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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진주 논개제 연계 팸 투어' 일행들과 진주 죽곡 마을을 찾았다. 죽곡 마을은 20여 농가가 삼심기부터 삼베짜기 등 공동작업으로 우리의 삼베를 수공으로 생산하는 마을이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 죽곡 마을의 산 안개도 하얀 삼을 삶아내는 김처럼 고운 운무를 짰다.
 
'삼을 가르다'는 '탯줄을 가르다'와 동의어 
 
인간문화재처럼 생각되는, 베틀에 앉아 잔잔하게 베틀 노래를 부르시는 이 마을 강연순 할머니와 죽곡 마을 할머니들이 모두 삼베 생산 작업실에 모여서 길쌈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 전 잊혀진 할머니와 어머니의 힘든 시집살이가 덩달아 떠올랐다. 
 
할머니들의 물레 잣는 모습, 매듭이 뭉친 삼베 실을 골라 엉성한 이빨로 끊어내는 모습 등이 모두 점점 희귀해져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 생활 문화들 같다. 요란하게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약간은 아쉬운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죽곡 마을은 진주시와 한국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마을 어른들이 공동으로 삼베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영농 후계자가 없어 모처럼 지원 받은 사업들이 흐지부지 될까 하는 염려가 많다. 
 
삼베 짜는 마을 회관 안에는 컴퓨터가 몇 대 설치 되어, 그동안 마을 어른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하는 등 많은 지원을 해 왔다. 
 
그러나 이 마을 공동 삼베 생산 산업을 홍보하고, 이를 관리하며 판매 보급 등을 맡아 인터넷 활로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젊은이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하날에다 베틀놓고
구름 잡아 잉어 걸고
짤각짤각 짜느라니
편지 왔네 편지왔네
한손으로 받아 들고
두손으로 펼쳐보니
시앗 죽은 편질러라
옳다 고년 잘 죽었다
고기반찬 비리드니
소금 반찬 고습고나
무슨 병에 죽었드냐
분홍치마 밝히더니
상사병에 죽었다네
- 청양지방, 베틀노래

 

길쌈 노래는 우리 탯줄의 노래
 
신라 유리왕 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길쌈 대회를 열어왔다고 한다. 음력 7월 16일부터 매일 저녁 뜰에 모여 밤이 깊도록 베를 짰는데, 추석 전날까지 짠 베의 척도로 승부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진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을 대접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의 길쌈 하는 한 할머니의 말씀을 빌리면, 그리 멀지 않는 옛날이라면서, 신부감을 고를 때 그 얼굴을 보지 않고, 찰깍 찰깍 박자 맞추어 흘러나오는 베틀 소리만 듣고도, 얼마나 길쌈을 잘 하는가 가늠할 수 있어, 베틀 소리가 그 집의 소중한 며느리 감을 선택하는 잣대가 되었다고 말씀 하셨다.
 
베틀소리보다 인상 깊은 어머니들의 베틀 노래
 
길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삼베 공정 작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일일이 삼을 갈라내어 실을 얻는 물레 작업도 힘들어 보였지만, 실이 끊어질 때 무릎을 이용해서 두 가닥 실을 비벼서 정교하게 잇는 작업은 정말 특별했다. 우리 네의 탯줄처럼, 푸른 삼베가닥이 꼬여가면서 물레에 감겨, 베틀 위에 앉혀서 찰칵찰칵 베가 짜여나가는 광경은 감탄스러웠다.
 
삼베 생산 작업은 일일이 사람 손을 수십 회 거쳐야 제대로 된 삼베를 얻어낼 수 있는 수공업이다. 우리의 천연 직물 생산은 그동안 기계 생산에 밀려 왔으나, 세계 시장은 수공업 직물 생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수공업의 제 1인자 중국산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나, 죽곡마을의 삼베 수공업 산업은, 우리의 미래 바이오 산업의 핵심 산업이 될 전망이다.
 
삼베로 만들어진 의류품과 다양한 생활용품은 석유화학 제품에서 느낄 수 없는 생명의 향기가 난다. 사람이 날 때 입는 배내옷처럼 사람이 죽어서 돌아갈 때 많은 입은 수의는 대개 삼베가 사용된다. 삼베는 이렇게 자연의 옷, 생명의 옷이다. 조상 대대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탯줄과 같은, 삼베 생산은 맥이 결코 끊어질 수 없는 우리 겨레의 생명과 같은 산업이다.
 
구름에다 잉어 걸고
얼겅덜겅 베를 짜니
시누아기 아장아장
성아 성아 올케 성아
그 베 짜서 무엇할래
서울 가신 너의 오빠
행건 깁고 보선 깁어
은다리미 싹 다려서
줄때 불에 걸어놓고
이제 올까 언제 올까
죽었다고 부고 왔네
불쌍하네 불쌍하네
우리 오빠 불쌍하네
서울같이 너른바다
약이 없어 죽었는가
서울 같이 너른 바닥
물이 없어 죽었는가
우리 오빠 불쌍하네
- 베틀노래
 
우리네 옛 어머니들의 삶은 곧 자연 예술품
 
우리네 어머니들의 길쌈 노동은 마음의 정화 작업과 별리될 수 없다. 우리네 옛 어머니들은 길쌈작업을 통해 생산물을 얻기도 했지만, 힘든 시집 살이의 애환을 달래고 노동을 통해 고된 시집 애환을 나누어 왔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정겨운 대화와 베틀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들의 길쌈 작업을 구경하면서, 일과 놀이가 하나였던 우리 어머니들의 생활노동 문화는, 곧 삶이 생활문화예술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일행의 일부는 실제 체험 하고 일부의 일행은 마을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마을 어른들이 손수 장만한 정성스러운 점심도 함께 나누었다. 시골 밥상 위에 올려진 막걸리는 서울서 내려온 일행 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좋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젖어가는 푸른 산마을의 정경에 취하다보니 죽곡 마을 어른들과 아쉽게 헤어져야 할  작별할 시각이 찾아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마을 정류장까지 배웅 나온 죽곡 마을 어른들이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문득 진부하지만 이 말만큼 정확한 말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우리의 탯줄를 갈라 내듯이, 삼을 갈라 섬섬옥수로 삼베를 짜는 어머니들의 길쌈 생산 문화는, 결코 박물관처럼 문화관광사업으로 안주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면면한 겨레의 숨결처럼 이어져, 세계 시장에서 으뜸으로 칭송 받아야, 우리 어머니들의 소중한 탯줄과 같은 '생명의 산업'이라고.

덧붙이는 글 | 지난 24일 다녀왔습니다.


태그:#죽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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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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