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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정부 임기 동안 안보나 북핵 문제, 주한미군 문제 등이 이슈로 떠오를 때면 조·중·동 등 수구 언론은 늘 "버시바우의 발언에 의하면…"이라는 서두를 달아 참여정부의 안보나 외교 관련 정책을 친북좌파적 정책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버시바우의 발언은 그가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한 이래로 조·중·동이나 뉴라이트 등 숭미주의자들에게 거의 경전 수준으로 인용되곤 했는데, 참여정부 기간 동안 그들에게 버시바우는 마치 대사가 아니라 사실상 안보와 외교분야의 고문관 대접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것은 주권국가 국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굴욕적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대사라는 자리가 주재국에 대해서 자국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높게 취급 받아왔지만 오늘날의 대사는 자국과 주재국 간 국가 원수나 각료가 협상한 결과에 대해 보조하거나 이를 실무적으로 이행하는 실무책임자에 불과하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달은 각 나라 정상간의 핫라인이나 각료회의 등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고위급 회담이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대사의 상징성이 크게 약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임기 동안 그의 언행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 고문관 행세를 했다고 한다면, 이명박정권 출범 이후 그는 마치 식민지에 파견나온 총독을 연상케하는 언행을 해 왔다. 지난달 22일 제 1야당인 민주당 손학규대표에게 무려 두 차례나 전화를 걸어 "30개월 이상된 쇠고기 수입 반대 발언에 실망했다"라며 비난한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 할 만 하지만, 그는 야당의 반발이나 일부 언론의 강한 비판에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우리 정부 또한 미 대사의 무례한 언행에 대해서 입장조차 표명하지 않았었다.

 

정부의 무골 외교에 기가 산 탓일까?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더 나갔다. 이번에는 작심한 듯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을 상대로 "한국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사실관계 및 과학에 대해 좀더 배우기를 희망한다"며 국민을 직접 훈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무례하며 오만불손하기도 하지만 외교적으로도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쇠고기수입 전면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는 목적도 분명하며 시위 대상도 미국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이며 한국 대통령이다. 한국민이 한국 정부가 잘못 협상한 것을 고치라는 주장인 것이며, 이 문제는 협상 당사국이 미국이 아닌 제 3국이라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에 항의하는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과정이며, 이 과정에 미국 대사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기에 그의 한국민에 대한 주제 넘는 훈계는 한국 사회의 자주권과 자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버시바우의 부적절한 언행이 단지 말 실수가 아닌 주권침해라는 외교적 사건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그럴 의지도 철학도 능력도 없는 정부를 대표로 섬기고 있다.

 

며칠 전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중국 측이 한미 동맹을 두고 "지나간 역사의 산물"이라고 비하한 발언에 대해 "주의를 요청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린 정부가, 훨씬 어려운 상대인 미국에게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혹시라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머리를 조아리고 읍소 하겠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니 이 또한 기대할 게 없다.

 

엄연한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무개념 외교로 희희낙락하고 돌아와서는 "90점짜리 외교했다"며 자랑하는 나라이고 보면, 오만한 미국 대사의 눈에 그런 나라의 하찮은 국민 쯤이야 눈에 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녕 버시바우는 국민의 건강주권을 지키기 위한 촛불 행렬이 '양키 고홈'을 외치는 반미 시위로 번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버시바우, #쇠고기재협상, #미국,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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