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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에 사적171호가 있다
▲ 고종 칭경 기념비전 광화문 사거리에 사적171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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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가 생필품값 폭등, 대운하 건설, 내각 도덕성 부재 등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따른 전 국민적 촛불집회에 이어 이번에는 경찰의 손으로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했던 컨테이너 가건물까지 문화재 보호법 위반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 10일 아침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되었다가 11일 아침 철거된 문제의 컨테이너 가건물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과 함께 손가락질을 받으며,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불렸다. 이와 함께 이 가건물은 극심한 교통 혼잡까지 빚어 버스를 이용하는 수많은 시민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

촛불집회가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면서 기념비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촛불집회 나온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기념비전 촛불집회가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면서 기념비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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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가건물
▲ 명박산성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가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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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평우 소장 "컨테이너 가건물은 명백한 불법 행위"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는 국가지정문화재(고종 황제 즉위 40년 기념 칭경비전, 사적 제171호)가 위치해 있는데, 경찰이 10일 아침 문화재 인근에서 바닥에 말뚝을 박고 용접을 하면서 컨테이너 가건물을 설치했다. 이는 불법행위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로부터 반경 100m 이내에 임시구조물을 설치하려면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승인을 얻도록 돼 있다."

황평우(47)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이 지난 10일 오후 CBS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에 출연해 내뱉은 말이다. 황 소장은 이날 광화문에 설치되었던 컨테이너 가건물은 "문화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관련법 위반이라는 해석을 얻었다"고 밝혔다. 황 소장은 이어 "경찰을 상대로 도로교통법 위반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또 "현 정부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물막이 공사에 유조선을 동원한 것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라며 "이는 청와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전경버스의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버스시위대의 청와대 방면 가두행진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한편, 도시 한복판에 컨테이너 가건물이 설치된 것은 어청수 현 경찰청장이 부산경찰청장을 맡고 있었던 지난 2005년 부산 에이펙 관련 시위 때가 처음이었다. 따라서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가건물은 3년만에 두 번째로 세워진 것이다.

오른손에 칼이 든 칼집을 움켜쥔 우스꽝스런 모습의 이순신 장군 동상.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였나 의아해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지휘를 하기 전에는 칼이 든 칼집을 지팡이처럼 짚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 닭장차에 둘러쌓인 이순신 동상 오른손에 칼이 든 칼집을 움켜쥔 우스꽝스런 모습의 이순신 장군 동상.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였나 의아해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지휘를 하기 전에는 칼이 든 칼집을 지팡이처럼 짚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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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전의 아름다운 처마
▲ 기념비전 기념비전의 아름다운 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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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몸부림 '명박산성', 쓸쓸한 제국의 마지막 몸부림 '기념비전' 

10일(화) 오후 4시. 촛불집회에도 참석하고, 우리 문화유산도 살펴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간다. 늘상 지나치면서도 무심코 보아 넘겼던 '기념비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광화문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서 있는 그 '고종 칭경 기념비전'에는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비전'이라는 제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왜 그 건물을 '비각'이라 부를까.

5호선 광화문역에 내려 교보문고 출구로 나서자 바로 코앞에 '고종 황제 즉위 40년 기념 칭경비전'이 교보생명의 웅장한 건물과 촛불집회를 나온 수많은 사람들에 파묻혀 난장이처럼 오도카니 서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기념비전 바로 옆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가건물, 이른 바 '명박산성'이 쌓여져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명박산성'과 조선의 첫 황제였던 '고종 칭경 기념비전'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저 밑바닥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명박산성'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느껴지고, 기념비전을 바라보고 있자니 쓸쓸한 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그네 혼자만의 독선일까.    

대한민국의 중심에 우뚝 서 있으면서도, 숱한 사람들의 중심에 우뚝 서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차량 먼지만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고독한 건물 '고종 칭경 기념비전'. '기념비전'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파묻힌 나그네 또한 갑자기 외톨이가 된 듯하다. 그래. '군중 속의 고독'이란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일게다.  

편액의 글씨는 순종이 썼다
▲ 기념비전 편액의 글씨는 순종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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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당시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 기념비전 앞의 석물들 석물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당시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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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은 조선을 앝잡아보고 쓴 호칭

사방으로 십이지신상에 둘러쌓인 사적 제171호 '고종 칭경 기념비전'(서울 중구 세종로 142-30번지). 이 '비전'은 고종이 즉위 40년(1902년)이 되고, 나이 51세로 기로소(耆老所,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에 입사하고,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면서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비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비전' 속에  있는 비의 정확한 이름은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高宗卽位40年稱慶紀念碑殿)'다. 비전 안에 세워진 비에는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망육순 어극사십년 칭경기념비(大韓帝國 大皇帝 寶齡望六旬 御極四十年 稱慶紀念碑)"라 적혀 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이 비석의 글씨는 고종의 아들 순종이 썼다고 한다.

