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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우리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화물연대 운송거부가 시작된 지난 13일, 평택항에서 만난 한 화물연대 조합원의 말이다. 그의 말은 화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다는 뜻.

 

실제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은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화주·운송업체들과 교섭에 나설 수 없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4대보험 적용도 먼 나라 얘기다.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 상실은 지금껏 화물노동자의 삶을 가장 그리고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했던 부분이다.

 

정부 또는 화주·운송업체들이 기름값 상승분이 반영된 운송료 인상이나 보조금 확대 등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이번 '파업'(정부에서는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이 아니기에 파업이란 표현은 행정해석상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한다)은 이른 시일 내에 마무리 될 수 있다.

 

하지만 화물노동자들이 계속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다면, 그들 삶의 불안정성은 해소되지 못하고, 물류대란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

 

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노조를 노조라고 부를 수 없다

 

화물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가장 큰 타격은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누릴 수 없다. 쉽게 말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고, 파업을 할 수 없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인정하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임의단체일 뿐이다. 이들이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 쪽은 굳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필요가 없다. 특히나 친기업적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재 정부와 화물연대는 내년 7월로 예정된 표준요율제(최저임금제와 비슷하게 화물 운송의 최저운임을 정해놓자는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를 본 상황이다. 시행 시기 등에 대한 조율만 남았다.

 

이제 남은 건 운송료 인상을 둘러싼 화물연대-화주·운송업체 간의 줄다리기다. 보통 노사관계의 경우, 정부가 중재를 하는 등 대화 테이블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지난해 이랜드 노조 파업의 경우에도, 정부의 중재로 노사간의 대화가 지속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노사관계가 아닌 터라 정부는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수 없다. "화주들에게 화물연대를 만나달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화주들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해도, 대형 화주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노동부 노사조정과 관계자는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 아닌 임의단체로서, 노동부가 조정이나 개입을 할 수 없다"며 "또한 대화를 주선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사업자간의 담합행위를 규제하는 조항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상현 화물연대 법규부장은 "우리가 파업을 하게 된 가장 큰 목적은 대형 화주나 운송업체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며 "파업해도 큰 업체들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우리의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화물연대가 노조라면 그들은 대화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버티면 그만이다, 상당한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전혀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파업해야 그나마 대화라도... 그들은 매일 8명씩 죽는다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단순히 노조를 설립하고 파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다. 화물노동자들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화물연대 조합원의 파업이 그만큼 절박하고 격해질 수밖에 없는 데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먼저 화물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입은 가능하지만, 산재보험료를 화물노동자들이 모두 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담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매일 7.9명의 화물노동자들이 사고로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이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보험 가입이 어려운 화물노동자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정성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장시간·야간 노동, 저임금 등 역시 화물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문제다. 한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차를 움직일수록 적자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시간당 3700원 가량의 최저임금을 보장받는데, 우리는 아예 마이너스"라고 밝혔다.

 

김경란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화물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은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근로기준의 최저기준인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되고,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혜택도 얻게 돼, 사회적 안전망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하지만 현재 이들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에서 괴리돼 있어, 고유가로 어려운 시기에 이중삼중으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면 삶의 최소한의 안정을 찾을 수 있어, 매해 파업이 일어나는 사태를 해소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화물연대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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