리] '2MB'와 'MB스럽다'

삼각산 자락에 있는 서울 금선사의 법안 스님은 10대들이 운집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10대가 이명박 대통령을 한방 먹인 것"이라고 색다른 풀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만에 하나 우리나라에 광우병 환자가 발병하면 그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가 100% 안전하다'고 단언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스님은 또 엄마 손을 잡고 절에 온 한 초등학생이 "엄마는 왜 MB스럽게 그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답니다. 'MB스럽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 여학생은 천연덕스럽게 "자기는 안 하면서 남한테 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더랍니다.

10대 아이들은 지금 2MB 대통령을 '얼레리꼴레리'라고 놀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남을 놀릴 때 곧잘 쓰는 '얼레리꼴레리'는 원래 '알라리 깔라리'에서 온 말인데, '알라리'는 '아이 나리'라는 뜻으로 어린나이에 벼슬을 한다는 말이며, 뒤의 '깔라리'는 별 뜻없이 붙여진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지금, 준비 안 된 사람이 대통령을 하게 되니까 국민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놀려 대는 형국입니다. 50%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받은 대통령이 어쩌다가 10대와 초등학생들로부터도 구박받는 '미운오리'가 되었는지는 여기서 굳이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김 대표가 우려하는 대로 국민들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고 나오는 심각한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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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얼리 어답터, #얼리 덕, #얼레리꼴레리, #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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