근데, 왜 이 비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의 이름이 사람들이 무심코 부르는 이름인 '비각'이 아니라 '비전'일까. 그 까닭은 전(殿)은 궁궐이나 왕실과 관련된 건물에 붙이는 이름이며, 각(閣)은 일반 누각에 붙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왕을 전하(殿下)라 하는 것이나, 부처님을 모신 건물에 '대웅전' '극락전'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란다.

특히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기념비전'이란 편액이 엄연히 붙어 있는 데도 '기념비각'이라 부르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라는 사실이다. 일제는 조선을 얕잡아보고, 고종 황제를 낮춰 부르기 위해 '전하'라 부르지 않고 '합하'(閤下), '각하'(閣下) 등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따라서 앞으로는 일제의 잔존인 '비각'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반드시'비전'(碑殿)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기념비전 안에 보관된 기념비, 비에는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망육순 어극사십년 칭경기념비(大韓帝國 大皇帝 寶齡望六旬 御極四十年 稱慶紀念碑)"라 적혀 있다
▲ 기념비전 기념비전 안에 보관된 기념비, 비에는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망육순 어극사십년 칭경기념비(大韓帝國 大皇帝 寶齡望六旬 御極四十年 稱慶紀念碑)"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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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고종이 즉위 40년(1902년)이 되고, 나이 51세로 기로소(耆老所,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에 입사하고,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면서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비다
▲ 기념비 이 비는 고종이 즉위 40년(1902년)이 되고, 나이 51세로 기로소(耆老所,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에 입사하고,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면서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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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때 깊은 상처를 입은 수난의 문

서글퍼다. 이 자그마한 '기념비전' 하나까지도 섣불리 넘어가지 않고 '비각'이라 낮춰 부르는 일제의 만행이라니.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따지고 보면 미국산 미친 소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데도, 미국의 눈치나 슬슬 보고 있는 이명박 정부나 미국도, 일제처럼 우리 국민들에게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 아니한가.    

'기념비전‘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고종 칭경 기념비전'은 이중으로 쌓아올린 주춧돌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기둥과 지붕 사이 있는 구조물인 공포가 많다는 뜻) 건물이다. 건물 주변에는 돌난간을 두르고 난간 기둥에는 상서로운 짐승을 섬세하게 조각한 석물이 대한민국의 혼처럼 얹혀 있다. 

남쪽 홍예문(무지개문) 위에는 '만세문'(萬歲門)이라는 글씨가 씌어져 있다. 이 글씨는 조선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1897년~1970년)이 6세 때 쓴 글씨라 한다. 홍예문 문짝은 철 격자문이다. 이 철격자문에는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어 '비전'의 지붕, 홍예문과 어울려 흡사 수십 개의 쌍무지개가 뜬 듯 몹시 아름답고 황홀하다.

하지만 이 만세문도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이 만세문을 떼내 충무로에 있는 자기 집 대문으로 썼다. 게다가 한국전쟁 때 만세문 일부가 부서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단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만세문은 1954년 7월 '비전'을 일부 보수하면서 다시 세웠다가 1979년 해체, 복원한 문이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기념비전은 6·25 전쟁 때 일부 파손된 것을 1954년 보수하면서 처음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특히 궁궐의 용마루에 설치하는 백색 양성추녀마루가 기와로 바뀌면서 잡상이 사라졌으며, 금속으로 만든 상륜부 또한 온데 간데 없고 절병통(궁전, 정자·따위의 지붕마루 가운데 세우는 기와로 된 항아리 모양의 장식)도 디자인이 달라졌다.

'비전' 앞에 서서 비전의 깊은 상처를 아우르는 촛불 하나 켜든다
▲ 비전 앞의 석물 '비전' 앞에 서서 비전의 깊은 상처를 아우르는 촛불 하나 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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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역사를 온몸에 새겨온 '고종 칭경 기념비전'. '비전' 앞에 서서 비전의 깊은 상처를 아우르는 촛불 하나 켜든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 속에서도 끈질기게 버텨온 대한민국의 깊은 상처를 달래기 위해 촛불 둘 켜든다. 미국산 미친 소 수입 개방 반대를 위해, '명박산성' 정복을 위해 촛불 셋 켜든다.


태그:#고종 칭경 기념비전,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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