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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던 촛불문화제의 양상이 정부의 장관고시 발표를 계기로 거리시위 형태로 급변했다. 시민들은 촛불집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차도로 쏟아져 나와 청와대로 행진을 이어갔고, 경찰은 살수차와 특공대, 소화기까지 동원해 이를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위 참가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한 시민이 실명위기에 놓여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시민들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조준해서 쏘거나, 쓰러져 있는 여학생을 군화발로 밟는 등 경찰이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분노를 누그러트리지 않고 있다.

 

'불법시위' 막아야 하는 경찰 처지도 이해하지만

 

이번 시위의 특징은 철저하게 비폭력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시위참가자들은 그저 저마다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고, 시위대중 일부가 폭력적인 언행을 시도하면 집단적으로 "비폭력"을 외치며 자중시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찰은 어째서 이런 평화적인 시위대를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한 것일까?

 

여기서 경찰의 입장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거리시위는 현행 '집회 몇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상 사실상의 불법행위다. 거리 시위는 관할경찰서장의 허가를 받고 경찰이 정한 질서유지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대통령관저 100미터 안에서의 시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것을 위반했거나, 위반하려는 시도를 했다.

 

따라서 법을 수호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시위를 막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경찰이 시민들의 요구대로 청와대로 가는 길목을 스스로 내어주었다면 그것은 자칫 더욱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진압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쓴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경찰이 이번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막아선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청와대 앞까지 가서 자신의 의견을 더욱 강하게 피력하고 싶은 시위대의 의사와 그것을 막아야만 하는 경찰의 원칙이 상충하는 것이다. 평화를 외치던 시위대에게 폭력이 행사되는 왜곡된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현행 집시법은 시위대의 의사표현권을 지나치게 차단하고 있다.

 

낯설지 않은 백악관 앞 시위 풍경

 

우리는 TV를 통해 백악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유리처럼 무장한 경찰이 겹겹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 대신에 정복 차림의 경찰들이 벨트에 손가락을 걸친 채 느긋하게 시위대를 바라보는 모습은 우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법은 왜 청와대 앞에서 이런 시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정부의, 혹은 경찰의 시위대에 대한 오랜 불신에 기인한다. 

 

지난 날 이 땅에서 벌어진 수많은 시위는 폭력적인 행태를 띄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시위'하면 필연적으로 '폭력성'이라는 개념이 따라붙었고, 실제로도 최근까지 죽창과 쇠파이프가 사용된 사례가 있다.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들은 집시법이 완화되면 시위대의 폭력행위가 걷잡을 수 없게 번지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것은 공권력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자칫 사회질서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도 시위대에 대한 이런 선입견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  

 

성숙한 시위문화에 맞춰 집시법 개정해야

 

하지만 이번 시위를 통해 시민들은 우리의 시위문화가 평화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걱정하던 쇠파이프와 죽창 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시위대가 경찰에 무차별 공격당하는 모습이 인터넷을 떠돌아 다녀도 시위대는 끝까지 '비폭력' 기조를 유지했다. 또한 몇몇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저항하지 않고 자진 연행되기까지 하면서 물리적인 충돌을 줄이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집시법이 완화되면 폭력행위를 부추긴다고 보는 시각이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애초에 보다 완화된 시위규정이 적용되었더라도 경찰이 걱정하는 폭력행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높아진 시민의식에 미치지 못하는 과도한 통제는 시위대의 불만만 가중시켰을 뿐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을 불신하는 경찰에 대해 비폭력이라는 신뢰를 보여주었다. 이제는 정부와 경찰을 비롯한 정치권이 나서야 차례이다. 더 이상 평화를 외치는 시민들이 순식간에 범법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경찰과 시민 모두가 원하지 않는 폭력행위가 발생하여서도 안 된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민들이 안전하게, 또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집시법 개정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태그:#집시법, #백악관 앞 시위, #청와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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