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옹근 100일 전이다. 그가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사뭇 진지하게 공언했을 때다. 고백하거니와 코웃음 치면서도 조금은 긴장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그날 밤, 공영방송에서 그의 '레임덕'을 들먹였던 나의 전망이 빗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심스레 스쳐갔다.

 

그랬다. 나의 전망은 빗나갔다. 하지만 정반대 방향에서 그렇다. 적어도 집권 초기엔 '반짝 효과'가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아둔했던 탓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그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임을 스스로 폭로해왔다.

 

문제는 그의 임기가 이제 겨우 100일을 마쳤다는 데 있다. 2013년 2월까지 그는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대통령과 윤똑똑이 참모들이 즐겨쓰는 논리를 빌리면, 5년은 결코 '잃어버린 세월'이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과제는 쌓여있다. 더구나 세계경제가 미국의 부실로 무장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2013년 2월까지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어도 좋은가

 

그러나 보라.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도 상황 판단을 못하고 있다.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쇠고기 굴욕협상을 놓고도 곰비임비 꼼수만 쓰고 있다. 고시의 관보 게재 유보와 '인적 쇄신'이 그것이다. 일단 소나기를 피해가자는 깜냥이다. 인적 쇄신 또한 당장 하겠다는 결기도 엿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를 방문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다. "당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각계 원로를 두루 만나서 여론을 들은 뒤 민심 수습 방안을 제시" 하겠단다. 온갖 생색을 낸 뒤 슬그머니 장관 한두 명을 바꿀 속셈이다.

 

대통령에 곧장 묻고 싶다. 과연 지금이 그럴 때인가. 게다가 이 대통령은 강 대표에게 18대 국회에서 '한미FTA 비준 처리'를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다. 과연 그만 모르는 일일까.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가 깊숙이 연관된 사안임을.

 

촛불 아래 상황은 명확히 밝혀졌다. 미국은 지금 한미FTA의 의회 비준이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의회 비준을 놓고 확실하게 쇠고기를, 국민건강권을 다 내주었다. 대체 이명박 정권은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왜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지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무조건 임기가 보장되는 게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도 아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앞으로 대한민국의 4년 9개월을 맡겨도 좋은가라는 데 있다. 답은 간명하다. 적어도 지금의 모습으로는 아니다. 대운하도, 민영화도, 공교육 파괴도 어떻게 해서든 여론의 '천둥-번개'만 피해가면 된다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의식에 견주어 너무나 초췌하다. 과연 그 속보이는 꼼수를 2013년까지 받아줄 국민이 있겠는가.

 

 

잘못된 선택 바로잡기는 주권자의 권리이자 의무

 

솔직히 말해서 정치인 이명박의 운명에 큰 관심은 없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주권자 앞에 벅벅이 놓인 삶의 고통이다.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는 일은 빠를수록 좋다. 그것은 주권자의 즐거운 권리이자 엄숙한 의무다. 보라. 저 여대생의 머리를 군화로 짓밟는 권력의 추악한 정체를. 

 

각계 원로를 만나겠다고 꼼수로 언구럭부릴 때가 아니다. 당장 여대생의 머리를 군화로 짓밟은 만행에 공개 사과하라. 평화적 시위를 과잉진압 한 책임자를 문책하라. 고시 발표를 해놓고 관보 게재만 유보할 일이 아니다. 잘못을 고백하고 쇠고기 재협상을 진솔하게 약속하라.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임기 보장을 위한 지극히 온건한 요구다. 하야하고 싶지 않거든 더는 꼼수를 쓰지 말라.


태그:#이명박 하야, #쇠고기 협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